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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新쪽방촌] 벽 두께 줄이려 ‘유리벽 화장실’… 꼼수 판치는 ‘방 쪼개기’

입력
2019.10.31 04:4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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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빈곤 비즈니스’ 성행하는 대학가 

 주차대수 줄이기 위해 고시원 같은 ‘다중주택’ 허가 받아 

 주방자리에 상수도 배관 묻고 구청 허가 난 뒤 싱크대 설치도 

지난 27일 오후 한양대 학생들의 오랜 원룸촌인 서울 성동구 사근동의 부동산 풍경. 홍인기 기자 /2019-10-27(한국일보)
지난 27일 오후 한양대 학생들의 오랜 원룸촌인 서울 성동구 사근동의 부동산 풍경. 홍인기 기자 /2019-10-27(한국일보)

서울 성동구 한양대 학생들의 오랜 원룸촌인 사근동 3층짜리 한 주택. 겉에서 보기엔 한 층당 두 가구 이상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2층 문을 들여다보면 어두운 긴 복도를 따라 방 호수가 적힌 문들이 6개 이상 늘어서 있다. 일반 주택을 리모델링해서 방들을 쪼갠 뒤 화장실과 부엌을 넣어 만든 불법 원룸이다. 이러한 원룸은 화재와 소음예방, 습기 처리와 환기 등 집이 갖춰야 할 기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2015년 서울 성동구 사근동에 다세대 주택을 지었던 수상건축 조수영 소장은 “방 쪼개기를 하면서 화장실 벽 두께를 줄이느라 고시원처럼 유리벽으로 설치하기도 한다. 벽돌 한 장 폭까지도 아껴서 쪼개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원룸들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 수상건축 박태상 소장은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원룸, 오피스텔 기준의 가장 작은 면적이 23.1㎡(7평)이었지만 최근엔 나라에서 권고한 1인 가구 최저주거기준 14㎡(4.2평)보다도 더 작은 12㎡(3.6평)까지 만들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싱크대와 냉장고, 인덕션 등 방 안에 부대시설을 갖췄다는 이유로 오히려 임대료를 높여 거래된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사근동 원룸촌의 우편함과 계량기. 이혜미 기자
서울 성동구 사근동 원룸촌의 우편함과 계량기. 이혜미 기자

 

 ◇1인가구 증가와 재개발 포기한 집주인의 임대수익 추구가 만난 자리 

쪼개기 붐은 1인가구 증가와 집주인의 이익 극대화 욕구가 만난 결과다. 서울 2호선 역세권에서 원룸 임대를 주로 하는 부동산중개업자 박모씨는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서울 전 지역에서 원룸을 지어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엔 30대 초반 정도까지만 원룸을 찾았지만 지금은 40대 초반도 원룸에 산다”며 “결혼을 않으니 집에 대한 욕구도 예전과 같지 않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222만 가구였던 1인 가구(전체 가구 중 15.5%)는 지난해 585만 가구(29.3%)로 18년 사이 크게 늘었다. 4인 가구(작년 기준 340만ㆍ17%)마저 크게 넘어설 정도다. 이처럼 1인 가구가 우리 사회의 가장 주된 가구로 자리잡으면서 원룸 수요 폭증을 가져왔다. 사회초년생에 해당하는 25~34세 1인가구 91만5,000가구 가운데 원룸, 고시원 등 방이 하나뿐인 ‘단칸방 가구’에 사는 비중은 절반이 넘는다.

근년 들어 가구 구성의 급변에 따라 원룸 임대업은 택지 개발을 기대할 수 없는 다가구 주택 소유자들이 가장 쉽게 부동산 가치를 높일 최선의 선택지가 됐다. 자신은 3층에 살면서 1, 2층에 한 가구씩 세를 주던 다가구 주택 소유자들이 아예 원룸으로 개조해 더 많은 세입자를 받는 식으로 돈벌이에 나선 것이다. 수상건축 조 소장은 “주변 지역 재개발은 확정됐으나 자신의 동네는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을 것 같으면 집주인들은 스스로 살 길을 찾는다”며 “그런 시점이 되면 동네 큰 길 주변 주택이 헐리고 임대업을 위한 집을 새로 짓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성동구 사근동 원룸촌. 홍인기 기자
지난 27일 오후 서울 성동구 사근동 원룸촌. 홍인기 기자

