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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DLF 사태 재발 막으려면

입력
2019.12.06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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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상품 위험성 소수전문가만 이해 가능

79세 치매 노인만 최고율 배상은 무책임

복잡한 상품 쉽게 비교할 ‘넛지’ 고민해야

DLF(파생결합펀드) 피해자들이 5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DLF 사태,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개최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우리·하나은행의 불완전판매가 아닌 사기판매를 주장하며 계약 무효와 일괄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DLF(파생결합펀드) 피해자들이 5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DLF 사태,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개최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우리·하나은행의 불완전판매가 아닌 사기판매를 주장하며 계약 무효와 일괄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투자 경험이 없고 난청에 치매까지 앓고 있는 79세 노인에게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을 판매한 은행에 투자손실액의 80%를 배상하라는 권고가 나왔다. 금융감독원 조사에 따르면 문제의 은행은 이 노인을 ‘적극 투자형’으로 분류했고, ‘위험등급 초과 상품 가입 확인서’에 서명도 건너뛰었다. 투자 경험이 없는 60대 주부에게 ‘손실 확률 0%’만 강조한 사례에 대해서는 75% 배상을, 손실 배수 등 위험성을 설명하지 않고 안전성만 강조한 경우는 40%만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이 같은 결정에 투자 피해자들은 일괄 배상하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최고 배상 비율 80%는 종전 유사 피해 배상 중 사상 최고라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다. 그러나 투자자 책임 범위에 대한 구분은 자의적이고 행정 편의적이다.

문제가 된 DLF는 미국과 유럽연합(EU) 간 무역전쟁 위험성이 고조되던 시기 독일 등 유럽국가 국채금리가 급락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높아지자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고안된, 극도로 복잡한 파생상품이다. 주로 유럽의 거액 자산가와 금융기관이 국채금리 급락 시 손실을 막기 위한 옵션 상품을 설계했고, 그 위험을 떠안을 반대 포지션의 상품을 지구 반대편에 판매한 것이다. 그것도 “유럽 경제의 건전성에 투자하는 안정적 상품”이라는 설명으로 포장해서.

은행 창구 직원이 이런 복잡한 구조의 DLF 투자 위험성을 아무리 알아듣기 쉽게 설명한들 79세 치매 노인은 고사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조차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옷을 살 때는 제품설명서나 구매후기 등을 꼼꼼히 읽고 이곳 저곳 비교한 후 구매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금융상품에 투자할 때는 은행 직원의 말만 듣고 여러 번 서명을 하면서도 별로 불안해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실상을 잘 아는 금감원이 나이, 투자 경험, 손실 배수 설명 유무 등 자의적 기준을 정해 배상 비율을 차별화하는 것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자 책임 회피다.

앞서 지난달 14일 금융위원회는 반복되는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내놓았는데, 원금의 20% 이상 손실 위험이 있는 사모펀드를 은행에서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골자였다. ‘금융소비자에게 아무리 열심히 상품을 설명해도 완전할 수 없으니, 고위험 고수익 상품은 아예 팔지 말라’는 논리인 듯한데, 이 역시 행정 편의적 결정이다.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고위험 상품은 그 상품을 이해할 수 있는 똑똑한 사람들에게만 팔 테니, 나머지는 1%대 금리의 예ㆍ적금에 만족하고 살아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 말이다.

금융당국이 처한 이 같은 딜레마를 해결할 방안이 없는 건 아니다. 10년 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소비자금융보호국(CFPA)을 신설했는데, 이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탈러와 함께 ‘넛지’(nudge)를 쓴 카스 스타인 하버드 로스쿨 교수의 제안이 큰 역할을 했다. ‘넛지’는 강요가 아닌 ‘유연한 개입’으로, 사람이 합리적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기술을 다룬 행동경제학의 베스트셀러다. CFPA는 보통사람이 복잡한 금융상품을 선택할 때 발생하는 잘못된 선택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적절한 넛지를 제공하는 것을 주 목표로 삼았다. 예를 들어 복잡한 장기대출ㆍ투자 상품의 경우 이해하기 쉬운 표준상품, 즉 ‘30년 상환 고정금리 대출’이나 ‘5년 상환 변동금리 예금’ 등을 만들어 이와 비슷한 다른 상품의 수익과 위험성을 비교하기 쉽게 하는 식이다.

마침 윤석헌 금감원장도 지난 3일 한 토론회에서 “인간이 지닌 비합리성과 금융회사의 잘못된 판매 행태가 더해지면서 금융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며 “DLF 사태로 금융소비자 보호가 시급해진 상황에서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제도를 연구하는 것이 시의적절하다”고 밝혔다. 연구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현실 적용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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