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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혐오의 전파

입력
2020.01.29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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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에 대한 우려와 공포를 등에 업고, 중국이라는 국가나 중국인에 대한 혐오가 전염병보다도 훨씬 더 빨리, 그리고 어쩌면 훨씬 더 폭넓게 전파되고 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숙주를 매개로 전염되지, 개개인의 출신국을 가려 갑자기 서울 한복판에 출몰하지 않는다. 사진은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 모습. 고영권 기자
전염병에 대한 우려와 공포를 등에 업고, 중국이라는 국가나 중국인에 대한 혐오가 전염병보다도 훨씬 더 빨리, 그리고 어쩌면 훨씬 더 폭넓게 전파되고 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숙주를 매개로 전염되지, 개개인의 출신국을 가려 갑자기 서울 한복판에 출몰하지 않는다. 사진은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 모습. 고영권 기자

중국 우한 지방에서 발발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말들이 많다. SARS, MERS, 에볼라 바이러스 같은 전염병 발발이 계속되기도 했고, 국가 간 이동이 많은 만큼 국경을 넘는 감염에 대한 공포가 현실화되기도 했기 때문이리라. 특히 우리나라는 중국과 경제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가깝고, 그렇다보니 양국을 오가는 사람도 많다. 설 연휴에도 몇 번이나 휴대폰으로 방역 경보를 받았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화제에 올렸다. 노약자의 면역력이 떨어지는 겨울철이다 보니 각자 나름대로의 처지에서 현실적인 걱정을 했다. 어린아이와의 가족여행을 취소하거나,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는 일정을 변경한 지인들도 있다.

이 현실적인 걱정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리 우려한 만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예방 수칙도 정확하고 자세히 나왔다. 사람들이 손을 30초 이상 깨끗이 씻고, 마스크를 하고, 기침을 손이 아니라 소매나 마스크로 막고, 증상이 나타나면 신속히 병원에 가야 한단다.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지키면 좋겠다 싶은 수칙이다. 전염병은 노약자에게 더 치명적인 만큼, 별일 없겠지 하고 안이하게 대응하기보다는 차라리 너도나도 조금 지나치다 싶을 만큼 겁을 먹고 호들갑을 떠는 편이 약자에게 안전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전염병에 대한 우려와 공포를 등에 업고, 중국이라는 국가나 중국인에 대한 혐오가 전염병보다도 훨씬 더 빨리, 그리고 어쩌면 훨씬 더 폭넓게 전파되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한국에 있는 확진자는 4명이다. 중국인의 출입국을 금지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에 동의한 사람은 2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중국인들이 박쥐를 먹어 바이러스가 전파되었다느니, 중환자 몇만 명이 숨겨져 있다느니 하는 아무래도 믿기 어려운 가짜 뉴스가 ‘팩트’니 ‘진실’이니 하는 말과 함께 돌아다닌다. 여기에 본래 있던 민족 혐오나 인종 혐오가 무서운 속도로 겹겹이 쌓인다. 상식으로 어느 정도 자제되던 비하 표현이 ‘무서워서’라는 핑계를 달고 나온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멀쩡히 한국 서울에서 살아온 한국계 중국인(조선족)들을 분리하거나 중국으로 보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바이러스는 숙주를 매개로 전염되지, 개개인의 출신국을 가려 갑자기 서울 한복판에 출몰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런 말이 소수의 너무 나간 헛소리가 아니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서 몇만 명의 동의를 얻는 ‘의견’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 모든 혐오의 가시화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정말로 이웃 국가인 한국인들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갈 무시무시한 전염병이기 때문일까?

나는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전염병에 대한 공포 이전에, 혹은 그보다 훨씬 강력한, 차별과 혐오의 신속한 가시화다. 단지 전염병에 대한 걱정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토록 쉽게, “중국인은 씻지 않고 더러우니 위험하다”거나, “조선족들을 중국에 돌려보내야 한다”, “중국인들이 박쥐를 먹어 병이 생겼다” 같은 말을 할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건강은 소중하다. 이 보편 정서에 기대어 난무하는 차별 발언들의 가장 한심하고 무익한 점은, 바로 이런 말들이 막상 실제 질병의 전파를 예방하거나 환자를 치료하거나 공중위생을 개선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차별의 가시화와 강화 외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 하나 더하자면, 슬프게도,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의 잠복기가 전염병의 잠복기보다 짧을지도 모른다는 신호 정도일까.

어떤 생각은 틀렸고, 어떤 생각은 설령 했더라도 입 밖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 옳다. 어떤 편견은 시정해야 하고, 어떤 말은 찬반(贊反)이 아니라 당부(當否)의 문제다.

정소연 SF소설가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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