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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 칼럼] 생각보다 강한 나라(국뽕주의)

입력
2020.02.13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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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스포츠 문화 등 세계정상 속속 등극

문제 많은 나라지만 너무 비관 말아야

결론은 정치…분열 대신 미래로 승부하길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지난 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른 뒤 프레스룸에 들러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지난 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른 뒤 프레스룸에 들러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창작자에 서열을 매기는 게 무례하고 속되어 보이지만, 그래도 황금종려상에 오스카까지 거머쥐었다면 봉준호 감독을 세계 1등 감독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아 봉 감독의 수상 장면을 몇 번이고 돌려 보다가, 시쳇말로 ‘국뽕(과도한 애국주의를 의미하는 속어)’스러운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 1등에 오른 분야나 인물은?

먼저 떠오른 건 BTS였다. 세대 탓인지 공감 능력은 확실히 떨어지지만, 나도 BTS가 얼마나 위대한 인플루언서인지는 잘 안다. 팝 음악을 넘어 어쩌면 모든 분야를 통틀어 이렇게 거대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이 또 있을까. 봉 감독이 “BTS가 누리는 파워는 나의 3,000배는 될 것”이라고 말한 게 겸손만은 아닐 것이다.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 대중음악과 스크린에서 한국의 위대한 스타들이 거의 동시에 정상에 올랐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K팝(BTS)과 K무비(봉준호)는 분명 무형의 시너지를 내고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세계 시장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격과 가치는 몇 단계나 수직 상승했다고 본다.

순수문화 쪽을 찾아보니 조성진이 생각났다. 피아노 연주에서 누굴 줄 세우는 게 난센스겠지만, 그래도 다른 대회도 아닌 쇼팽 콩쿠르 1등이라면! 이 최고 권위의 대회가 1927년 창설 이래 모두 총 17번의 경연을 치르는 동안 우승자를 배출한 나라는 러시아 폴란드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미국 베트남 중국 그리고 한국, 이렇게 여덟 나라뿐이다.

스포츠는 더 많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야 셀 수 없이 많고, 미국과 유럽이 장악하고 있어 우리가 넘볼 수 없을 것 같았던 대중 스포츠에서도 이미 많은 월드레벨의 스타들이 나왔다. 박세리 이래 ‘세리 키즈’로, 다시 ‘인비 키즈’로 이어지는, 화수분 같은 여자골프의 맥은 더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벌써 10년이 흘렀지만 김연아를 통해 절대 불가능하게 보였던 은반에서도 정상 등극의 감격도 누렸다. 그리고 손흥민, 류현진, 김연경….

경제는 삼성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삼성이 지탄받을 건 지탄받아야겠지만, 기업으로서 일궈낸 위대한 업적을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 냉정히 따져서 이런 파워브랜드 기업을 갖고 있는 나라가 전 세계에서 몇이나 될까. 포천 500대 기업 중 삼성전자의 작년 순위는 15위. 삼성 앞에 이름을 올린 기업의 나라는 미국 중국 네덜란드 사우디 영국 일본 독일 등 7개국뿐이다. 특히 삼성의 브랜드파워(브랜드파이넌스 조사)는 아마존 애플 구글 MS에 이어 세계 5번째로 평가됐는데, 미국 이외 기업으론 최고였다. 그리고 현대차, SK, LG, 포스코 등등. 순위를 매기기는 힘들지만 암 치료 등 의료 분야 역시 세계 최고 수준임이 명확하다.

이런 영역들이 다 모여 지금의 우리나라가 됐다. 열거된 세계 1등 분야와 스타들, 그리고 최고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정상권에서 뛰고 있는 주자들, 이런 힘들이 합쳐져서 오늘의 우리나라가 됐다고 본다. 갑자기 로또에 당첨된 게 아니라 오랜 세월 사람과 자본이 모이고 시스템이 만들어져 일궈낸 결과들이다. 일부는 환상과 신기루일 수도 있지만, 다른 나라가 보는 한국은 우리가 보는 한국보다 훨씬 강한 나라다.

돌아보면 자살 산재 실업 노인빈곤 등 부끄러운 세계 정상 분야도 꽤 있다. 경제에 대한 불안, 지정학적 고립감도 크다. 같은 나라 국민인가 싶을 정도로 이념과 세대로 찢어지고 갈라져 있다. 우울하고 서글프고 화나는 일이 물론 많지만, 그래도 때론 스스로를 그리고 나라의 미래를 너무 비관하고 자학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진부한 결론이지만 결국은 정치로 귀결된다. 기업과 예술 스포츠 그리고 국민들은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대통령만 잘하면, 그리고 국회만 잘하면 된다. 상대에겐 가혹하리만큼 혹독하면서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한 정치가 아니라 자성하고 개선하려는 정치, 갈등과 분열로 연명하는 정치가 아니라 미래로 승부를 거는 정치 말이다.

콘텐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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