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순방 중 세월호 사찰 등 수사 특별지시
김학의ㆍ장자연 사건도 ‘명운 건 수사’ 주문
측근ㆍ동지 얽힌 ‘감찰ㆍ하명 의혹’엔 침묵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전 전북 전주시 농수산대학교에서 열린 '농정틀 전환을 위한 2019 타운홀 미팅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서울 도심에서 보수우파 단체들이 고 이재수 기무사령관 1주기 추모 행사를 열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기무사에 TF를 만들어 유족 동향을 사찰한 혐의로 수사받던 이 전 사령관은 지난해 이날 지인의 사무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지 나흘 만의 일이었다. 영장실질심사 출두 때 “꼭 수갑을 채웠어야 했느냐”는 논란을 등지고 그는 “세월호 사고 때 기무부대원들이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는데 5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일을 사찰로 단죄한다니 안타깝다”며 “내가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는 심경을 유서로 남겼다.

이 수사는 그해 7월 인도를 순방 중이던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 지시에 의해 시작됐다. 기무사 계엄령 문건 수사를 국방부 검찰단에 맡기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청와대 비서진의 의견을 보고받고 현지에서 독립수사단 구성과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해외 순방 중 이런 지시를 내린 것도 이례적이지만 더 눈에 띈 것은 독립수사단에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 의혹 수사도 지시했다는 발표다. 대통령이 사찰 의혹이라고 콕 찍은 것이 무척 낯설었기 때문이다. 두 사건 수사는 이렇게 시작됐으나 이 전 사령관의 죽음 외에 기억나는 게 없다.

문 대통령은 올 3월 중순 부실수사와 은폐ㆍ비호ㆍ유착 의혹이 제기된 장자연ㆍ김학의ㆍ버닝썬 사건과 관련해 법무부ㆍ행정안전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있게 진상을 규명하라”고 지시했다. “국민들이 보기에 강한 의혹이 있는데도 오랜 세월 동안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이들 사건 모두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났고 검ㆍ경 수사가 부실했으며 진실 규명을 방해하거나 비호ㆍ은폐한 정황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지시 직후 검찰 과거사위는 돌연 대검 진상조사단 활동기간을 연장했다. 문 대통령이 “공소시효가 끝난 일은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고 시효가 남은 범죄행위는 반드시 사법처리하라”고 주문한 까닭이다. “이들의 드러난 범죄 행위와 유착 시기는 과거 정부 때의 일이지만 동일한 행태가 지금 정부까지 이어졌을 개연성이 없지 않으니 성역을 가리지 않는 철저한 수사와 조사가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버닝썬 의혹의 핵심이자 조국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한 윤모 총경은 구속기소됐고 과거 정부 검찰 비리의 상징인 김학의는 5개 혐의 모두 무죄나 면소 판결로 끝났다.

두 얘기는 권력형 적폐 청산에 대한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유달리 강조한 경구는 ‘춘풍추상(春風秋霜)’이다. 자신의 처신에 서릿발처럼 엄격해야 남의 잘못을 단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조국 사태에 이어 터진 청와대의 감찰 무마 및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이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 논란과 국정농단 시비로 번지는데도 문 대통령은 도통 말이 없다. 이들 의혹과 관련된 인물이 한결같이 ‘형, 동생’ 하는 측근이거나 “당선이 소원”인 동지라는 점에서, 문 대통령이 추상 같은 수사를 독려할 법한데도 말이다.

대통령의 침묵은 정치권의 소모적 공방을 키운다는 점에서도 부적절하다. 윤석열 검찰을 향해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고 겁박하고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검찰개혁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고 박수치는 풍경이 참으로 낯 뜨겁다. 이 국면에서 추미애 의원이 법무부 장관에 지명된 것도 좋은 카드로 보이지 않는다. ‘내 사람들’이 연루된 의혹에 ‘명운을 건 수사’를 촉구하기는커녕 까칠한 대항마를 내세워 수사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더 크게 읽힌다.

감찰 무마와 하명수사 의혹은 명백히 “국민들이 보기에 강한 의혹이 있는” 사안이다. ‘수갑 찬 장군’에 침묵했던 입장에서 ‘명예와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주문할 처지도 아니다. 문 대통령이 진정 정의와 공정을 중시한다면 되레 법무부 장관 지명자에게 절제된 인사권과 감찰권을 요청하는 게 맞다. 유독 ‘우리 사람’에게만 따뜻한 봄바람은 여기서 그쳐야 한다.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