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솔직했고, 진지했으며, 날카로웠다. 남 탓하다 끝나버리는 많은 토론장과 달리 오해의 소지가 있던 발언을 정정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자세도 돋보였다. 텍스트뿐 아니라 유튜브나 그래픽 같이 사회적 소통의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주목받고 있는 ‘발랄한’ 사례 발표가 이어질 때는 세대가 분명히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강연을 맡거나 책을 발간할 때 스스로를 ‘과학기술 커뮤니케이터’라 소개한 적이 있었다. 첨단 과학기술이라면 무조건 필요하고 좋다는 식의 일방적인 홍보 분위기가 마땅치 않았다. 그 부정적 영향도 균형 있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어려운 과학기술 성과는 물론 외국의 사회적 논란을 나름대로 열심히 들여다봐야 했다. 그 전에 한 선배는 과학평론가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시민과학을 표방한 사회단체 활동가도 있었다. 의도야 어쨌든 당시 이런 직함들은 사회적으로 낯설었다. 국민이 과학기술의 ‘수혜자’ 정도로만 여겨진 시절이었다.

이제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과학기술 커뮤니케이터가 정식 직업으로 소개되는 일이 흔하다. 국민에 대한 명칭도 변했다. 단순히 성과를 향유하는 대상이 아니라, 어떤 연구가 왜 진행되고 있으며 그 결과물이 무엇인지 알 권리를 가진 주체로서의 문제의식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이달 초 대전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국민은 ‘납세자’로 불렸다.

토론의 화두는 ‘과학자의 언어, 대중의 언어’였다. 제목만으로는 지루하게 느껴졌기에 평소처럼 할 말만 하고 곧 자리를 뜰까 했다. 하지만 납세자 얘기가 나오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진행자들은 물론 기후물리연구단을 이끄는 독일의 과학자가 여러 차례 강조했다. 연구비는 국민이 내는 세금이기 때문에 국민은 그 성과와 의미를 알 권리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좀 놀랐다. 정부의 지원비가 세금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연구개발비 비중이 세계에서 1위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연구자가 스스로 납세에 상응하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밝힌 게 참신했다. 자칫 과학기술계에서 불쾌하게 느낄 수 있다. 의도와는 달리, 돈 받은 값을 제대로 하라는 식으로 거칠게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려운 여건에서 애국심으로 평생을 연구에 매진해온 많은 기성세대 과학기술자들이 서운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행사장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달랐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나보다) 젊은 세대의 연구자, 그리고 연구기관 홍보실에 근무하는 ‘진짜’ 커뮤니케이터였다. 한편에서는 연구하기에 너무 바빠 국민에게 설명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성과를 잘 알리고 싶지만 난해한 내용을 풀어내는데 큰 한계를 느낀다고 토로했다. 모두 솔직했고, 진지했으며, 날카로웠다. 남 탓하다 끝나버리는 많은 토론장과 달리 오해의 소지가 있던 발언을 정정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자세도 돋보였다.

텍스트뿐 아니라 유튜브나 그래픽같이 사회적 소통의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주목받고 있는 ‘발랄한’ 사례 발표가 이어질 때는 세대가 분명히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마침 올해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지원하고 있는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과학기술 분야의 스토리텔러나 저술가 등 전문 커뮤니케이터를 양성하기 위해 무료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신청자가 너무 많아 교육생을 대폭 추릴 수밖에 없는 민망한 상황이 벌어졌다. 신청자는 은퇴한 대학교수부터 현직 과학교사, 프리랜서 웹툰작가, 대학생 등 정말 다양했다. 국민에게 과학기술을 제대로 공급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갖춘 커뮤니케이터가 많아진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문득 다음 행사에서는 국민이 어떤 이름으로 불릴지 궁금해졌다. 납세자도 괜찮지만 정부의 지원이 이뤄지는 경우로 한정되는 느낌이다. 한국의 전체 연구개발비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4분의 3 정도이다. 전체를 아우르려면 국민을 ‘사용자’ 또는 ‘소비자’로 부르는 건 어떨까. 이때 국민이 과학기술계에 가장 바라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향후 이어질 새로운 토론의 장에서 또 한 번 다가올 참신한 자극이 기대된다.

김훈기 홍익대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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