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충북도 ‘9988 행복지키미’ 
 
‘9988행복지키미’로 활동중인 이명구(오른쪽)씨가 거동이 불편한 최선자(가명)씨 집을 방문해 방청소를 하고 있다. 보은군 제공

“누님, 간밤에 편히 주무셨어요? 감기는 좀 어때요?”

기온이 뚝 떨어진 15일 오전 충북 보은군 회남면 한 두메 마을의 허름한 가옥. 방문을 열고 들어선 이명구(77)씨의 손에는 따뜻한 차를 담은 보온병이 들려 있다. “아이구 어서 와. 동생이 사다 준 약 먹고 많이 좋아졌어.”

소파에 누워 TV를 보던 최선자(가명ㆍ82) 할머니는 반갑게 이씨를 맞았다. 두 사람은 오붓이 차를 마시며 마을 돌아가는 얘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이씨가 매일같이 최 할머니를 찾아 몸 상태를 살피고 말벗이 된 지는 올해로 3년째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집에 들러 청소도 하고 농사일도 도와준다. 마을 토박이인 그는 최 할머니 외에도 이웃 주민 신모(84)씨와 한모(78)씨 등 두 사람을 더 돌보고 있다.

최 할머니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이 외지에 사는 자식들 대신 살림도, 건강도 챙겨준다. 이젠 남매보다 더 친한 사이가 됐다”고 좋아했다.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사는 오문자(79)씨도 아침이면 같은 동네 김모(86)할머니 집을 찾는다. 10여년 전 척추 수술 후 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 김 할머니를 돕기 위해서다. 오씨는 반찬거리도 사가고 밀린 빨래나 설거지도 해 드린다. 그러던 지난 6월 거실 바닥에 오른쪽 팔이 눌린 상태로 쓰러져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오씨는 급히 119에 신고한 뒤 김 할머니가 정신을 잃지 않도록 팔다리 등 온몸을 주물렀다. 혼수상태까지 갔던 김 할머니는 다행히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았고, 지금은 서서히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이씨나 오씨처럼 혼자 살거나 몸이 불편한 노인을 찾아 가족처럼 보살피는 도우미를 충북에서는 ‘9988행복지키미’라고 부른다. 충북도는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9988행복지키미 사업’을 2014년 처음 시행했다. 건강하고 봉사 정신이 강한 노인을 ‘행복지키미’로 선정해 소외된 취약계층 노인을 돌보게 하는 시책이다. 9988은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뜻이다.

행복지키미는 각 지역의 노인회, 시니어클럽, 노인복지관의 심사를 거쳐 마을 별로 1~2명을 선발한다. 선발된 이들은 돌봄 대상 노인 가정을 주 3~4회,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매일 방문한다. 산간 오지마을 노인은 주 3회 방문하되, 매일 2차례 전화로 안부를 확인한다. 이렇게 월 30시간 이상 소외된 이들을 돌보고 소정의 활동비(27만원)를 받는다.

이 사업은 시작부터 호평을 받았다.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등 낯선 사람이 아니라 비슷한 또래의 이웃 주민이 편하게 다가오는 방식이 노인들에게 쉽게 다가간 것이다. 첫 해 2,000명으로 시작한 행복지키미는 이듬해부터 크게 늘었다. 올해는 도내 전 지역에서 5,602명의 행복지키미가 2만 9,700명의 취약층 어르신들을 돌보고 있다.

행복지키미로 나선 노인들의 반응도 뜨겁다. 충주시 대소원면에서 4년째 행복지키미로 활동중인 이창균(80)씨는 “건강할 때 활동하면서 이웃도 도울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하다. 9988덕분에 몸도 마음도 건강한 노후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제천시 청풍면에서 82세 청각장애인을 돌보고 있는 안순자(78)씨는 “언젠가는 나 자신도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행복지키미 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응이 좋자 정부는 ‘9988행복지키미’사업을 ‘노(老)-노(老)케어’ 모델로 삼아 2015년부터 전국 공통사업으로 확대했다. 현재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가 다양한 명칭으로 이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충북도와 도내 시군은 매년 ‘9988행복지키미 한마당 축제’를 열어 우수 사례를 발표하고 시상도 한다.

김광홍 대한노인회 충북회장은 “노인끼리 서로 돕고 외로움을 달래는 ‘9988행복지키미’는 고독사, 자살 등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건강한 노년의 삶을 뒷받침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청주=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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