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디자인한 아이웨어를 쓰고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애기 남.

10여년 전 리미(Rimiㆍ32)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여성 래퍼가 드물던 그 시절 랩 팬들 사이에선 ‘윤미래 뒤를 이을 것’이란 소리까지 듣곤 했던 유망주 중 한 명으로 꼽혔다. 하지만 ‘디스(상대방을 공격하는 힙합의 하위문화) 사건’ 논란이 벌어진 뒤 사라졌다.

그랬던 리미가 당당하게 다시 돌아왔다. 이번엔 애기 남(Aggie Namㆍ본명 남수림)이란 이름의 디자이너다. 인스타그램이 전 세계적으로 ‘2020비전 신진 크리에이터 20인’을 뽑았는데,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포함됐다.

12일 독일에 머물고 있는 애기 남과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애기 남은 아이웨어(Eyeware) 브랜드인 ‘갓섬웨어(Godsomware)’의 디자이너다. 아이웨어란 눈을 보호하거나 시력을 교정하는 기능을 지닌 안경이 아니라 얼굴을 덮은 가면 같은 패션의 일부다. 아이웨어 디자인을 시작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사고 싶었던 안경이 품절돼서 그냥 내가 원하는 모습을 직접 디자인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만들고 보니 좀 근사하게 느껴졌다. 애기 남은 “내 감정, 생각을 간단하고 빠르게 보여줄 수 있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디자이너 데뷔 또한 요란한 무대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2018년 5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다 직접 디자인한 아이웨어를 쓰고 찍은 사진을 올렸을 뿐이다.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기묘할 정도로 특이한 디자인들이 많다.

처음에는 혼자만의, 자기만족적인 작업이었다. 애기 남이란 이름 자체도 나 아(我)에 자기 기(己)자를 써서 지었다. 그야 말로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겠다는 선언 같은 이름이었다. 그런데 직접 디자인한 아이웨어 작품을 꾸준히 올리다 보니 팔로워가 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지난해 5월 팝 가수 겸 배우 자넬 모네(35)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자선행사 ‘2019 메트 갈라(MET Gala)’에서 애기 남의 작품을 쓰고 나타났다.

메트 갈라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모델 안나 윈투어가 주관하는 행사로, 미국의 각 분야 유명인들이 정해진 주제에 맞춰 디자인한 옷이나 장신구를 걸치고 나와 겨루는 최고의 무대로 꼽힌다. 유명 영화제의 레드 카펫 못지 않은, 미국 셀럽들의 대잔치다. 그 곳에 애기 남의 작품이 등장했으니 그는 전 세계 패션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디자이너가 된 셈이다.

메트 갈라 이후 얻은 인기 때문에 최근에는 서울에서 개인전도 열었다. 제품 문의도 늘어났다. 애기 남은 SNS가 낳은 스타인 셈이다. 그는 “SNS는 쉽고 빠르게 작품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작품에 대해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고 말했다.

인스타는 애기 남과 함께 20명의 크리에이터를 뽑았다. 기준은 팔로워 수만은 아니다. 인스타 측 설명에 따르면 이번에 선정된 20명 중 팔로워 숫자가 단 300여명에 수준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팔로워나 조회 수가 많은 사람을 뽑은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인데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해내는 사람을 골라낸 결과라는 설명이다.

애기 남의 아이웨어 디자인은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의 인스타 아이디 ‘3217’이 곧 ‘삼위일체’라고 대답했다. 애기 남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를 제 방식대로 표현한 것인데, 내게 그것은 인스타를 통해 일과 예술과 삶이 일치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의 파격 디자인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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