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는 중대한 잘못” 마크롱, 코트디부아르 대통령과 회견
75년간의 세파프랑 종결 선언… 주변 8개국 화폐 ‘에코’로 통일
프랑스 ‘식민지배’의 잔재 세파(CFA)프랑이 75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정치적 독립 이후에도 이어져 온 프랑스와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적 종속관계를 끊고 주권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 시대로 나아가겠다는 상징적 조치로 해석된다.
뉴욕타임스(NYT),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알라산 와타라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아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프랑스가 지원하는 세파프랑에 대한 개혁을 선언했다.
개혁의 상징은 내년부터 세파프랑을 대신해 쓰이게 될 화폐 ‘에코(Eco)’이다. 코트디부아르와 베냉, 부르키나파소, 말리, 니제르, 세네갈, 토고 등 서아프리카 경제ㆍ통화연합(UEMOA) 8개국이 사용하게 된다. 유로화에 대한 고정환율은 유지되나 그간 이 지역 경제 독립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외환보유고의 50%를 프랑스 중앙은행에 예치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없어진 점이 최대 성과이다. UEMOA 이사회에서 프랑스 대표를 제외키로 한 것도 진전된 조치다. 와타라 대통령은 “앞으로 프랑스에 대한 금융 의존도를 낮춰 나가겠다”면서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세파프랑은 과거 프랑스령이었던 아프리카 대다수 국가에서 통용된 단일화폐로 오랜 기간 논쟁거리였다. 폐지론자들은 프랑스가 탈식민지화 이후에도 역내 패권을 유지하려 1945년 세파프랑을 도입했다며 ‘식민지배의 유물’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옹호론자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립이 진행되던 제2차 세계대전 초기 프랑스가 화폐를 보증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했다고 맞서왔다.
역사적인 화폐 개혁이 가능했던 데에는 마크롱 대통령의 결단도 한몫했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패권주의적 시각과 식민주의를 과시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전임자들과 차별화된 역사관을 보여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도 “프랑스 식민주의는 중대한 잘못이었다”고 사과한 뒤 “과거로부터 페이지를 넘기자”고 강조했다. 자신과 코트디부아르 젊은층 모두 식민 후 세대임을 언급하면서 “우정의 협력관계를 맺자”고도 했다. 서아프리카의 프랑존 탈퇴에 대해선 “아프리카 국가들의 개혁과 재정적ㆍ경제적 자립에 찬사를 보낸다”며 “아프리카 청년 세대는 화폐 개혁을 식민주의 탈피의 위업으로 여길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이미 서아프리카 15개국이 별개의 독자화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어서 이번 발표는 되레 이들의 자립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을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에코가 세파프랑을 사용하는 중앙아프리카 6개국에는 적용되지 않는 점도 새 화폐의 미래를 점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에코 가치가 유로화에 고정된 것 역시 “8개국이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보다 프랑스와의 관계 유지를 중시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다. NYT는 “화폐 개혁이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완전한 자립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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