 ◇판치는 각종 불법… 주차대수 줄이려 방 쪼개고 불법 주방설치 

문제는 이 과정에서 수익 극대화를 위한 각종 불법이 동원된다는 점이다. 원룸 임대업에 뛰어든 임대인들은 의무 주차대수에서 자유로우면서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고시원 같은 다중주택으로 허가 받아 건물을 짓는다. 다가구, 다세대주택, 연립주택, 아파트는 전용면적에 따라 세대 당 주차대수를 산정하는 반면 다중주택은 시설면적에 따라 주차대수가 정해져 상대적으로 주차공간을 덜 들 수 있다. 수상건축 박 소장은 “서울에서 도심형 주거건물을 설계할 때 용적률을 높이기 위한 첫 번째 걸림돌이 주차대수”라고 설명했다. 부동산중개업을 하면서 서울 2호선 역세권에 다중주택을 지어 원룸 임대업을 하는 박씨는 “다가구주택에서 두 가구에 집세 50만원씩 월 백만 원 수입을 올렸다면, 원룸 6개짜리 다중주택으로 바꾼 뒤 월 30만원씩만 받아도 180만원으로 기존보다 1.8배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다중 주택 소유자들은 원룸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다반사로 불법적인 용도 변경을 한다. 특히 취사시설이 그렇다. 건축법상 다중주택은 층당 한 개의 취사시설만 설치할 수 있고 각 방에 취사시설을 만드는 것은 불법이지만 지키지 않는다. 박 소장은 “방에 주방시설이 없으면 다른 원룸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에 다중주택 설계 단계부터 주방 자리에 상수도 배관 등을 묻어놓고 구청 허가가 난 뒤 배관을 빼고 싱크대를 설치하는 방법을 쓴다”고 말했다.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면 건물외관에서 가스 배관이 보이기 때문에 다중주택 주방에는 항상 전기를 사용하는 인덕션(전기조리기구)을 들인다는 것이다.

원룸용 다세대주택의 경우에도 갖은 편법으로 주차대수를 줄이면서 쪼개기 같은 불법 용도변경이 빈번하다. 박 소장은 “다세대 주택 한 층에 14㎡(4.2평)짜리 4세대가 있으면 그 층에서만 주차대수가 2대가 나와야 하지만, 28㎡(8.5평) 2세대면 1대만 나오면 된다”며 “최초 허가를 받을 때 세대 수를 적게 표기해 구청 허가를 받고, 이후 방을 쪼개는 방법을 쓴다”고 말했다.

이처럼 임대인들이 불법 용도 변경과 방 쪼개기로 부동산 수익을 추구하는 사이 주거 질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인 서울 청년(20~34세) 가구의 20.2%가 ‘14㎡(4.2평)면적에 부엌이 딸린 방’이라는 1인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한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서울 성동구 사근동에서 30년을 산 토박이인 건축주는 건축가들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결과 방이 한눈에 들여다보이지 않아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고 베란다가 있는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수상건축 제공
서울 성동구 사근동에서 30년을 산 토박이인 건축주는 건축가들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결과 방이 한눈에 들여다보이지 않아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고 베란다가 있는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수상건축 제공

 ◇법적 보호에서도 취약한 불법 원룸 

불법 쪼개기 방 입주자들은 돈은 돈대로 내면서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집의 건축물대장 등을 살펴보고 집을 구하는 경우도 드물 뿐 아니라 부동산중개업자들이 이를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는다. 이 바람에 집 주인의 파산으로 경매로 집이 넘어가면 세입자가 보증금을 받지 못할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예컨대 101호 집을 쪼개 부엌과 화장실을 넣어 새로 만든 3개의 원룸 중 하나인 102호에 입주한 세입자라면 구청에 102호로 전입신고를 하지만, 실제 방은 ‘101호의 일부’, 혹은 ‘101호의 동쪽 X㎡’여서 집에 문제가 생길 때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부동산중개업자 박씨는 “쪼개기 방의 경우 부동산이 임차인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지만 자세히 설명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대신 전입신고를 할 수 있고 확정일자를 받으라고 이야기하는 쪽에 더 초점을 맞춘다”고 말했다.

물론 임대인 가운데서도 주거 질을 고민하며 집을 짓는 경우도 있다. 수상건축은 서울 성동구 사근동에서 30년간 토박이로 산 건축주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고 ‘사근동 기운집’을 지었다. 세입자 입장에서 설계한 끝에 현관문을 열었을 때 방이 한번에 들여다보이지 않는, 사생활이 보호되는 구조에 화장실에는 욕조를 넣고 베란다까지 만들었다.

수상건축 조 소장은 “건축주가 보통의 원룸 임대용 건물보다 더 많은 투자를 했지만 사근동 기운집은 이 동네 ‘신축 빌라 풀옵션’에 해당하는 수준의 임대료가 책정돼 있다. 주거의 질을 신경 쓴 덕분에 공실 없이 임대도 잘 되고 있다”며 “세입자의 이익과 집주인의 이익이 상충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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