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저작권 한국일보]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제겐 늦둥이인 13세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이 친구들과 무리 지어 다니면서 나쁜 행동에 젖어 드는 것 같아 걱정이 많습니다. 전자담배를 몰래 피우고, 유료 게임도 몰래 합니다. 친구 10여명에게 돈을 빌려서 갚지도 않고, 할머니 지갑에 손 댄 적도 있습니다.

아들은 저나 아빠에게는 고민을 터놓거나 말을 안 합니다. 친구들과 뭘 한다거나, 뭐 좀 사게 돈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매일 용돈 2,000원씩을 받아가서는 어디에 쓰는지 말도 안 합니다. 성적도 떨어지고, 먹을 것에 집착하기도 합니다.

제 성격이 우유부단해서 아이를 다그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나를 조종하는 것 같고, 혼을 내도 무서워하지 않고 농담으로 슬쩍 넘어갑니다. 또 친구들이 갖고 있는 것은 모두 갖고 싶어 합니다.

친구들과 관계도 좋아 보이지 않아요. 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니고 싶어 큰 돈을 쓰면서도 정작 좋은 평은 못 얻는 것 같아요. 주위 엄마들은 아들이 강해 보이고 싶어 한다고 말해요. 하지만 전 알 수가 없어요. 아들이 어디서 누구와 어울리는 지 알려고 하면 간섭으로 여기고 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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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다 여섯 살 위인 남편과는 아들 문제는커녕 집안일 얘기하는 것도 힘들어요. 홀어머니 밑 5형제 중 맏이인 남편은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성격이에요. 아들 문제도 남편은 신경도 안 씁니다. 이혼할까 했지만, 저도 최근 사회활동을 하면서 나아졌어요. 이제 아들 하나만 잘 커주면 걱정이 없을 것 같은데, 아들을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김명희(가명ㆍ51세ㆍ보험설계사)

명희씨, 사춘기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보통 ‘애들이 말 안 듣고 반항하는 시기’라고 생각하지만 사춘기는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넘어가는 청소년 시기, 즉 중간 징검다리 같은 과정을 말합니다. 사춘기는 누구나 예외 없이 겪습니다. 누구나 겪는 인생의 아주 중요한 발달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시기를 ‘사춘기라서’ 혹은 ‘사춘기니깐’이라고 그냥 쉽게 뭉뚱그려 넘깁니다. 모든 문제를 ‘사춘기’라는 쇼핑백에 쓸어 담아 버리는 거지요. 그러지 말고 사춘기 아이들의 문제를 자세하게,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사춘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춘기는 어른이 되는 연습을 하는 시기란다. 그런데 아직 어른은 아니지. 하지만 아동 때보다는 생각이 더 깊어지고, 마음도 넓어져서 이해심이 늘어나는 시기야. 그런데 아동은 어른이나 부모가 많이 도와줘야 하지만 어른은 독립적으로 하는 거잖아. 사춘기는 그 중간이니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져야 하는 시기라고 봐도 돼.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많이 말하는 게 당연해, 동시에 그만큼 책임감도 늘어나. 그리고 생각이 좀 더 깊어져야 하니깐 책도 좀 읽어야겠지, 성적을 잘 받으라는 게 아니고 생각이 깊어지려면 책이나 신문도 보고, 모르는 것은 물어도 봐야 해. 그리고 너의 의견을 주장해도 되는 시기야. 어른들의 주장과 다를 때도 생길 거야. 그럴 때 화내거나 소리지르지 않고 너의 의견을 잘 전달하는 것도 중요해.”

물론 이 시기 아이들은 크고 작은 일탈을 합니다. 하지만 명희씨 아들은 사춘기라고 하기엔 종류와 강도가 다소 강합니다. 아들이 겪는 문제를 ‘사춘기’, ‘중2병’이라고 쉽게 치부해버리지 말고 잘 들여다봐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이 시기를 잘 밟아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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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우려하는 점은 담배 피고 돈을 훔치는 것보다, 부모를 대화 상대로 삼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이가 문제 있을 그 당시, 부모는 아이가 어리다라는 걸 생각하지 못해요. 나이에 맞게 대하질 못한다는 겁니다. 50세가 넘은 부모가 하는 얘기를 아이가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한국 부모의 자식사랑이 너무 비장해서예요. 공부를 안 하면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면 되는데, ‘너 그렇게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커서 거지 된다’라고 합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선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면 안 된다’고 하면 되는데 ‘그렇게 행동하면 다른 사람들이 다 널 싫어한다’라고 해요. 그렇게 비장하게 말하면 아이들은 귀를 막습니다. 아이에게 달콤한 얘기만 하라는 게 아니라 아이와 최소한 마음의 다리는 연결해두어야 합니다.

