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정규 ㈜암흑 대표

“은행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제일 먼저 갔는데 번호표 뽑는 곳을 못 찾겠더라고요. 시각장애인임을 밝히면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저기로 가보세요’ 하더군요. 당연히 어딘지 알 수가 없었죠. 겨우 번호표를 뽑았을 땐 이미 대기자 수가 10명 가까이 됐죠.”

사회적기업 ㈜암흑을 운영하는 성정규(44)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시각장애를 체험하거나 시각장애인을 대해본 적이 없어 실수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꾸고 싶어 암흑 카페를 창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프랑스에 있는 블라인드 레스토랑을 참고해 만든 암흑카페는 빛을 전혀 볼 수 없는 ‘전맹’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장애를 대하는 태도는 진중하거나 무겁지 않다. 오히려 가볍고 경쾌하다. 성 대표는 “음식을 먹고 게임을 하며 자연스럽게 시각장애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곳에선 보드게임, 비밀편지 쓰기, 암흑 탁구, 식사하기, 가상현실(VR) 체험 모두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암흑 속에서 이뤄진다. 그렇다 보니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 위한 연인이나 가족이 주로 이곳을 찾는다. 기업에서 단체로 방문하는 경우도 많다.

외모나 직업 등 눈에 보이는 조건 없이 연인을 찾기 위한 ‘깜깜이 소개팅’도 운영한다. 카페 홈페이지에 간단한 프로필과 좋아하는 연인상을 올려놓은 뒤 상대방이 해당 글을 보고 신청하면 소개팅이 이뤄지는 식이다. 성 대표는 “한 달에 5건 정도 소개팅이 이뤄진다”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오로지 대화만으로 상대방을 알아간다는 게 큰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2014년 창업 이후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월 수백 명이 암흑카페를 방문할 정도로 사업이 안정궤도에 올랐다. TV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소개됐을 때는 대기 시간만 2시간 넘을 정도로 고객이 몰렸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시각장애를 떠안은 성 대표는 여기에 오기까지 꽤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1급 시작장애인이 됐다.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뿌옇게 보였다. 시신경에 염증이 생긴 탓이었다. “고교 3학년 때 처음 일자리를 얻었어요. 제과회사에서 과자 상자를 나르거나 제본소에서 인쇄한 책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었죠. 적은 월급(60만~80만원)보다 힘들었던 건 장님, 벙어리 등 장애인을 폄하하는 말이 희화화되는 사회 분위기였어요.” 장님은 맹인을, 벙어리는 언어 장애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23살 때 서울에서 강원 홍천ㆍ춘천으로 무작정 떠난 무전여행은 세상을 비관하던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다. 성 대표는 “힘내라고 용돈을 쥐어주고, 차도 태워주는 걸 경험하면서 좋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4일 만에 서울로 다시 돌아온 그는 라디오에서 나온 장애인 취업 광고를 듣고 텔레마케팅 교육을 받았다. 이후 온라인으로 휴대폰을 파는 사업을 시작했고, 화장품 쇼핑몰도 창업했다. 2006년 서울 연희동에 낸 안마원이 인기를 끌면서 2009년엔 서울 강남구에 2호점도 차렸다. 성 대표는 “장애를 후천적으로 얻게 되는 경우가 88%에 달하지만 누구도 장애인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렇다 보니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바꾸고 싶어 2014년 시각장애 체험카페를 차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시각장애인 3명, 뇌병변장애인 1명, 지체장애인 2명의 직원을 고용했다. 지금은 직원 5명 중 4명이 저소득가구 등 고용취약계층이다. 지난해 4월엔 장애인식 개선 노력을 인정받아 장애인고용촉진대회에서 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았다.

성 대표는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5월 장애인식개선교육강사 자격증을 땄고, 두 달 뒤 암흑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직장 내 장애인식개선 교육기관으로 지정받았다. 보통 1,2개 인증을 받은 다른 장애인인식개선 기관과 달리, 국내에서 처음으로 집체교육, 체험교육, 온라인 원격교육 등 3종 모두를 수행할 수 있는 인증을 받았다. 지난해 5월부터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모든 사업체에선 의무적으로 1년에 1회, 1시간 이상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장애는 예고하고 오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인식 개선 교육이나 체험을 통해 건강하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또 장애인들이 어떻게 얼마나 불편한지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성 대표는 ‘장애 체험 박물관’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 시각 장애뿐 아니라, 청각ㆍ지체ㆍ언어ㆍ호흡기 장애 등 15가지 장애 유형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면 장애인 인식 개선이 보다 효과적으로 이뤄질 거라는 생각에서다. 성 대표는 “사회적 가치 실천에 관심 있는 기업들의 투자를 받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지금보다 더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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