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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정의롭지 못한 속담의 언어

입력
2019.11.01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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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화자들에게 바른 언어 사용의 규범을 제시하려는 국어사전에 장애인 차별적 내용이 가득 찬 것은 언어 인권의 면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어 화자들에게 바른 언어 사용의 규범을 제시하려는 국어사전에 장애인 차별적 내용이 가득 찬 것은 언어 인권의 면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어 사용자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속담을 배우고, 일상생활에서 쓰는 일이 많다. 속담은 조상들이 긴 세월을 통해 깨달은 삶의 지혜를 표현한 소중한 언어 유산이라고 평가된다. 그런데 상당수 속담에는 성차별, 장애차별, 민족차별 등과 관련된 부정적 언어 요소가 들어 있다. 장애차별 속담들이 특히 많은데, 속담이 전달하는 의미 또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아주 부정적이다.

‘병신 고운 데 없다’, ‘병신이 한 고집이 있다’는 장애인 총칭 표현인 ‘병신’이 들어간 속담이다. 장애인은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고집이 세다는 편견을 드러낸다. 언어 장애인 비하 표현 ‘벙어리’가 들어간 ‘벙어리 냉가슴 앓듯’, ‘벙어리 차접을 맡았다’는 사람이 무능력하고 제 기능을 못한다는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귀머거리 귀 있으나 마나’도 청각 장애인을 무능력한 사람으로 비유한 속담이다. ‘귀머거리 삼 년이요 벙어리 삼 년’에서는 ‘못 들은 체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장애인을 이용해 표현했다. 특히 이 속담은 여성의 행동을 극도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여성 차별적 속담이기도 하다.

이러한 속담들은 장애인을 향한 편견과 비하 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어려운 처지의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점에서 정의롭지 못하다. 21세기를 사는 한국인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언어 유물임이 분명하다. 이런 속담조차 무슨 대단한 삶의 지혜가 들었다고 ‘표준’ 국어사전에까지 실어서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지 의문이다. 한국어 화자들에게 바른 언어 사용의 규범을 제시하려는 국어사전에 장애인 차별적 내용이 가득 찬 것은 언어 인권의 면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학계의 관심과 노력을 통해 빠른 수정이 필요하다.

이정복 대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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