명희씨 얘기를 들어보면 남편이 그런 부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편은 아들을 사랑하겠지만, 지나치게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성향이 강해 보입니다. 아마 아들 기억에 아빠와의 대화는 아빠의 일방적인 잔소리일 가능성이 큽니다. 어떤 아빠들은 자식에게 “너의 그런 정신 상태로는 글렀다”라든가 “그런 머리로 뭘 하려고 그러냐”라고 비장하게 말합니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몰라서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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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보기에 엄마는 어떨까요. 아마도 아들 입장에서는 ‘아빠보다는 엄마가 편하지만, 엄마한테 존경심은 안 들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명희씨는 아이 요구를 들어주지만, 나중에 아이에게 징징거리는 엄마에요. 용돈을 달라면 “네 생각대로, 매일 2,000원 선에서 네가 한번 써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쁜 음식을 사먹거나 나쁜 행동을 하는 데 쓰는 건 좋지 않아. 돈이 더 필요하면 꼭 엄마에게 다시 얘기해라”라고 하기보다, 아마도 “용돈 있는데 또 어디에 쓰려고 그러니, 어제도 줬는데 오늘 돈을 또 달라면 어떡해, 내일 또 달라고 하지 마”라고 얘기했을 거에요. 그러면 아이 입장에선 돈을 줄 거면서 잔소리나 하고 뒷말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의논하려 들지 않는 거지요.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만 집중하는 것도 소통에 방해됩니다. 아이 행동의 이면에 있는 걸 알아차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밥을 잘 안 먹고 편식하는 아이에게 하루 종일 ‘급식 다 먹었어, 다른 애들은 잘 먹니, 뭐 만들어 줄까, 남기지 말고 더 먹어, 안 먹으면 키 안 큰다’ 등등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이 얘기만 하면 아이가 힘들어 합니다.

명희씨의 아들도 마찬가질 거에요. 명희씨가 아들의 문제적인 행동에만 몰두해서 그 행위를 계속 지적하는 대화를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부모와 소통을 끊어버립니다.

물론 아들의 잘못된 행동은 고쳐야 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대화를 위한 마음다리는 연결시켜두는 게 급선무지요. 할머니 돈을 훔치고, 전자담배를 숨기면서 아들인들 마음이 편했겠습니까. 부모님들은 “박사님, 얘는 문제가 뭔지도 모를 거에요”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자기 문제가 뭔지는 몰라도 마음은 힘들어 합니다.

명희씨, 어린 자식은 단절할 수 없는 대상이고, 부모가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려면 아이가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 부분부터 대화를 해보세요. 100가지 중에 성적을 제외한 99가지에 관심이 있는 아이가 있는데 부모는 아이에게 매일 성적 얘기만 합니다. 그러면 이 아이가 부모와 얘기하고 싶겠습니까. “바지가 그새 짧아졌네, 바지 하나 사러 갈까”, “햄버거가 좋으면 정말 제대로 된 수제 햄버거 한번 먹으러 가볼래” 등도 좋습니다.

아이의 비위를 맞추라는 게 아니라 대화와 소통의 다리를 연결해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건 언제나 부모여야 합니다. 아이들은 사소한 추억으로 성장합니다. 어느 날 엄마와 운동화를 사러 간 추억, 운동화를 사러 갈 생각에 설레었던 마음, 신어봤을 때의 즐거움, 운동화가 때 탈까 전전긍긍해 했던 마음을 아이는 오래 간직합니다. 부모들이 지레 걱정하고, 너무 잘 키우려고 지나치게 비장해져서 아이한테 이 작은 기억 하나를 남겨주지 못하는 오류를 저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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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노력이 있어야 부모와 아이간 마음의 다리가 연결되고, 비로소 아이가 부담스러워하는 얘기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그 때가 되면 이런 대화도 가능해집니다. “너 전자담배 피워봤다며?” “아니요” “혼내는 게 아니라 너랑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 몸에 해롭다는 건 너도 잘 알지, 피우면 기분이 어떤데” “마음도 편해지고 좋던데요” “그럴 때도 있었구나, 그런데 몸에 해로우니깐 지금은 네가 좀 참아봤으면 좋겠어, 엄마 때문에 불안하고 화나면 일단 얘기했으면 좋겠다” “얘기하면 화낼 거잖아요” “엄마도 바로 고치기가 어려워서 그래, 좋게 말했어야 했는데, 화내면서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미안하구나, 더 노력하도록 할게”

남편과도 아들 문제를 상의해야 합니다. 아이의 잘못을 일러바치라는 게 아니라 “아들이 힘들어 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부모로서 도움을 줘야 하지 않겠냐”라고 해야 합니다. 명희씨 남편에게는 두 가지를 권합니다. 첫째 아들에게 화를 내지 말 것, 둘째 당분간 대화는 날씨와 의식주에 관한 안부만 하는 겁니다. ‘오늘 춥지 않았니’ ‘잘 잤니’ ‘밥은 먹었니’ 부터 시작하세요. 아이가 대답을 안 한다고 화를 내면 안됩니다.

명희씨는 아들의 일탈 행위 말고 다른 대화를 해보세요. 아들이 관심 가진 게 있을 거에요. 문제 있는 행동을 빨리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아들과 마음의 다리를 연결하는 데서 시작해보세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리가 연결되면, 당신의 마음은 이미 아들의 마음에 닿아 있을 겁니다.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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