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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희의 러시아프리즘] ‘중국 우방’ 러시아는 왜 대중 국경 차단했나

입력
2020.03.08 18: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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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부는 코로나19 유입 차단을 위해 한국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공편 운항을 1일부터 잠정 중단시켰다. 사진은 주말에도 불구하고 한산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 연합뉴스
러시아 정부는 코로나19 유입 차단을 위해 한국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공편 운항을 1일부터 잠정 중단시켰다. 사진은 주말에도 불구하고 한산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 연합뉴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바이러스의 전파는 실로 국경을 초월해서 일어나고 있다. 3월 5일 현재 총 86개국에서 바이러스 감염 확진자가 나왔으며, 향후에도 바이러스 감염 국가 수나 확진자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8만명이 감염된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이탈리아, 이란, 일본 등에서 1만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다. 이들 4개국은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거나 관광객 등 다양한 인적 교류가 많았던 나라들이다. 일견 중국과 경제적, 인적 교류가 많을수록 바이러스 감염 피해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러시아는 특별히 눈길을 끈다. 러시아의 국내 감염 사례는 현재까지 3건에 불과하다. 이 중 2명은 시베리아 튜멘 지역의 중국 국적자이고, 1명만이 모스크바 거주 러시아인이다. 해외 거주 러시아인 중 몇 명의 감염 사례가 있지만, 러시아 국내 거주자 중에서는 감염 사례가 확연히 적은 것이 특이하다. 러시아가 중국과 4,300㎞에 달하는 긴 국경을 공유하는 인접국인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지난 세기의 중소 국경 분쟁을 협상을 통해 해결한 후 지난 20년 간 양국 간 경제 협력과 인적 교류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특히 중국의 헤이룽장성과 러시아 극동연방관구 간에는 무역과 투자, 교통물류 협력, 노동자 이주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사태를 대하는 러시아 정부의 조치는 매우 과감했다. 2월 초 러시아와 중국 간 승객열차 운행을 중단했고, 중국인의 러시아 입국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차단했다. 17일 러시아 국영항공사 아에로플로트는 중국 노선 일부를 운항 중지시켰다. 한편 러시아 정부는 중국으로부터 소개된 144명의 러시아인을 투멘 지역 격리소에 격리했다. 20일부터는 노동, 교육, 관광 목적의 중국 시민의 입국을 금지했다. 21일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2,500명을 전원 격리했고 28일에는 이 중 격리 규칙을 어긴 88명을 추방시켰다. 27일 자국민의 이탈리아, 한국, 이란으로의 관광을 금하도록 권고했고, 28일에는 이란인, 그리고 3월 1일부터는 한국인의 러시아 입국을 제한하였다. 이 모든 조치는 3월 2일 이탈리아를 다녀온 러시아인 한 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확진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취해진 것이다.

러시아 정부가 이처럼 과감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에 중국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아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세계의 공장’ 중국은 러시아에도 매우 중요한 나라다. 국제정치적으로는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에 대항하는 공동의 협력자로서, 경제적으로는 러시아의 제1 무역 파트너로서, 러시아제 무기 수입국으로서, 그리고 러시아가 부족한 자본과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나라로서 중국은 매우 중요하다. 실제 푸틴 정부의 ‘신동방정책’하에서 러시아는 아시아 국가들과 협력을 통해 성장 및 발전의 동력을 찾고자 했다. 아시아 국가들 중 핵심 국가가 중국이라는 것을 러시아가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는 선제적 조치를 과감하게 취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중국과 관계에서 러시아가 결코 하위에 위치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외교 무대에서 늘 ‘갑’으로 행세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G2를 논하는 시대에 러시아가 중국에 대해 우위에 선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독자들에게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내용이다. 반면에 중국은 러시아의 속성을 우리보다는 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또한 미중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러시아 못지않게 중국도 러시아와의 공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양국 모두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둘째, 러시아 정부와 국민들은 경제적 고려를 안보적 고려보다 우선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번 조치로 인해 러시아가 받게 될 경제적 비용은 사실 적지 않다. 러시아 재무부장관 A. 실루아노프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중러 무역이 하루 1,568만달러씩 감소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례로 러시아 제2의 식품 유통업체인 마그니트는 중국으로부터의 과일과 야채 수입을 중지했고, 심지어 러시아의 모든 방산물자 수출입을 관장하는 국영 회사 로스아바론엑스포트는 러시아제 S-400 지대공 방공미사일의 중국 인도가 지연될 수 있다고 통보했다. 러시아판 사드라 불리는 S-400 지대공미사일은 러시아가 심혈을 기울이는 주력 수출 상품인데도 말이다.

러시아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은 러시아 국민들이 위기 시의 강한 리더십이 국가를 일사천리로 이끄는 것에 익숙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가가 개인이나 개별 기업에 희생을 감수하도록 강제할 수 있고, 국민들은 이 과정에서 어떠한 정책적 과도함이나 실수를 지적하지 않는다. 이것은 러시아의 힘일 수도 있고 역설적으로 한계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러시아는 위기에 강한 국가임이 틀림없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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