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비극, 다단계 금융사기] <3>악마의 덫에 빠진 사람들
화려한 언변의 본부장ㆍ팀장급들, 피해 규모 키우는데 결정적 역할
다단계 금융사기업체인 IDS홀딩스와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의 피해 규모를 키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들은 본부장, 팀장 등의 직함으로 불린 모집책이다. 사기업체가 외환(FX) 마진 거래(IDS)나 장외주식 매입(VIK)과 같은 그럴 듯한 아이템을 내놓으면 이를 재료 삼아 보험이나 재무설계, 다단계, 방문판매 등 자신의 분야에서 갈고 닦은 화려한 언변으로 고객들의 경계심을 풀고 주머니를 열게 하는 게 그들의 역할이었다. 이들은 어떻게 수천만원에서 수억 원까지 투자하도록 사람들을 무장해제시켰을까. 전직 IDS 모집책 두 명이 “다시는 이런 사기 범죄가 일어나선 안 된다”며 어렵게 인터뷰에 응했다.
생활용품을 파는 다단계 업체에서 일하다가 2014년부터 IDS로 옮겨 모집책으로 활동한 서모(54)씨는 활동기간 동안 무려 투자금 144억원을 유치했다. 그 결과로 100억원 이상 투자금을 모집한 사람만 얻을 수 있는 ‘본부장’ 직함을 얻었다. 서씨의 ‘성공’ 비결은 느긋함이었다. “‘IDS는 직접 FX 마진 거래를 하는 딜러에게 돈을 빌려 주고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고 원금 손실 방지 장치도 있다’고 설명하면 고객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투자를 하려고 하거든요. 그러면 저는 오히려 ‘왜 이리 급하시냐, 적어도 다섯 번 정도는 더 고민해 보고 다시 돌아오시라’고 만류합니다. 그러면 다시 안 오는 사람도 있지만 돌아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태도에 사람들이 더 신뢰를 느꼈던 것 같아요.”
서씨는 원금 손실 가능성도 언급해 고객들로 하여금 ‘이 회사는 정상적인 금융회사’라는 인상을 심어 줬다. 서씨는 “고객들이 원금 손실이 날 수도 있냐고 물어 보면 ‘나라도 망하고 은행도 망하는 데 100% 원금 보장이 어떻게 가능하겠냐’고 반문했다”며 “IDS는 수수료 수입으로 돈을 벌기 때문에 IDS와 거래하는 딜러 수가 줄어들면 손실이 날 수 있고, 관건인 딜러 영입이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다고 약점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물론 사기행각의 핵심인 돌려막기는 설명되지 않았다. 모집책에 따라서는 투자자들에게 원금을 절대 보장한다고 약속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서씨는 주로 한국금융투자협회가 운영하는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교육원에서 설명회를 열었는데, 이 역시 IDS가 건실한 금융기관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는 데 효과적이었다.
본부장보다 낮은 중하위 직급 모집책들은 ‘나도 투자해 봤더니 괜찮더라’라는 경험담을 바탕으로 지인들을 공략했다.
“이율이 연 2% 중반대밖에 안 되는데 은행에 돈 넣어 두면 뭐하겠나, IDS는 최소 월 1%(연 12%) 이자는 주는데 당분간 이자소득세도 부과되지 않는다.” 2015년부터 1년간 IDS에서 팀장급 모집책으로 일한 정모(51)씨가 썼던 단골 멘트다. 정씨는 “IDS가 단 한번도 이자를 늦게 준 적이 없고, 중도 해지를 해도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점, 이자 지급 날이 휴무일일 때는 이자를 선지급할 정도로 회사가 신뢰할 만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서씨와 정씨는 현재 선고를 앞두거나 검찰 수사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는 심정으로 IDS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는 모집책들이 투자수익뿐 아니라 고객들의 도덕성에 호소하며 ‘착한 투자’를 강조한 게 특징이다. 이를 통해 투자자와 금융회사의 관계를 가치관을 공유하는 공동체적 관계로 발전시키며 투자자의 경계심을 허물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VIK가 만든 2015년 고객 수기집에는 이런 특징이 잘 나타난다. 모집책들은 ‘VIK는 스마트하면서도 선한 자본을 지향한다’ ‘건강한 투자를 통해 공동체의 복리증진에 기여한다’ ‘사회를 살릴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투자자들은 기억했다. 모집책의 이런 설득의 결과였는지, 일부 투자자들은 “VIK가 힘 있는 선한 자본으로서의 시대적 소명을 다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죽기 직전까지 (VIK와) 함께 가고 싶다”며 강한 공감을 보이기도 했다. VIK가 IDS와 달리 파산을 면하고 아직까지 살아 남아 있는 원인을 이 같은 맹목적 충성심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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