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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담] “기부금으로 강제징용 해결 ‘문희상案’ 한일 사법부 판단에 배치”

입력
2019.12.12 20:0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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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위 위원장 최봉태 변호사 

최봉태 변호사는 12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지금이라도 한일 정부가 양국 사법부 판단에 따라 배상을 통해 징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최봉태 변호사는 12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지금이라도 한일 정부가 양국 사법부 판단에 따라 배상을 통해 징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지난해 10월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불거진 한일 갈등을 풀어보려는 노력의 하나로 문희상 국회의장의 특별법 발의 작업이 주목 받고 있다. 문 의장은 지난달 초 일본 와세다대 강연에서 처음 구상을 밝힌 뒤 ‘기억ㆍ화해ㆍ미래재단’ 설립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을 마련, 현재 발의를 위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법안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이미 집행력이 생긴 국외 강제동원 피해자들, 재판에서 승소가 예상되는 피해자들 또는 그 유족’에게 ‘양국 기업과 개인 등의 자발적 기부금’을 모아 ‘위자료’를 지급함으로써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를 완성하자는 내용이다.

대법원 판결과 이후 관련 기업 자산 압류 등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해온 일본 정부 쪽에서는 이 작업에 대해 갈등 해결이 가능하다는 모처럼의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 쪽에서는 아직도 사죄하지 않는 일본 정부ㆍ기업에 대한 면책이라거나 피해자 선별에 따른 평등권 침해 등을 우려하며 입법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법원의 미쓰비시중공업 배상 판결을 이끌어낸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 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최봉태(57) 변호사를 12일 만나 문 의장이 구상한 해법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문희상 의장이 징용 문제 해법을 담은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관련 설명을 들었나.

“처음 구상을 밝힌 지난달 와세다대 강연을 현장에서 들었고, 당시 피해자 의견을 듣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조언을 했다. 이후 지난달 19일 국회의장실에서 원폭피해자협회, 위안부 피해자, 군인ᆞ군속 피해자와 함께 첫 모임이 있었다. 피해자들이 주로 요구를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최종안은 아니지만 이미 언론을 통해 문 의장 법안의 이런저런 내용들이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양국 정부가 주장하거나 추진했던 협상과 비교해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와세다대 강연의 취지대로 역사를 직시하면서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하자는 원칙에는 찬성이다.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자는 것도 긍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포괄적으로 하자면서 군인ㆍ군속이나 BㆍC급 전범, 사할린, 원폭피해자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문제다.

게다가 일본 기업이 기부금을 내고 면책 받으면 채무의 본질에 따른 이행이 되지 않는다. 한일 양국 사법부 판단에 저촉된다. 우리 대법원은 말할 것도 없고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도 그 취지는 피해자 개인청구권이 살아 있으니 자발적인 구제를 하라는 것이지 기부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한일 사법부 판단을 무시하는 법을 한국에서 만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위헌일 수도 있다. 문 의장이 피해자들한테 듣는 시늉만 하고 준비한 안을 밀어붙이는 것이라면 역사의 짐이 될지 모른다. 백지 상태에서 다시 시작해 공청회도 열고 다양하게 의견을 수렴하는 게 낫다.”

-강제징용과 관련해서는 일본 최고재판소의 다른 판결도 있지 않나.

“시효나 기업 변경 등을 이유로 패소 판결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이 사안이 해결됐느냐 아니냐다.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다는 판결은 일본 사법부에서조차 없다고 보면 된다. 개인청구권을 소멸시키려 했다면 한일 협정 체결 당시 관련 한국법을 만들도록 해서 개인청구권을 소멸시키도록 일본 정부가 요구했어야 했지만 그런 요구 자체가 없었다. 법적으로 소멸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런 논리를 일본이 수용하지 않아 해법을 찾지 못하고 1년 넘게 한일관계가 악화한 것 아닌가.

“문 의장은 한일 갈등의 원인이 대법원 판결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갈등의 본질은 아베 정권이 양국 사법 판결을 무시하도록 일본 기업을 압박한 것이다. 징용 문제는 일본 법원을 통한 화해 사례가 있고 주주총회에서 위자료를 주겠다고 한 일본 기업도 있다. 사인(私人)의 재판에 일본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판결을 따르지 못하도록 하는 게 본질이다. 우리 대법원 판결을 비틀어 문제를 해결해 보려 할 게 아니라 일본 정부의 부당한 정책을 배척하는 게 올바른 접근법이다.”

-이대로 한일 갈등이 이어져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양국 사법부 판단이 다르면 문제를 풀기 어렵다. 그러나 일본의 판단도 개인청구권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일본 외무성도, 아베 정부도 인정한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청구권을 어떻게 소멸시켜 문제를 풀까를 고민하는게 맞다. 그들에게 일본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하지 않느냐고 설득하면 된다. 정부ㆍ기업이 꿈쩍 않으면 일본 국민을 상대로 직접 호소해야 한다.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 동안 우리는 우리 판결에 따라 독자적인 법을 만들고, 치밀한 외교 전략으로 일본 정부도 견인해내야 한다.”

