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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바닷속 오아시스가 사라진다

입력
2019.11.12 18:00
수정
2019.11.12 18:2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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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오아시스 역할을 하는 산호초마저 황폐화되고 있다. 산호초가 하얗게 변하는 백화현상이 바로 그것. 백화현상은 보통 10m 미만의 얕은 바다에서 일어난 현상이었지만 최근에는 30~150m 깊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사진은 2018년 4월 백화(폐사)현상을 보이고 있는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대산호초)의 모습. ARC 대산호초연구센터 제공
바닷속 오아시스 역할을 하는 산호초마저 황폐화되고 있다. 산호초가 하얗게 변하는 백화현상이 바로 그것. 백화현상은 보통 10m 미만의 얕은 바다에서 일어난 현상이었지만 최근에는 30~150m 깊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사진은 2018년 4월 백화(폐사)현상을 보이고 있는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대산호초)의 모습. ARC 대산호초연구센터 제공

“인간이 만든 것 하나 없이, 꼭대기가 전부 돌멩이인 거대한 둑으로 된, 환초 하나하나를 본다는 것은 정말이지 굉장한 놀라움이다.”

1605년 프랑수아 피라르 드 라발이 한 이야기다. 찰스 다윈은 이 문구를 프레데릭 윌리엄 비치 함장의 항해기(1826년)에서 읽고는 후에 자신의 ‘비글호 항해기’(1839년) 제20장과 지질학 전문서인 ‘산호초의 구조와 분포’(1842년) 서문에 연거푸 언급했다. 1836년 비글호가 호주 남서부를 돌아 인도네시아 남서쪽 코코스 제도에 도착했을 때 다윈은 수많은 환초를 보고서 피라르 드 라발의 묘사를 떠올린 것이다.

환초는 고리 모양의 산호초를 말한다. 파도치는 파란 바다 한가운데 하얀 해안이 있는 섬이 있고 섬 안에는 다시 에메랄드빛의 잔잔한 바다가 있다. 환초들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과거의 항해자들은 산호를 만드는 동물들이 본능에 따라 환초 안쪽에 있는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거대한 고리를 만들어 쌓았다고 여겼다. 그야말로 상상이다. 속과 과가 다른 많은 종의 산호들이 같은 목적으로 협력해야 하는데, 그런 예를 자연계에서는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 환초 아래에는 화산의 화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다. 백두산 천지를 둘러싼 봉우리 같은 것들이 바다 밑에 있고 그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능선에서 산호가 자라났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환초의 모양과 크기, 위치를 생각해보면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산호는 깊은 곳에서 살지 않는다. 연평균 수온이 대략 25도이며 수심 30~100m인 얕은 바다에서만 산다. 산호가 죽으면 석회질로 변하여 산호초를 형성하는데 산호초는 1년에 1.5㎝ 정도 자란다. 태평양의 산호초는 15~20만년 정도 자란 셈이다.

지질학자인 찰스 다윈은 환초 주변의 수심을 측정한 끝에 환초가 생기는 과정을 3단계로 추정했다. (1) 먼저 섬을 둘러싼 가장자리를 따라서 산호가 자라는데 섬이 살짝 가라앉는다. 그 결과 산호초의 윗부분이 공기 중에 노출되고 이곳의 산호는 죽는다. 섬 가장자리에 드러난 산호초를 거초(裾礁)라고 한다. (2) 섬은 계속 가라앉고 그 결과 산호초와 섬 사이에는 고리 모양의 호수가 생긴다. 이때 고리 모양의 산호초를 보초(堡礁)라고 한다. (3) 결국 섬이 완전히 가라앉고 그 사이에도 산호초는 계속 자란다. 고리 모양 산호초 둑 안에 동그라니 호수만 남는다. 이 산호초를 환초(環礁)라고 한다. 거초→보초→환초로 이어지는 3단계 산호초 진화 과정은 지금까지도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찰스 다윈은 산호초뿐만 아니라 산호의 생태계에도 큰 호기심을 가졌다. 산호초에 사는 다양한 생명들을 관찰하고 산호 조각을 얼굴과 팔에 비빈 후 생기는 고통의 정도와 지속시간을 노트에 기록할 정도였다.

바다에서 산호초가 차지하는 면적은 0.1%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기에 바다 생물 종의 25%가 산다. 예를 들어 호주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는 둘레가 2,300㎞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산호초 군집인데 여기에는 661종의 산호, 1,600종의 어류, 30종의 고래와 돌고래 그리고 세계 7종의 바다거북 가운데 6종이 산다.

산호초의 화려한 생태계는 이해하기 어렵다. 산호초는 육지의 영양분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바다의 사막에 있는 셈이다. 영양분이 결핍된 곳이다. 그런데도 산호초에는 물고기가 북적인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말이다. 다윈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이 문제를 ‘다윈의 역설’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윈은 끝내 이 문제를 풀지 못했다.

올해 5월 캐나다 과학자들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이 비밀을 알 수 있다. 바다 밑바닥에 숨어 사는 엄청난 수의 물고기가 급속히 성장하고 죽으면서 산호초 물고기 먹이의 60%를 공급한다. 산호초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이 물고기들은 다 자라도 5㎝가 채 되지 못한다. 이들은 개체 수는 많고 수명이 두 달 정도로 짧다. 태어나자마자 다 잡아 먹히지만 워낙 많이 태어난다. 한 해에 번식을 7번이나 하는 종도 있다. 생산 즉시 소비되는 컨베이어 시스템이 산호초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바닷속 오아시스 역할을 하는 산호초마저 황폐화되고 있다. 산호초가 하얗게 변하는 백화현상이 바로 그것. 백화현상은 보통 10m 미만의 얕은 바다에서 일어난 현상이었지만 최근에는 30~150m 깊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백화현상은 주로 25~30년 주기로 엘리뇨가 극심해지는 해에 나타나는데 이제는 5~6년 주기로 발생한다. 지구온난화의 문제가 일상화된 것이다. 나는 지난 9월에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에 직접 가서 산호를 관찰했다. 처참했다. 호주 정부가 현장 관리를 아무리 잘해도 기후위기에는 소용이 없다. 나는 고백한다.

“인간이 만든 것 하나 없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다의 오아시스 산호초가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위기로 인해 단 수십 년 사이에 망가지는 것을 본다는 것은 정말이지 처참한 괴로움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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