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진정한 월급 ‘루팡’이었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이었던 대도 아르센 루팡(정확히는 뤼팽), 추리 소설 속의 인물 말이다. 우리는 그의 이름을 소망과 함께 입에 담는다. ‘일 안 하고, 아니면 좀 적게 하고 월급 받았으면 좋겠다’는 참으로 소박하고도 간절한 소망 말이다. 그는 정말 월급 도둑이었다. 조직의 사각지대에 숨어 교묘하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노동의 대가를 따박따박 받아갔다. 팀장과의 관계를 보아하니 짧게는 십 년, 길게는 이십 년 동안 그래온 것 같았다. 일을 안 하면 여덟 시간은 영원에 가깝도록 길게 느껴지는 법, 그는 다리를 꼬고 앉아 신문을 넘겨 보다가 몸을 비틀며 포효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하품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전ㆍ현 직장의 동료를 잘 각색된 1인극의 형식으로 흉보았다.
‘(비장하게) 그러니까 때는 2003년 크리스마스 포트럭 파티였지. 샐리(행정 직원)가 뭘 가져온 줄 알아? (자기 흥을 못 이겨 시원하게 너털웃음을 웃는다. 하지만 팀원 누구도 따라 웃지 않는다) 셀러리 줄기 사이에 마요네즈를 짜서 음식이라고 가져 왔다고! (샐리를 흉내내며) 다들 이것저것 많이 가져오니까 건강식 하나 있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을까요? 으하하하, 대체 그게 뭐람!’ 직장에서 일을 단 1도 하지 않고 월급을 받아가는 사람이 남의 포트럭 음식을 가지고 흉을 보는 광경이란 참으로 그로테스크했다. 물론 그는 아내가 만든 포트럭 음식을 가져왔다. 언제나 음식이 너무 인색해 보여서 차라리 셀러리에 마요네즈가 더 진정성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셀러리는 대체 왜 먹는 걸까? 초등학교 2학년때이었던가. 처음 먹은 이후 계속 먹으면서 또한 계속 회의했다. 이 채소는 대체 왜 먹는 것일까? 아무도 그럴싸한 답을 내놓지 못했으니 물어보기도 허사였다. ‘건강에 좋다더라’가 그나마 최선이었는데 이걸 믿어버리면 또 다른 패러독스를 인정하는 셈이었다. 마요네즈를 그렇게 푸짐하게 찍어 먹으면 말짱 도루묵 아닙니까?
그렇게 25년쯤 머릿속 한 구석에 셀러리를 놓고 방황하다가 답 비슷한 것을 찾았다. 지금까지 먹은 것과는 다른 셀러리였다. 맨 바깥의 껍질을 세로로 쭉 벗겨내지 않더라도 부드럽게 씹히면서도 즙이 많고 달디 단 셀러리. 아, 이런 셀러리라면 회의를 품을 필요가 아예 없겠구나. 어차피 그냥 맛으로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이후 나는 1년에 한 번쯤 그 셀러리를 먹는 꿈을 꾸곤 했었다. 당신이었지요. 진짜 셀러리가.
◇다발로 사서, 5등분으로 잘라
그리고 10년쯤 지나 그 셀러리의 기억이 차츰 희미해지는 오늘날, 나는 또 회의한다. 대체 셀러리는 왜 먹어야 할까? 그동안 더듬더듬 찾아낸 지식과 정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단 건강에 미치는 영향부터. 한식에 빈번히 쓰이는 식재료라면 늘어 놓을 수 있을 온갖 영양소와 효능 이야기를 제쳐 놓더라도, 일단 섬유질이 풍부하다는 차원에서 셀러리는 먹을 가치가 있다. 특히 채소를 많이 먹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현실에서 마요네즈 없이도 먹을 수 있는 용맹함을 갖춘 이라면 밀폐봉투든 도시락이든 담아 간식 삼으면 ‘이런 채소를 간식으로 잘 먹는 나’라는 도취감에 섬유질이 더해져 마음과 몸 양쪽의 건강을 한꺼번에 증진시킬 수 있다. 다만 셀러리에 딸린 도시 전설만큼은 무시하자. ‘먹어 얻는 것보다 씹느라 소모되는 열량이 더 크므로 진정한 다이어트 식재료’라는 믿음 말이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므로 턱이 아플 정도로 셀러리를 씹으면서 고생하지는 말자.
