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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이 파장 분위기를 견딜 수 없다

입력
2019.12.04 18:10
수정
2019.12.04 18: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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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앞이면 새로운 10년의 시작

무력감 속 어떤 희망메시지도 없어

야당 검찰 탓 말고 정부는 할일 해야

청와대 전경. 홍인기 기자
청와대 전경. 홍인기 기자

이제 한달 후면 2020년, 21세기의 세 번째 10년이 시작된다. 누구는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하겠지만, 책장 하나를 넘겨도 눈을 더 크게 뜨고 더 집중하기 마련인데, 새로운 10년의 시작이라면 요란하게는 아니더라도 의미를 부여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본다. 지금처럼 답답하고 캄캄한 때일수록, 어떤 전환점을 맞아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것을 구분하면서 새롭게 다짐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돌파구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어디서도 새로운 10년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가 없다. 뭘 하자, 뭘 하지 말자는 것도 없고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는 것도 없다. 아무런 희망과 포부도 없이, 담담하다 못해 이토록 무기력하게 새 10년을 맞이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외환위기의 고통 끝에 새 천년(2000년)을 맞았을 때, 또다시 혹독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2010년을 앞두고 있었을 때, 지금보다 훨씬 어둡고 힘들었던 시절이지만 이러지는 않았다. 사회 전체가 파장 분위기다.

보통 달콤한 메시지는 정부로부터 나온다. 설령 장밋빛으로 덧칠했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정부는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새로운 10년의 서막이라면 좀 오버액션할 법도 한데, 지금 정부 어디서도 그런 움직임은 없다. 꿈 같은 수치와 선언적이지만 매력적 정책으로 가득한, 그 흔한 ‘비전 2020’같은 발표나 이벤트도 없다.

그래서 정부가 더 파장 분위기를 주도한다는 생각도 든다. 조국 사태 이후 정부, 특히 청와대는 목표점과 방향감을 완전히 잃은 모양새다. 경제, 남북, 동맹관계 어느 것 하나 풀리는 게 없는 탓도 있지만 조국 파동 당시 이해할 수 없는 오판으로 국민들이 등을 돌리고, 이후 검찰과 대치하면서도 결국은 밀리는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하루하루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다. 군림하는 정부가 아닌 것까지는 좋은데, 과연 이게 임기가 겨우 절반 지난 정부의 모습인가 싶기도 하다. 자기방어조차 버거운 정부에서 ‘새로운 10년의 희망’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만약 정부가 이걸 무책임한 야당과 오만한 정치검찰 탓이라고 하면 답이 없다. 야당의 공세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검찰도 뽑은 칼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둔한 무력감으로 감싸인 파장 분위기부터 바꿔야 한다.

피로감이 역력한 대통령은 그렇다 치자. 과연 장관들은 어디에 있나. 얼굴이 익숙한 장수 장관들은 더 피로해 보이고, 새 장관들은 누군지조차 알 수가 없다. 현장 지휘관인 장관들의 존재감이 없는데 국정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총리와 장관 몇 명으론 안 된다. 아무리 청문회 벽이 높다 해도, 자기 편이 아닌 데서 데려오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을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이 파장 분위기를 깨기는 어려워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잔여 임기 2년 반은 충분히 긴 시간이다. 노무현 정부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한미FTA는 집권 4년차였던 2006년에 본 협상이 시작돼 임기 마지막 해에 최종 타결을 이뤘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며 역대 가장 대기업 친화적 정부로 출범했던 이명박 정부는 임기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중소기업 중심의 ‘동반성장’으로 궤도를 180도 수정했다. 찬반 논란이 큰 정책이었지만 공기업 철밥통을 깨기 위해 성과연봉제를 시행했던 것도 박근혜 정부 중반 이후였다.

임기 후반부에도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지금 같아선 집값과 씨름하고, 재정만 쏟아 부으면서 2년 반을 보낼 것 같은데 그래선 안 된다. 정부는 단 하루 동안에도 보통사람과 기업들이 1년, 10년이 걸려도 못 한 일을 해낼 수 있다. 야당은 야당이고, 검찰은 검찰이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정책은 바로 잡고, 해야 할 일을 다시 찾아내서, 새로운 10년 희망의 메시지를 줬으면 한다. 분노와 우울만 남은 이 견딜 수 없는 파장 분위기를 깨줬으면 한다.

이성철 콘텐츠본부장 sc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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