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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의 공존의 지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산다는 것

입력
2020.02.26 18:0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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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서로에게 ‘함께 소금을 먹어본 사람’이 되어간 모양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서로에게 ‘함께 소금을 먹어본 사람’이 되어간 모양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사회는 여성과 남성,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장애인과 비장애인, 내국인과 외국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그 외에도 종교적 신념, 정치적 견해, 출신 학교, 출신 지역으로 내가 속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으로 끊임없이 구분 짓고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어 살아간다. 나는 그로 인해 생기는 오해와 불편에 관한 이야기,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고 ‘우리’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혜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이 칼럼을 쓰기로 했다. 그런데 ‘코로나19’의 위기 경보가 심각단계에 이른 이 시점에 ‘공존(함께 살아감)’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지만 한편으로 지금이야 말로 함께 공존의 지혜가 필요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23세에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를 만났고 전신에 큰 화상을 입고 3년간 생존을 위해 싸우는 과정 중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 도움으로 ‘사람답게’ 살수 있게 되었을 때, 이제는 나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사회복지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한동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한 지 만 3년이 지나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훈훈한 이 인생스토리에 또 한번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작년 가을, 계절 탓이었을까, 마흔앓이를 하는 것이었을까, 건강했던 내 마음에 감기가 찾아왔다. 작은 일에도 감사했던 나였는데,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하나도 없고, 의미도 찾을 수 없고, 기운이 완전히 빠져서 그저 내가 해야 하는 일만 겨우 하면서 마음의 초점을 잃은 채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 중에는 어른들의 응원이 필요한 어느 청소년들과 만나는 모임에 참석하는 일도 있었다. 작년 초에 좋아하는 분들이 같이 하자고 해서 시작한 모임인데, 사실 그 모임에서 내가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한번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이들과 한강에 가서 놀았고 맛있는 것을 먹었고, 재미있는 공연을 함께 보는 일 정도였다. 한창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이고 또 자주 만나는 사이도 아니기에 아이들은 마음을 여는 것 같지 않아 보였었다. 그런데 작년 말 1년간의 만남을 돌아보는 송년파티에서 아이들은 내가 자신의 변한 표정 속에서 속마음을 알아채 준 어느 순간을, 자기의 고민을 들어주었던 그 짧은 시간을 기억하고 고마움을 표현해 주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한때 아팠던 사람의 토닥임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는가 보다. 나와 아이들은 나이도, 살아온 경험도 다른 것 투성이지만,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서로에게 ‘함께 소금을 먹어 본 사람’이 되어간 모양이다. 그날 나는 사는 것에 재미도 의미도 희미해진 그 시기에 이상하게 그 모임에만 다녀오면 기운이 났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존경하는 전 축구국가대표 이영표 선수가 강연에서 들려준 이야기가 기억났다. 어렸을 때부터 코치가 팔굽혀펴기 10번을 시키면 꼭 11번씩을 하면서 꿈 꾸었던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어 드디어 정상에 올랐는데 그 만족감이 오래가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긴 허무함의 시간을 보내며 깨달은 것은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더라는 것, 이루어도 허무하지 않을 목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했다. “인간에게 있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하는 것을 갖는 것이다.” 그는 소유하기 위해 발버둥치며 불안해하고, 정작 그것을 갖게 되면 잃게 될까 봐 불안한 것이 인간임을 깨닫고 인생의 목표를 더 갖는 것에 두지 않고, 타인과 사랑을 나누는 것에 두었다고 말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랑으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 받고 사랑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다.

작년 가을에 내게 찾아온 마음의 감기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타인이었던 수감자 자녀를 사랑하고 그들의 사랑을 받으며 다 나았다. 코로나19 치료 신약이 하루 빨리 개발되기를 바라며, 코로나19가 가져온 마음의 바이러스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생각해 본다. 며칠 전 엄마가 그랬다. “사람들이 전화해도 감염된다고 생각하나 봐.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하던 사람들이 전화도 안 해.” 정기적으로 다니던 모임이 취소되는 것은 물론이고, 친구끼리 만나는 약속도 잡기가 꺼려지다가 서로 전화 안부를 묻는 것조차 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이럴 때 외로운 사람들은 더 외로워진다. 복지관에도 노인정에도 가지 못하고 혼자 계신 어르신들을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는 생활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과 지금 누구보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중증, 만성질환을 가진 이들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대구지역에 의료진이 부족하여 자신의 병원 문을 닫고 대구로 향하는 의료진들의 소식이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 모든 타인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이타주의인, 타인의 행복에서 기쁨을 얻는 형제애를 통해서 21세기 유토피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타인을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것으로부터 오는 힘.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공존의 힘이고 또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낼 힘이 될 것이다.

이지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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