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국정 대전환을 촉구하는 단식 투쟁을 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대(對)여권 투쟁 수단으로 택한 단식은 과거에도 주요 정치인들의 ‘최종 승부수’로 종종 활용돼 왔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도 단시간에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방법이어서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오래 됐으면서도 자주 언급되는 단식 투쟁은 1983년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식이다. 당시 정치풍토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가택연금 상태였던 김 전 대통령은 5월 18일 학생ㆍ종교인ㆍ지식인의 석방과 복학ㆍ복직, 언론 통폐합 백지화, 대통령 직선제 회복 등을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주변의 만류와 입원에도 23일간 단식이 이어졌고 김 전 대통령은 단식을 마치면서도 “앉아서 죽기보다 서서 싸우다 죽기 위해 중단하는 것”이라며 결기를 보였다. 그의 단식은 결국 김대중의 동교동계와 김영삼의 상도동계가 하나로 뭉쳐 이듬해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하는 계기가 됐다.

1983년 5월 민주화 운동을 하다 수감된 학생, 종교인, 지식인 석방 등을 요구하며 23일 간 단식투쟁을 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습. 한국일보·연합뉴스 자료사진

1990년에는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방자치제 실시와 개각제 개헌 포기 등을 요구하며 13일간 단식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요구는 1991년 지방의회 선거로 일부 실현됐고 1995년에는 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되며 그 뜻이 달성됐다.

90년대 이전 단식이 민주화를 위한 것이었다면 문민정부 출범 이후 단식은 야당 지도부가 특정 정책을 요구 또는 반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의미가 다소 바뀌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11월에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열흘간 단식으로 노무현 측근 비리 수사를 위한 특검 도입을 관철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2018년 5월 11일 오전 국회 본관 앞에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특검을 요구하며 9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김성태(왼쪽)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작년 5월에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한 특검을 위해 9일간 단식, 뜻을 이뤘다. 같은해 12월에도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한 후, 여야 5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합의하자 9일 만에 단식을 마쳤다.

모든 단식이 목표를 이룬 것은 아니었다. 2007년에는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반대해 26일간 단식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또 2016년 9월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여당 대표로서 이례적으로 단식에 돌입했지만, 당초 목적이었던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이뤄내지 못하고 비판 여론으로 인해 7일 만에 포기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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