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창설 70주년을 맞아 29개 회원국 정상들이 한 자리에 모였지만 축하 분위기 대신 팽팽한 긴장이 감돌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위비 증액을 고리로 나토의 근간을 흔든 데 이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까지 존립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서면서 70살 동맹은 잔칫상을 앞에 두고 벼랑 끝에 선 모습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나토 회원국 정상들은 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만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마련한 리셉션 등에 참석하고 4일 인근 골프 리조트에서 서너 시간의 짧은 공식 회의를 갖는다. 나토는 이번 회의를 정상회의(summit)가 아닌 단순 만남(meeting)으로 규정하고 시종 로우키(low-key) 대응을 유지하고 있다. 영국 왕립국방연구소의 말콤 찰머스 부국장은 신문에 “큰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아닌 충돌을 최소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가장 큰 관심이 쏠린 곳은 단연 트럼프 대통령의 입이다. 그간 ‘나토 무임승차론’을 설파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회의에서 회원국들에 추가로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겠다고 공언해서다. 전날 회의 참석을 위해 영국으로 떠나면서도 그는 “나는 미국을 위해 싸우고 있다”며 “알다시피 미국이 너무 많이 내기 때문에 공정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방위비 압박 의지를 재확인했다. 또 방위비를 충분히 내지 않는 국가들을 향해 ‘채무불이행’(delinquent)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불만을 드러냈다. 앞서 CNN 등에 따르면 나토는 2021년부터 미국의 운영비 분담률을 연간 16%(기존 22%)로 낮추기로 했으며, 일찌감치 회원국들은 국방 예산을 2024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2%로 늘리기로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리한 요구는 나토 동맹의 핵심가치에 반하는 것으로, 신뢰 붕괴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70년간 나토를 지탱해온 대원칙은 북대서양 조약 5조에 명시된 ‘집단 방위 의무’였다.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나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공동 대응에 나선다는 것이다. 미국은 2001년 9ㆍ11 테러 직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유일하게 이 조항의 혜택을 봤고, 역대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집단방위 의무 준수를 천명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함께 미국은 “방위비 인상 없이는 집단 방위도 없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그 결과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 특히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작심한 듯 “나토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 상의 없이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킨 점, 나토 회원국인 터키가 다른 나라의 반대에도 IS 격퇴전의 동맹이었던 쿠르드족을 공격한 점 등을 들어 “당장 내일 (집단방위 조약이)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 회의론을 펼쳤다. ‘유럽 연합군’을 만들어 독자적 방위에 나서자는 대체 카드도 꺼내 들었다.
한편 트럼프는 3일 나토 정상회의 시작에 앞서 마크롱의 ‘나토 뇌사’ 발언에 대해 “매우 모욕적”이라면서 “28개국에 아주 아주 못된(nasty)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가 말한 28개국은 프랑스를 제외한 나머지 나토 회원국을 뜻한다. 그는 이어 “프랑스보다 더 나토를 필요로하는 나라는 없다”면서 “(미국이 아닌) 프랑스가 (나토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토마스 발라세크 전 슬로바키아 나토 대사는 워싱턴포스트(WP)에 “이번 회의 분위기는 트럼프와 마크롱 대통령, 그리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좌우할 것”이라며 “적어도 한 명의 유럽 지도자(마크롱)는 더 이상 트럼프를 달랠 기분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나토 측은 행사를 앞두고 갈등 진정에 애쓰는 모습이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전날 디펜스뉴스 기고에서 러시아의 독단적 행보와 테러위협 등을 언급하며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집단 방위를 강화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또 “유럽과 캐나다는 5년 연속 국방비 지출을 늘려왔고 내년 말까지 2016년 대비 1,000억 달러를 추가 투입할 것”이라며 “더 많은 동맹국이 2024년까지 GDP의 2%를 방위비로 쓰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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