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성평등연구회 서한솔 교사 “교육부 뭐하나... 민간단체가 만든 매뉴얼만 뿌려” 
25일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탄 차량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검찰 유치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물 사건에 대해 교육부가 먼저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 중에서도 학생들이 있잖아요. 피해자들이 성착취 당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어떤 교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해서 이 지경까지 온 것 아닌가요?”

초등학교 교사들의 페미니즘 교육 연구 단체 초등성평등연구회의 서한솔 서울상천초 교사는 27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교육부는 피해자 지원과 예방 대책을 발표하기는커녕 당장 자녀가 디지털 성폭력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될까 봐 우려하는 학부모들을 위한 대응책조차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성착취물의 광범위한 제작ㆍ유포가 벌어진 텔레그램 ‘박사방’ 피해자 70여명 가운데 미성년자는 초등학생까지 포함된 16명으로 추산되고 있지만 교육부가 미온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교육 현장에선 교사들이 사설 교육단체가 만든 ‘n번방’ 사건 대처 가이드라인을 받아 뿌리고 있는 실정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 교사는 장기간 성착취를 당한 피해자들이 침묵한 이유에 대해 “피해자들은 교사가 분명히 자신을 탓할 것이란 생각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십대여성인권센터에 신고된 디지털 성폭력 유형에 따르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해킹해 음란 채널로 운영하는 가해자에게 계정복구를 요구했다가 되레 알몸사진을 요구당한 경우가 적지 않다. 컴퓨터 전문가를 자칭하는 가해자로부터 ‘영상통화를 해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네가 SNS에서 나눈 음란 대화를 다 퍼뜨리겠다’는 식의 협박을 당한 사례로 부지기수다. 서 교사는 “가해자의 협박을 받고 패닉에 빠진 아이는 가뜩이나 시야가 좁아져 있을 텐데, 그가 받아온 성교육은 ‘성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한 7가지 약속’ 따위의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 교사는 남성의 성욕은 자연스럽고, 여성의 성욕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다루는 구태의연한 학교 성교육이 이번 사태에 일조했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성교육이 남자의 성욕에 대해서는 자위하는 방법을 가르칠 정도로 자연스럽게 보는 반면, 여자의 성은 철저히 임신과 출산 위주라는 것이다. 서 교사는 “그 결과 교사 앞에서까지 남학생들은 성인물에 나오는 성행위를 흉내낸다”며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여성을 착취하는 것을 남성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자명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n번방 사건과 관련해 교육당국의 대책을 촉구하는 교육시민단체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 중 하나는 교육부가 2015년 배포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의 폐기다. 표준안은 ‘남성은 성에 대한 욕망이 때와 장소와 관계없이 충동적으로 급격하게 나타난다’ 등의 왜곡된 성 의식과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아 비판을 받았다. 2018년 교육부는 “표준안을 개편해 2019년 상반기 중 보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첫 발도 떼지 못한 채 지난해 소리소문 없이 작업을 중단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표준안 개정을 위해 세 차례에 걸쳐 정책연구과제를 발주했지만 모두 유찰되면서 더 이상 추진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표준안을 바탕으로 한 교육자료의 내용을 일부 수정해 이미 2017년 배포했고 각 교육청에서 이를 현장에 맞게 사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자료에도 ‘부모님이 안 계실 때 이성친구를 초대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내용이 수록돼 있다.

초등성평등연구회는 학교폭력 예방교육처럼 가해자 예방교육을 포함한 새로운 성교육 체계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서 교사는 “해마다 학급에서는 남학생끼리 서로의 성기를 가지고 장난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명백한 성폭력이라고 교육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교육부가 나서 아이들의 작은 장난과 실수가 훗날 범죄로 연결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세종=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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