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상원사는 산 입구에 위치한 월정사에서 선재길을 따라 9㎞를 더 올라야 다다를 수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다.
지난 19일 찾은 상원사는 경내 곳곳에 눈이 쌓여 있을 만큼 봄 소식이 더뎠다. 때마침 내린 비에 찾는 이조차 없던 산사는 스산한 기운마저 감돌고 있었다. 입구에 다가서니 ‘사찰을 방문하는 모든 관람객은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 주세요’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속세의 번민이 산사에까지 미칠 줄이야. 답답증은 사찰 안으로 몇 걸음 더 들어갔을 때 비로소 한번에 풀렸다. 화려하게 걸린 오색 연등을 발견한 덕분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등대를 만난 듯 이제야 절에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연등은 옛날 가난한 여인이 지나가는 부처를 보고 공양을 하고 싶었으나 가진 것이 없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 기름을 사서 등불을 밝힌 이야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후 등의 모양을 연꽃 모양으로 만들어 연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둔 이맘때면 전국의 사찰에선 소원지를 붙인 오색 연등을 대웅전 앞마당에 내걸어 가족의 건강과 복을 축원했다.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 올수록 경내를 뒤덮은 연등이 장관을 이루고 몰려온 신도와 관광객들로 북적거렸으나 올해는 그런 풍경을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조계종은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해 4월 30일로 예정된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을 한 달 늦추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여의도 벚꽃축제나 진해 군항제 등 전국의 봄꽃 축제가 대부분 취소된 마당에 사찰을 찾아 연등을 달며 마음을 달래기도 어려워졌으니 딱한 노릇이다. 하지만 어둡고 탁한 물에서 피어나 맑고 향기롭게 세상을 밝히는 연꽃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한 주가 되었으면 한다.
직접 절을 찾지는 못해도 마음속의 연등 하나쯤 밝혀 보는 것은 어떨까.
선임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