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아는 엄마 기자] 다이아몬드 프린세스가 남긴 것
승무원 1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심 증세를 보여 카리브해 항구 두 곳에서 입항을 거부당한 크루즈선 MSC 메라빌리아호가 27일(현지시간) 멕시코 코수멜 항구에 정박해 있다. 연합뉴스

크루즈 여행은 ‘버킷 리스트’의 단골 아이템이다. 화려한 배 위에서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먼 나라로 떠나는 상상은 더없이 매력적이다. 약 2년 전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미국에서 지냈던 연수 기간에 큰 맘 먹고 크루즈 여행을 실행에 옮겼다. 국내로 돌아가 아이가 더 크면 엄두도 못 낼 것 같다는 간절함에 통장을 탈탈 털었다.

일주일간의 크루즈 여행은 뇌리에 진하게 각인됐다. 꼭 한번쯤 가보고 싶던 알래스카 땅을 밟았고, 푸짐한 음식과 극진한 서비스를 경험했다. 하지만 좋은 추억 못지않게 씁쓸했던 기억 역시 지금껏 지워지지 않고 있다. 크루즈 업계의 마케팅 전략이 승객들의 욕구와 심리를 교묘하게 자극하고 이용한다는 걸 배 위에서 실감했다. 크루즈 선박이 어쩌면 지구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지 모른다는 생각도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크루즈는 ‘떠다니는 도시’라고도 불릴 만큼 모든 걸 갖추고 있다. 숙박과 식사는 물론, 쇼핑, 문화생활, 스포츠 활동까지 모두 배 안에서 가능하다. 며칠 배에서 내리지 못해도 워낙 규모가 큰 데다 즐길 거리가 많아 크게 답답하단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항해하는 내내 승객들은 끊임없이 지갑을 열게 된다.

이 거대한 바다 위 도시는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로 움직인다. 객실의 크기와 위치, 객실 내 창문의 모양과 크기, 무료 제공 음료의 개수와 종류,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한 서비스와 추가 비용을 내야 하는 서비스 등 승객들은 자신이 지불한 액수에 따라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발코니 있는 꼭대기 객실 승객과 창문 없는 맨 아래층 객실 승객 간에 엄연히 존재하는 여행의 질적 차이를 의도치 않아도 알아챌 수밖에 없다.

자본의 논리는 승객들의 보상 심리를 극대화시킨다. 자신이 낸 금액보다, 비싼 객실을 이용하는 타인보다 더 많은 걸 누리고 싶어진다. 뷔페 식당에선 다 먹지 못할지라도 접시에 음식을 늘 수북이 쌓아 가져간다. 수영장에서 괜찮은 위치의 간이침대를 확보하면 온종일 그 자리를 ‘찜’해 놓는다. 승무원을 무례하게 대하거나 과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승객도 종종 있다. 미국 지식인들은 일부 크루즈 승객들의 이런 심리를 비꼬는 의미로 ‘크루즈쉽 멘탈리티’라 표현하기도 한다.

최대치로 올라간 보상 심리가 만들어내는 어마어마한 쓰레기의 양은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크루즈 승객 한 명의 탄소발자국(직·간접적으로 발생시키는 온실가스의 총량)이 일반인의 3배에 달한다는 경고가 나오는 지경인데, 크루즈 산업이 배출한 쓰레기와 탄소가 얼마나 되고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여전히 깜깜하다.

지난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사우스햄튼, 그림스비, 리버풀 같은 유럽의 도시들은 항구에 정박한 크루즈 때문에 심각한 대기오염에 노출돼 있다. 영국의 한 지역환경단체는 크루즈 하나가 트럭 700대와 비슷한 대기오염을 일으키고, 승용차 100만대와 유사한 양의 부유 입자를 배출한다고 주장했다. 이 중에는 산성비를 유발할 뿐 아니라 암이나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진 질소산화물도 다량 포함된다는 것이다. 독일 환경단체 나부(NABU)는 “77개 크루즈 선박을 조사했더니 하나를 뺀 나머지가 모두 저급 연료를 사용하고 있었다”며 “크루즈 데크에 앉아 있는 건 가장 환경오염이 심한 도시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아이와 탔던 크루즈가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알래스카 남동쪽 글레이셔 만에 잠시 멈췄을 때 눈앞에 거대한 빙벽을 마주했다. 숨 막히는 절경에 압도된 그 순간 갑자기 우르르 쾅 하며 빙벽 일부가 쏟아져 내렸다. 신나게 크루즈를 즐기던 아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우리 때문에 얼음이 녹는 것 같다”며 아이는 “우리 배가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초조해했다. 빙벽이 정말 크루즈 때문에 무너져 내렸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빙벽 바로 앞에서 버젓이 화석연료를 태우고 있던 크루즈의 모습이 초등학생 눈에도 아슬아슬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낭만의 상징이던 크루즈가 환경오염 논란에 이어 바이러스의 온상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일본 크루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를 계기로 크루즈 산업이 세계 보건뿐 아니라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도 국제사회가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 지난 6일 남극 기온은 관측사상 가장 높은 18.3도를 기록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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