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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한국일보문학상] “소설쓰기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 실감케 해”

입력
2019.11.26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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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심 심사평 

제52회 한국일보문학상 심사위원인 소설가 은희경(왼쪽부터), 시인 오은, 문학평론가 박혜진, 소설가 편혜영, 문학평론가 강지희, 소설가 전성태, 문학평론가 김형중. 류효진 기자
제52회 한국일보문학상 심사위원인 소설가 은희경(왼쪽부터), 시인 오은, 문학평론가 박혜진, 소설가 편혜영, 문학평론가 강지희, 소설가 전성태, 문학평론가 김형중. 류효진 기자

심사 대상작 150여 편 중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열 편, 몇 주 간의 숙고 끝에 본심을 진행했다. 열 편 중 본심에서 중요하게 거론된 작품은 공선옥 작가의 ‘은주의 영화’,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 윤이형 작가의 ‘작은마음동호회’, 정소현 작가의 ‘품위 있는 삶’ 이렇게 총 네 편이었다.

‘은주의 영화’는 문체가 돋보였다. 특히 후반부의 작품들은 마치 접신 상태에서 쓰기라도 한 것처럼 문장에서 어떤 가락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가락은 전 시대 한국 소설에서 자주 거론되곤 하던 민족적 형식, 토속적 분위기 등과는 사뭇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이 작품집은 말 그대로 언어화 불가능한 고통이 어떻게 노래로 쏟아져 나오는가를 예증한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신인 작가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능수능란한 화법이 눈에 띄는 작품집이었다. 자조가 삶의 방식이 되어 버린 이즈음 청춘들의 지질한 일상과 연애를 다루고 있다지만, 작가는 직전 세대 작가들에게서 물려받은 유머를 잃지 않는다. 게다가 바로 그 지질한 일상 속에 진정으로 숭고한 것들이 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한국 퀴어 소설의 일대 도약이라는 점에 이견이 있을 수는 없었다.

‘작은 마음 동호회’는 여러 가지 이유로 울림이 큰 작품집이었다. 실린 작품들의 성취도도 탁월했지만, 여성 작가로서 지난 수년 동안 한국 문학장 내 일련의 사태들을 통과하면서 겪은 마음의 고초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실린 작품들의 스펙트럼은 넓었으나 올바른 것들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작가의 결기가 모든 작품에서 고루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전위란 말을 반드시 언어적 실험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본심 대상작들 중 가장 전위적인 작품집이었다.

‘품위 있는 삶’은 소설을 쓴다는 일이 얼마나 고된 노동인가를 실감하게 하는 작품집이었다. ‘인식적 지도 그리기’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들 하는 우리 시대에, 차라리 ‘인식적 미로 그리기’를 택한 이 작가는 매 작품마다 고도로 치밀한 구성과 밀도 높은 문장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럴 때 작가가 글쓰기에 들이는 공이 얼마나 클 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작가가 그리고 있는 세계 또한 암담한 지옥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글쓰기에 투여되었을 이른바 ‘감정 비용’의 양으로는 이 작품집을 넘어서기 힘들어 보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심사는 쉽지 않았다. 만장일치는커녕 총 네 차례의 투표를 거쳐야 했고, 특히 윤 작가의 작품집과 정 작가의 작품집을 두고는 심사위원 모두 일종의 결정 불능 상태를 겪어야 했다. 반전도 있었다. 그러나 심사 과정을 논쟁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두 작품집에 대한 신뢰는 모두 동일했기 때문이다. 긴 논의가 끝난 후 심사위원들은 정 작가의 ‘품위 있는 삶’을 올해의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만장일치했다.

심사위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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