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2020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는 마스킹 테이프…무엇이든 쓰겠다

입력
2020.01.01 04:40
0 0

 시 부문 당선자 차도하씨 당선소감 

2020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 차도하씨
2020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 차도하씨

기운이 나지 않아 바닥에 붙어있을 땐 나를 저주하는 사물들과 나를 응원하는 사물들이 싸우는 상상을 한다. 이 생각을 할 땐 늘 나를 저주하는 진영이 우세한 형상인데, 사실 승패는 나에게 달렸다. 내가 기운을 내면 나를 응원하는 사물들이 이기니까. 그럼 기운을 내어 잠을 자거나 수업을 들으러 간다.

이렇게 겨우 힘을 내어 살면 무엇이 되는 걸까. 무엇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아서 죽지 않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의식 과잉이라고 비웃음 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는 지금 죽기엔 아깝다. 글을 잘 쓰니까. 글을 잘 써서 발표도 하고 책도 내고 어린 내가 그걸 읽고 오래 간직하는 상상을 한다. 상상은 자유니까. 누가 이걸 하나하나 뜯어보며 아니라고, 그게 죽지 못할 이유는 못 된다고 따져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살 거니까.

시 당선 소감을 써야 하는데 죽느냐 사느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면, 나에겐 이게 비슷한 이야기인가보다. 사실, 시는 그냥 뜯어 쓰는 마스킹 테이프일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시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이든 쓸 거라는 말이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이름을 하나씩 부르고도 싶지만 나는 이름을 안 믿기 때문에 이렇게 쓴다. 저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수업 듣고, 책과 술, 밥을 사주고, 바다에, 놀이공원에 놀러가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내 옷, 내 양말, 노래 취향에 영향을 끼친 분들 감사합니다. 내가 힘들 때 쪽지를 전해준 친구 고맙습니다. 요즘은 어떻냐고 넌지시 물어봐주어서 고맙습니다. 내 시를 꼼꼼히 읽고 어떤 부분이 좋은지 어떤 부분이 아쉬운지 말해준 사람들 고맙습니다.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양이를 사랑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중년 여성에게도 감사합니다.

잘 살고 잘 쓰겠습니다. 다 쓰고 나니 둘은 다른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둘 다 잘해내고 싶습니다.

 △1999년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재학 중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