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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진의 동물과 떠나는 세계여행] 베트남 밴롱 습지에 잇단 시멘트공장... 멸종 위기 몰린 긴꼬리원숭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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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진의 동물과 떠나는 세계여행] 베트남 밴롱 습지에 잇단 시멘트공장... 멸종 위기 몰린 긴꼬리원숭이들

입력
2019.10.25 15:00
수정
2019.10.25 18:3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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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꾹프엉국립공원 구조센터에서 델라쿠르랑구르가 생후 5개월 된 새끼와 함께 나무에 앉아 있다.
베트남 꾹프엉국립공원 구조센터에서 델라쿠르랑구르가 생후 5개월 된 새끼와 함께 나무에 앉아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기차를 타고 닌빈에 있는 밴롱 습지 자연보호구역에 갔다. 근처에 있는 유명한 석회암 관광지인 짱안이 아닌 밴롱을 선택한 이유는 ‘습지’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습지는 많은 동식물을 품는 중요한 생태계다. 다양한 동물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했다. 무엇보다 델라쿠르랑구르를 만나고 싶었다. 랑구르는 ‘긴 꼬리’를 뜻한다. 주로 나무 위에서 살며 나뭇잎을 먹는 원숭이다.

델라쿠르랑구르는 북부 베트남에만 서식하는데 지금은 200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2007년에 심각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 오직 밴롱 습지에 사는 집단만 독자적 생존이 가능하다. 즉 다른 지역의 델라쿠르랑구르는 그 수가 충분하지 않아 곧 개체군이 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수가 줄어든 이유는 과거 사람들이 이 동물을 야생에서 잡아 시장에서 약재로 팔았기 때문이다. 애완용이나 눈요깃감으로 키우기도 했다. 최근에는 베트남에 시멘트 공장들이 들어서며 이들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다. 만나게 된다면 멸종의 절벽 위에 서 있는 이 경이로운 동물에게 제발 살아남아달라며 절이라도 할 참이었다.

돈을 내고 배를 타는 곳으로 가니, 뱃사공 한 분이 보였다. 지역 주민이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작은 나무배에 올라탔다. 랑구르 서식지에 내가 찾아가 훼방을 놓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악어가 사는 습지에 간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탄 보트는 습지 한가운데를 굉음을 울리며 질주했다. 생태계 파괴 체험 같았다. 다행히 밴롱의 나무배는 조용히 습지 안쪽으로 들어갔다.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백로들과 물총새,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새들이 먹이를 찾고 날아다니느라 분주했다. 천국에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몇십분 정도 지났을까, 뱃사공이 저쪽을 보라며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델라쿠르랑구르들이었다. 검은 털 바탕에, 허리부터 무릎 위까지만 흰 털이 있어 마치 흰 바지를 입은 것처럼 보였다. 석회암 나무 위에 여러 마리가 모여 앉아 나뭇잎을 뜯어 먹기도 하고 긴 꼬리를 다듬기도 했다. 가슴이 뛰었지만, 멸종의 미래는 모른 채 현재에 집중하는 랑구르의 모습을 보고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랑구르들에게 아직 기회가 남아 있을까?

베트남 꾹프엉국립공원에서 현지가이드가 방문자에게 구조센터를 설명하고 있다.
베트남 꾹프엉국립공원에서 현지가이드가 방문자에게 구조센터를 설명하고 있다.

다음날, 희망을 찾아 꾹프엉국립공원에 갔다. 그곳에 랑구르 보전을 위해 노력 중인 영장류 구조센터가 있었다. 지역 가이드와 함께 보호 중인 원숭이들을 만났다. 이 센터는 꾹프엉 국립공원과 독일 프랑크푸르트 동물원이 협력해 1993년에 문을 열었다. 모든 것은 한 독일인이 사냥꾼에게 잡혀 있던 어린 델라쿠르랑구르 두 마리를 구조하며 시작됐다. 랑구르들의 건강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그는 랑구르들을 돌보며 밀렵을 감시하는 한편, 지역민들을 교육했다. 그리고 더 많은 영장류들을 구조하며 센터의 기반을 만들었다. 지금은 라이프치히 동물원의 지원을 받아 운영한다. 30여명의 직원들과 영장류 14종 180여 마리를 보호 중이다.

센터에서 보호 중인 델라쿠르랑구르는 태어난 지 5개월 된 새끼와 함께였다. 야생 적응 지역이 두 군데 있어 그곳을 통해 훈련 후 야생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돌아갈 안전한 집이 있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다. 지역민들 또한 밴롱 생태계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하지만 시멘트 공장들이 계속해서 들어오는 한 그들의 집이 언제까지 그대로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멸종을 눈앞에 둔 동물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

글ㆍ사진 양효진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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