그렇게 간식으로라도 셀러리를 일상에 들이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놀라게 된다. 의외로 대부분의 식재료 구매 창구에서 흔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입 자체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가운데, 형식과 상태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셀러리는 다발과 다듬어진 것, 두 종류로 나뉘어 팔린다. 전자야 딱히 설명이 필요 없을 테고, 후자는 대체로 중간 아래의 줄기만 잘라 스티로폼 팩에 담아 판다. 아무래도 우리는 바쁘게 살다 보니 후자가 간편하고 좋을 것 같지만 너무나도 그렇지 않다. 일단 즙이 전혀 없고 뻣뻣해 몇 점 먹다가 화를 내며 버릴 정도로 맛이 없는 데다가, 다발을 다듬어 먹기 좋은 크기로 소분하는데 그리 큰 어려움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칼과 도마, 체를 준비한다. 셀러리 다듬기는 정말 간단하지만 대체로 다발이 큰 편이라 충분히 공간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일단 비닐 포장이 된 채로(아니면 고무줄에 묶인 채로) 도마에 눕혀 식칼로 밑동을 2~3㎝쯤 단숨에 썰어 낸다. 다발째 팔리는 채소는 밑동과 뿌리의 연결부위를 썰어내는 순간 흩어져 버려 간수, 즉 씻고 다듬기가 쓸데없이 번거로워질 수 있다. 따라서 어색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포장부터 섣불리 풀지 않는다. 셀러리라면 줄기를 몇 토막 낸 뒤에야 다루기 편해지므로 끝까지 비닐 포장이 된 채로 썬다. 대체로 이파리, 그리고 중간과 맨 아랫동을 각각 2등분해 전체를 5등분쯤 하면 10㎝ 안팎의 먹기 좋은 길이가 된다.
일단 이파리는 그대로 두고 나머지 줄기를 체에 담아 흐르는 물에 씻는다. 아무래도 줄기 자체가 C자형으로 골이 져 있으니 뿌리 쪽으로 내려가면 흙먼지가 붙어 있을 수 있다. 양이 적다면 흙먼지가 붙은 줄기만 골라내 흐르는 물로 씻고(셀러리는 대체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 많다면 넓은 볼에 물을 담고 줄기를 담가 손으로 뒤적여가며 씻는다. 식품 위생에 좀 더 신경 쓰고 싶다면 과채류 세척제를 쓰고, 씻고 난 뒤에는 채소 탈수기에 돌리면 물기를 말끔히 걷어낼 수 있다.
이제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셀러리가 마련 되었다. 한 움큼씩 쥐어 밀폐봉투에 담아 두었다가 하루 한 팩씩 먹어도 좋고, 일회용품을 쓰기가 꺼려진다면 플라스틱이나 유리 용기에 한꺼번에 담아 두었다가 매일 조금씩 작은 용기로 옮겨 먹는다. 딱히 특별하게 필요한 조리 기술이 없으니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가운데, 잘린 단면의 상태에 따라 신선도가 유지되므로 아주 날카로운 칼로 깨끗하게 썰어내는 게 관건이다. 적어도 1주일, 길게는 2주일까지 셀러리 덕분에 섬유질 걱정을 안 하고 살 수 있다.
◇쇠고기부터 해산물까지 두루 어울려
단순한 호불호 외의 다양한 이유(이를 테면 이가 약해 씹기 어렵다거나)로 생 셀러리를 먹을 수 없다면 익히는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 양파, 당근, 파프리카와 더불어 셀러리 또한 서양 요리의 맛내기 채소 가운데 하나이다. 거의 웬만한 요리, 특히 국물이 있는 종류라면 일단 이들을 볶고 시작하는 게 문법을 넘어 예의범절의 수준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까? 다만 셀러리는 다른 맛내기 채소에 비해 생으로 먹는 데 호불호가 더 많이 갈린다는 차이가 있는데, 그만큼 익히면 최선을 다해 붙임성을 키운다.
다만 C자형으로 골이 진 줄기의 단면 모양은 셀러리를 익히는데 살짝 번거로운 단점으로 작용한다. 모든 변의 길이를 0.5㎝ 수준의 정육면체로 일정하게, 다지듯 썰어야 하는데 셀러리의 줄기는 길이 방향으로 썰면 강력한 섬유질 때문에 바람 받은 연의 대나무 살처럼 휘어져 버릴 수 있다. 따라서 휘어진 조각들을 한데 가지런히 모아 길이 반대 방향으로 썰기가 무척 성가실 수 있다. 경험을 바탕 삼아 말하자면 먹겠다고 마음먹기의 뒤를 이어 셀러리의 성가심 2위를 당당히 차지하는 수준이다.
