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바뀌면서 각광받는 독서법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빨리 읽는 '속독법'이 유행했지만, 최근에는 느리지만 꼼꼼하고 비판적으로 읽는 '슬로리딩'이 주목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속독법. 1970~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라면 한 번쯤 들었을 법한 독서방법이다. 한 번에 여러 줄의 문장을 동시에 읽어 결론적으로 남들보다 몇 배의 빠른 속도로 책을 ‘끝내는’ 이 독서법은 개발주의시대 ‘빨리 빨리’ 이념을 구현하며 아들딸이 다독가로 성장하길 바라는 부모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인기가 시들어갈 90년대, 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되고 언어영역 지문이 날로 방대해지면서 수험생들 사이에 ‘기적의 독서법’으로 다시 반짝 각광받기도 했다.

요즘 교육계를 강타하는 독서법은 이와 정반대인 ‘슬로 리딩(Slow Reading)’이다. 말 그대로 천천히, 비판적으로 읽는 이 독서법은, 단어 뜻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읽는 정독과도 구분된다. 일본 국어교사 하시모토 다케시가 교과서 대신 소설 ‘은수저’를 무려 3년간 학생들과 읽으며 수업한 내용을 담은 ‘슬로리딩’이 번역 출간되며 국내에 소개됐고, 재작년 12년차 청담동 독서논술강사 최승필씨가 학년별 맞춤 슬로리딩법을 소개한 ‘공부머리 독서법’(책구루 발행)이 130쇄를 찍는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학부모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전문가 조언을 바탕으로 길게는 겨울방학, 짧게는 설 명절 기간 자녀들과 ‘슬로리딩’을 시도해보자.

 ◇시작 연령은 초등 3학년부터 

슬로리딩에 관한 정의는 독서 전문가마다 조금씩 다르다. 최승필 저자는 “책 줄거리와 사실관계 뿐만 아니라 그 이면까지 파악하는 독서”라고 소개했다.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왕자’ 같은 상징이 많은 작품을 줄거리만 따라가다 보면 주제가 완전히 달라진다. 문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책을 주변 상황까지 고려해 한 권 제대로 읽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슬로리딩은 ‘한 학기 책 한 권 읽기’란 이름으로 2015년 초등 교육과정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슬로리딩을 수업에 적용한 교사들은 “샛길로 빠지는 다양한 활동”까지 독서의 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인천 도담 초등학교에서 슬로리딩 교육과정을 3년간 운영한 김원겸 교사는 “예컨대 아이와 부모가 함께 책을 읽다가 두부 사러 가는 장면이 나오면, 같이 두부를 사서 요리해 먹는 것도 슬로리딩의 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책을 지렛대 삼아 ‘전인격 교육’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슬로리딩에 관한 전문가 정의는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초등 3학년 이상부터 슬로리딩을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최승필 저자는 “슬로리딩의 핵심은 꼼꼼히 읽어 책의 이면을 파악해내는 능력을 기르는 것인데, 초등 저학년은 사실과 이면을 구분해 읽을 나이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단언했다.

여러 번 꼼꼼히 읽어내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아이가 원하는 책을 고르는 것이 좋다. 단, 학습만화와 웹소설 같은 “작품의 내적 구조가 붕괴된”(최승필) 저작물은 제외다.

독서전문가들은 아무리 빨라도 초등 3학년부터 슬로리딩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2015년 초등교육과정에서 슬로리딩 수업을 개설하며 초등 3학년부터 적용한 이유다. 게티이미지뱅크
 ◇처음에는 통독으로 

제일 먼저 통독을 하며 책의 전체 맥락을 파악하고 5쪽~10쪽, 크게는 30쪽 내외로 샅샅이 훑어 읽는 게 좋다.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함께 찾아보고, 찾아본 단어로 간단한 작문을 해보는 것도 언어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책 내용과 관련된 동영상을 찾아보는 등 배경 지식과 관련된 사실을 탐구하는 것도 좋다. 김원겸 교사는 “슬로리딩을 처음 시도할 때는 부모가 책 내용을 먼저 파악해 ‘샛길의 방향’을 잡아주고 점차 아이 스스로 질문하기, 비판하기, 체험하기 같은 ‘샛길 활동’을 할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초등 교사들을 상대로 슬로리딩 교육법을 소개하고 있는 최은희 사단법인 한국디베이트코치협회 대표는 “슬로리딩은 책을 매개로 체험을 확장하고 토론과 연결하는 것”이라며 “가장 큰 장점은 관련 책을 읽어 나가는 ‘파생독서’가 가능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슬로리딩을 하는 책에 등장하는 책, 해당 저자의 다른 책 등 관련 도서를 찾아 읽을 때는 슬로리딩을 하지 않아도 좋다.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는 질문을 통해 아이의 의견을 끌어내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최승필 저자는 “슬로리딩을 진행하는 교사가 책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듯, 부모도 그렇다. 부모가 질문을 던지고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정답을 찾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예컨대 책의 첫 문장이 왜 그렇게 시작했는지, 주인공을 왜 소년 혹은 노인으로 설정했는지를 물어보는 식이다. 분량의 책을 다 읽은 후 퀴즈를 내고 맞히는 놀이를 하는 것도 깊이 읽기에 도움이 된다.

 ◇다 읽으면 처음부터 다시 

슬로리딩의 핵심은 반복해서 읽기다.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처음으로 돌아가 반복해 다시 읽어보자. 책이 다르게 읽힌다. 최은희 대표는 “일본에서 들어온 독서법으로 소개됐지만, 사실 우리 선조들도 슬로리딩을 실천해왔다. 세종대왕이 유년시절 같은 책을 100번씩 반복해 읽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이고, 다산 정약용 역시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널리 배우고, 질문하며, 생각하고, 아는 것을 실천하는 ‘일권오행(一卷五行)’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 권을 반복해 읽는 건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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