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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성대한 파티가 끝난 뒤

입력
2020.01.08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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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새해에는 서로를 탓하는 대신 변화를 시작하자. 지금 사람들이 힘든 상황을 감내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변화의 희망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우리 새해에는 서로를 탓하는 대신 변화를 시작하자. 지금 사람들이 힘든 상황을 감내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변화의 희망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성대한 파티일수록 뒤처리가 힘들다. 우리는 지난 50년간 ‘압축성장’과 ‘민주화’라는 파티를 성대하게 치렀다. 하지만 이러한 파티의 달콤한 과실을 누리는 사람과 부동산, 교육, 환경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겪어내야 하는 사람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았다.

전국에 깔린 고속철도망과 인터넷망은 그런 압축성장을 가능케 한 공신이었고 당일 서울-부산 출장이 가능할 정도로 경제의 효율성을 높여줬지만, 사람들의 조급성은 효율성의 상승 속도보다 더 빠르게 증가해서 이제는 직주근접(직장과 주거의 근접)이나 학세권(학교), 병세권(병원), 역세권(철도역), 숲세권(녹지) 등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다양한 ‘-세권’을 하나 이상 만족하는 곳을 찾다 보면 결국 서울이거나 조금 넓혀 봐야 수도권일 경우가 많다. 그러니 지방에서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일수록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수도권 사람들은 당일치기 또는 기껏해야 1박 2일로 지방에 놀러 다녀오는 걸 선호할 뿐, 지방에 사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학세권도, 병세권도, 역세권도, 그리고 심지어 숲세권까지 서울이나 수도권에 살아야 더 쉽게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양질의 주거와 교육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배경이 되는 일자리 역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수도권으로 몰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사교육이 발달하고 부유한 사람이 몰려 있는 강남으로 쏠려버렸다.

혁신도시 건설 등으로 지방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의 짭짤함을 맛본 사람들은 아예 더 큰 수익을 위해 서울 강남에 닥치고 돈을 던져 넣기 시작했는데, 정부가 예상하고 대처하는 속도보다는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의 송금 속도가 훨씬 빨랐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자산을 불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항상 뒤늦게 대응하는 정부와 정치권을 원망하는 양면적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일 년 내내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맛집처럼, 서울 강남 아파트는 지방부자들과 중국인들을 비롯한 외국계 자본까지 가세해 사람들이 돈을 들고 기다리는 투자의 ‘맛집’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 정부와 국회는 ‘저녁이 있는 삶’을 기치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과 최저임금의 1만원 수준 인상을 급속히 추진했는데, 이에 대한 혜택은 역시 대기업, 공기업 등 대마(大馬)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주로 돌아갈 뿐,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일용직이나 본인이 직접 가게 문을 여닫고 입에서 단내를 풍기며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소상공인들에게는 오히려 고통이 가중되었다. 기업에 다니다 40~50대에 나와서 차린 식당, 치킨집 사장님은 명당에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건물주에게 대항할 힘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자신을 밑바닥까지 갈아 넣어 인건비에서 남는 약간의 마진을 숨통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방향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런 법들을 통과시킬 때에는 우리가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취업과 창업을 쉽게 오갈 수 있는 유연한 경제구조가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서 조심스럽고 단계적으로 해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물론 정답은 없겠지만.

우리 새해에는 서로를 탓하는 대신 변화를 시작하자. 지금 사람들이 힘든 상황을 감내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변화의 희망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창업과 취업을 쉽게 오갈 수 있도록 호봉제부터 탈출하자. 빈집만 늘어나는 일부 지방행정조직, 업무가 중복되는 중앙부처와 위성조직들을 통폐합해서 효율을 높이자. 강남 부동산 대책에 있어서도 주식시장처럼 지나친 급등에는 정부가 개입해야겠지만, 단위면적당 주택공급량도 함께 늘리자. 아이를 낳으면 어린이집에서 대학까지 공교육을 무료로 시킬 수 있게 전환하자. 그래서 이제 지속 가능한 성장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새로운 파티를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장현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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