만약 칼질을 연마하고 싶다면 성가심을 무릅쓰고 썰고 또 썰면 된다. 먹겠다고 마음 먹는데도 한참 걸렸는데 양파나 당근이라면 모를까, 셀러리로는 도저히 칼질을 연마하고 싶지 않다면 손 블렌더(도깨비 방망이)가 있다. 줄기를 3~4㎝ 길이로 썰어 방망이에 딸려오는 다지기에 넣고 돌린다. 너무 다져버리면 향이 괴로운 셀러리 곤죽이 되어 버릴 수 있으니 상태를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칼질과 마찬가지로 최대한 일정하게 썰리도록 중간에 다지기의 뚜껑을 한 번 열고 고무 스패출러 등으로 벽을 훑어내려 준다. 안 그러면 원심력이 작용하면서 일부가 다지기의 날이 닿지 않는 위쪽으로 밀려 올라가 버린다.
다른 채소와 합류하든 아니든, 다지듯 잘게 썬 셀러리를 중간 불에 천천히 볶음으로서 맛을 끌어낼 수 있다. 국물에 바탕을 깔아주고 싶다면 수분이 적절히 빠지고 불투명해지는 수준까지만 볶으면 된다. 양식이야 예의범절이라고 했으니 넘어가고, 한식이라면 요즘 같은 겨울에 딱 좋은 짬뽕 국물의 맛을 한 차원 더 높일 수 있다. 고기와 채소 등, 건더기를 이루는 재료를 고추기름으로 한 차례 볶아 준 뒤 팬을 비우고, 셀러리를 더해 은근히 볶아준다.
다시 볶은 재료들을 전부 더하고 물을 부은 뒤 두반장을 더해 끓인다. 끓여 보면 면이 없어도 전혀 아쉬울 것 같지 않은 국물이지만 마트에서 비교적 다양한 생면을 팔고 있으므로 무엇을 말아 먹을까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다. 한편 이 단계보다 조금 더, 살짝 색깔이 나도록 셀러리를 볶으면 쇠고기와 아주 잘 어울린다. 쇠고기를 구우면 팬에 고이는 기름으로 살짝 짭짤하다 싶게 볶아 스테이크 위에 올리면 질척한 소스가 필요 없어진다.
마지막으로 셀러리를 삶아 먹을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조금 끔찍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결과는 의외로 아주 멀쩡하다. 물을 은근하게 끓여 소금간 한 뒤 간식 길이로 썬 셀러리를 담근다. 질긴 섬유질을 천천히 분해하는 게 목표이므로 물이 끓을락말락 하는 상태로 15~20분쯤 삶는다. 파스타의 ‘알 덴테’ 만큼은 아니지만 생선조림의 무처럼 완전히 익혀버리면 정말로 끔찍해지니 주의하자. 포크나 칼로 찔러 저항 없이 들어가는 수준이면 충분하다. 볶은 셀러리가 쇠고기와 잘 어울린다면 삶은 것은 흰살 생선이나 새우 같은 갑각류의, 기름기가 적으면 단맛이 확 살아나는 해산물과 잘 어울린다. 셀러리는 레몬즙 비니그레트(산과 올리브기름을 1:3의 비율로 섞고 마늘, 소금 등을 더한다), 혹은 귀찮다면 그냥 레몬즙으로 버무려 역시 찌거나 삶은 해산물에 곁들인다.
◇강렬한 향이 필요할 땐 셀러리 씨앗
섬유질보다 셀러리의 향을 즐기는 이라면 행복한 맛의 여정에 셀러리 씨앗 또한 합류시킬 수 있다. 자란 셀러리에 비해 향이 훨씬 더 강렬하니 양꼬치에 고수의 대타로 뛸 수 있고, 간수가 좀 빠져 끝에 달달함이 감도는 굵은 바다소금과 함께 절구에 빻아 스테이크에 뿌려 구워도 좋다. 향이 강렬하면서도 이파리를 말린 허브류보다 덜 독해 음식의 맛을 덜 해친다.
음식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