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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서울대병원이 알려주는 의료상식] 암 치료의 미래, 정밀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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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서울대병원이 알려주는 의료상식] 암 치료의 미래, 정밀의료

입력
2020.01.25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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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혈액종양내과) 임상정밀의료센터장
김지현(혈액종양내과) 임상정밀의료센터장

과거 암은 위에서 처음 발생하면 위암, 유방에서 처음 발생하면 유방암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하지만 같은 지역 출신의 사람이라고 성격이나 모습이 모두 같지 않듯이, 같은 장기에서 발생한 암이라도 천차만별의 임상 경과와 예후를 보입니다. 암세포 하나하나의 수준으로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암은 결국 유전자의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것인데, 태어나면서부터 유전자 이상을 물려받는 유전성 암은 전체 암의 약 5~10% 정도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암들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암과 연관된 유전자에 돌연변이 등 여러 이상이 축적돼 발생합니다. 우리 몸의 복구 체계와 면역 체계에서 이 암 세포를 제거하지 못하면 암 세포가 끝없이 분열하면서 암 덩어리로 성장하게 되고, 나아가 전신으로 퍼지게 되는 것입니다.

◇항암제의 대세, 표적 치료제와 면역 항암제

과학의 발전으로 암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유전자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암을 보다 세분화해 분류할 수 있게 되면서 그에 맞는 표적치료제들이 항암제의 대세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BCR-ABL 유전자’의 재배열에 의해 발생하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에 ‘글리벡’이라는 ‘마법의 탄환’이 발견된 이래로, 인간표피성장인자 수용체(Human 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2, HER2) 유전자의 증폭이 있는 유방암을 대상으로 한 ‘HER2 표적치료제’, 표피성장인자 수용체(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 EGFR) 유전자 돌연변이를 겨냥한 ‘EGFR 타이로신 인산화효소 억제제’들이 그 뒤를 이었고, 현재 수십 가지의 표적치료제가 개발되면서 표적치료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우리 몸의 면역세포로 하여금 보다 더 암세포를 잘 제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면역 항암제가 나오면서, 암을 대적할 수 있는 무기는 더욱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암 유전자 이상의 진단법과 신약 항암제 발전에 힘입어 암은 이제 단순한 유방암이나 위암이 아닌, ‘HER2 양성 유방암’, ‘BRAF 돌연변이 악성 흑색종’ 등 그 원인이 되는 유전자 이상에 따라 부르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한, 두 가지 유전자 이상에 따른 분류로는 그 복잡한 암 세포를 세밀히 나눌 수 없으며, 가장 바람직한 것은 환자 개개인의 암세포 유전자를 분석해 이에 따른 맞춤 항암치료를 하는 것입니다.

◇보다 빠른 신약 허가 및 보험 적용토록 국가 차원의 대책 필요해

한 번에 수백 가지의 유전자 이상을 검사할 수 있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 기술의 도입으로, 암환자 맞춤형 치료 실현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3월부터 주요 10대 암에 대한 NGS 유전자 패널 검사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해, 지난 2019년 5월부터는 전체 암종으로 그 적용 범위가 확대됐습니다. 암환자를 위한 검사의 접근성은 향상되었지만, 문제는 검사를 시행한 후 치료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검사를 통해 암을 일으킨 유전자 이상을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또 유전자 이상을 발견하더라도 이를 대상으로 한 효과적인 약제가 개발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해당하는 약제가 개발돼 있더라도 아직 검증 단계가 끝나지 않았거나, 허가 완료된 경우라도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그저 ‘그림의 떡’으로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당장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난치성 환자들을 위해, 신약 허가 및 보험 적용에 있어 국가적 차원의 대책 및 보다 유연한 제도 마련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정밀 의료의 시작은 환자와 의료진 간 진실한 소통

그렇다면 이미 전이가 된 4기 암환자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싸게 검사를 해봐야 그에 맞는 신약을 찾아낼 확률이 적으니 아예 검사를 받지도 않거나 항암치료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저절로 기적이 생길 수는 없습니다. 또한 다음 세대의 환자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될 기회조차 사라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항암치료는 여전히 따르는 부작용이 많고, 또 모든 사람에게 좋은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새롭게 개발된 표적치료제나 면역항암제, 정밀의료 검사법을 통해 엄선된 임상시험 신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곳곳에서 오늘도 기적은 일어나고 있으며, 생각지도 못했던 유전자 변이를 찾아내 신약을 적용하면서 좋은 반응을 보이는 환자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가장 최적의 항암제를 선택하고 힘든 치료를 잘 이겨 내기 위해서는, 몇 천만 원짜리 신약이나 몇 백만 원짜리 검사보다도, 단 10분이라도 의료진과 진실된 소통을 이어가면서 더 적절한 치료법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밀의료를 진료실에서 꽃피우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가장 큰 걸음은 일단 대문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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