-‘독자적인 법’은 어떤 내용을 담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나.

“2년여 전 이혜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인권재단 설립 법안’같은 경우 양국 판결을 존중해 한일 정부ㆍ기업이 참여하는 ‘2+2’ 형태의 재단을 설립해 일본 기업이 배상금을 신탁하도록 했다. 도쿄고등재판소의 권유로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와 일본 가지마건설이 화해한 하나오카 사례를 참고해 한일 변호사들이 만든 법안이다. 재단에서는 이 돈의 목적, 규모의 적절성을 심사하는 신탁 업무를 승인해 피해자 구제에 쓴다. 신탁금이 피해자 구제를 위한 배상의 취지면 받아들이고 그냥 기부라면 거부할 수 있다.”

-문 의장 법안이 알려진 뒤 일본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도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 정부ㆍ기업에 무조건 양보하라고 하기보다 일본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식으로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여론을 움직일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는 개인청구권과 관련해 후생연금 탈퇴수당, 원폭피해자 지원금 등을 주고 있다. 한일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은 이런 사례에 반한다. 충분하지 않지만 사할린 징용자 지원 선례가 있고 위안부도 구제를 시도하는데 같은 인권 침해이면서 강제동원은 안 될 이유가 없다. 전후 일본 기업들의 미지급 임금 등 노무자 공탁금 처리를 논의해보자고 일본 정부에 제의할 수도 있다.”

-이달 하순 한일 강제징용 갈등 이후 처음으로 양국 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어떤 대화나 합의가 나오기를 기대하나.

“문 의장 안에 기초한 합의여서는 곤란하다. 과거사 문제를 통상이나 안보와 연계시켜서도 안 되는데 아베가 이를 시도해 한일 관계가 악화한 것이고 우리도 마찬가지로 이를 분리시켜야 한다. 피해자 문제 해결은 인도주의, 현실주의, 미래지향적 원칙에 따라야 한다. 인권 문제임을 직시해야 하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말아야 하며, 미래지향적으로 가는 기본 원칙에 합의하면 된다. 독일 정부ㆍ기업이 이런 정신으로 포괄적인 해법을 찾은 선례가 있지 않나. 2010년 양국 변호사단체의 해법도 마찬가지다. 지금 갈등은 양국 정치인이 법률가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 생긴 문제다.”

-그에 따른 구체적인 해결 방식은.

“한일청구권협정 3조에 따라 해결하면 된다. 한일협정에 의해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느냐는 해석상 분쟁이 행정부 사이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이 조항에 따라 외교적 협의를 하고 거기서 결론이 안 나면 중재로 가라는 것이다. 다만 이를 정치 선전의 장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한국 사법부의 판단을 가져오고 또 일본 사법부의 판단을 가져와서 개인청구권에 대해 판단이 같은 부분을 맞춰서 여기에 초점을 두고 협의하면 된다.”

-올해 초 이런 트랙으로 일본이 외교 협의를 하자고 했는데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제안했을 때 협의를 하는 게 나았다. 2011년 헌법재판소에서 정부가 위안부와 원폭 피해자 관련 분쟁 해결 노력을 하지 않아 위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진 뒤 8년 동안 위헌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우리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일본 기업 상대로 무슨 말을 하겠나. 지금 한일 갈등은 기본적으로 양국 사법부 판단을 행정부가 존중하지 않아 생긴 것이다.”

-미쓰비시중공업 재판에 이어 원폭피해자 재판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일제강점기 과거사와 관련해 특별히 원폭피해자 문제는 한일이 이야기하면 할수록 우호가 증진되는 사안이다. 일본도 원폭 피해자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양국 원폭 피해기록을 공동으로 유네스코 등재하도록 노력하자고 하면 일본도 거부할 명분이 없다. 청구권 3조에 따른 양국 협의를 할 때 이런 유네스코 등재 논의 등을 앞세워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폭피해자나 위안부 문제는 일본 사법부에서도 확실히 이긴 사안이다. 법리적으로 일본 정부의 논리가 얼마나 구차하고 모순된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위안부 문제 협의 때 강제징용도 같이 다뤘으면 원폭피해자처럼 개인청구권이 살아 있어서 일본 정부가 구제해야 한다는 논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하면 된다.

일본 정부가 하듯 국제법을 준수하라는 정치적 주장만 해서는 3조에 따른 협의가 될 수 없다. 우선 개인청구권 소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 양국의 사법부 판단을 가져와야 하고, 거기서 개인청구권이 존재한다는 공통의 인식을 확인한 뒤, 청구권 소멸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면 된다. 우리가 절대 밀릴 게 없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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