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재레드 다이아몬드
셧다운, 셧다운, 셧다운…. 2020년 들머리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 창궐이 서구사회에 불러 온 풍경이다. 14일 이탈리아 로마 중심가의 쇼핑 거리에 사실상 인적이 끊겼다. 로마=AP 연합뉴스

2020년대라는 새로운 10년의 벽두에서 우리 인류는 예기찮은 바이러스 폭풍과 조우했다. 폭풍이 불어오자 미국 등 서구사회에서 학교, 상점, 식당, 커피숍, 영화관 등이 닫혔다. 일상과 제도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새삼 인류의 선 자리를 돌아보게 하고 갈 길을 내다보게 한다. 문명학자인 재레드 다이이몬드를 여기서 다루는 까닭이다.

◇다이아몬드의 문명 연구

다이아몬드는 이채로운 지식인이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첫째, 그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공적 지식인’이다. 전문적 지식인이 지식사회 안에서 학술 연구로 주목받는 이들이라면, 공적 지식인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지적 담론을 펼쳐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다. 다이아몬드는 2005년 미국 ‘포린 폴리시’와 영국 ‘프로스펙트’가 선정한 세계 100대 공적 지식인 가운데 아홉 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둘째, 다이아몬드는 생리학ㆍ지리학ㆍ인류학ㆍ역사학 등을 포괄하는 ‘빅 히스토리 문명학자’다. 자신의 존재를 알린 ‘제3의 침팬지’ 이후 그는 ‘총, 균, 쇠’ ‘문명의 붕괴’ ‘어제까지의 세계’ ‘대변동’ 등을 발표해 인류 문명의 역사에 대한 통찰과 흥미를 선사했다.

이 가운데 ‘총, 균, 쇠’는 다이아몬드 초기 문명 연구를 대표하는 저작이다. 이제까지 그 누구도 접근하기 어려웠던 문명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불평등에 대해 그는 지리학ㆍ인류학ㆍ고고학ㆍ언어학ㆍ역사학ㆍ생물학ㆍ유전학ㆍ병리학ㆍ생태학 등에 기반해 거시적이면서도 포괄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문명의 역사에서 왜 어떤 민족은 지배하고 어떤 민족은 지배 받게 됐는지의 원인을 박진감 있게 추적함으로써 ‘총, 균, 쇠’는 인류의 역사와 문명 이해에 한발 더 가깝게 다가서게 했다.

‘총, 균, 쇠’를 관통하는 핵심 아이디어는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라는 그의 가설이다.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다이아몬드는 먼저 700만년 전부터 1만3,000년 전까지의 인류 진화의 역사를, 그리고 지난 1만3,000년 동안 각 대륙의 환경의 영향을 살펴본다. 이어 그는 문명의 불평등을 가져온 궁극적 원인으로 식량 생산의 차이, 가축과 농작물의 가축화 및 작물화의 차이를 주목한다. 흥미로운 것은 식량 생산의 전파에서 각 대륙의 ‘축의 방향’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가정이다. 유라시아의 동서 방향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남북 방향보다 유리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그는 문명 불평등의 직접적 원인을 분석한다. 대륙에 따른 지리적 환경의 차이는 병균의 진화, 문자의 발명, 기술의 발전, 정치의 등장에서 차이를 가져왔고, 이 차이는 유라시아가 아메리카를 정복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정리하면, 환경의 차이는 특히 유럽으로 하여금 총기, 병균, 철제 무기 등을 갖게 함으로써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지배하게 만들었다는 게 다이아몬드의 결론이다.

‘총, 균, 쇠’의 후속 연구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와 ‘어제까지의 세계’를 내놓았다. ‘문명의 붕괴’가 위기와 몰락을 겪어야 했던 문명들의 역사에 대한 탐구를 통해 그 교훈을 도출한다면, ‘어제까지의 세계’는 과거 문명과 현재 문명에 대한 비교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화해 및 공존을 모색한다. ‘총, 균, 쇠’ ‘문명의 붕괴’ ‘어제까지의 세계’는 다이아몬드의 인류 문명 연구 3부작을 이룬다.

이러한 다이아몬드의 문명 연구에 대해선 활발한 논쟁이 진행됐다. 특히 환경결정론은 뜨거운 쟁점이었다.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말하는 환경을 좁은 의미가 아니라 넓은 의미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했다. 그가 말하는 환경은 생태적 환경과 지리적 환경을 모두 포괄했다. 인간이 환경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동시에 그 환경에 구속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을 주목할 때, 다이아몬드의 문명 연구는 인류와 환경 간의 장구하고 드라마틱한 역사를 분석해온 셈이다.

◇2020년대와 국가의 미래

‘어제까지의 세계’ 이후 다이아몬드의 관심은 이제 문명의 미래로 향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와 ‘대변동’은 이 관심을 구체화한 저작들이다. 특히 지난해 나온 ‘대변동’은 문명의 위기와 해법을 국민국가적 차원에서 조명한다.

다이아몬드는 개인의 위기 대응 방식이 국가의 위기 대처 방법을 탐구하는 데 유용하다는 아이디어로 시작한다. 그는 세 쌍의 국가 위기를 주목한다. 다른 국가가 야기한 충격에 격변을 맞은 ‘핀란드와 일본’, 내적 갈등으로 갑자기 위기가 폭발한 ‘칠레와 인도네시아’,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점진적으로 확대된 위기에 시달린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가 그것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일본, 미국, 세계사회의 현재진행형인 위기를 더한다.

위기를 극복하고 싶다면 위기 자체를 먼저 인정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게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충고다. 지난해 10월 ‘대변동’ 출간 기념 방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 중인 다이아몬드 교수. 김영사 제공

이러한 다이아몬드의 탐구가 그렇다면 2020년대 인류의 미래에 함의하는 바는 뭘까. 다이아몬드는 위기 분석으로부터 여섯 가지의 미래 제안을 이끌어 낸다.

첫째, 국가가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변화를 주도할 책임을 수용해야 한다. 둘째,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히 파악해 그에 대한 선택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셋째, 당면한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있는, 표본으로 삼을 만한 국가를 찾아야 한다. 넷째, 문제 해결을 위한 첫 시도는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연속적인 시도에 대해 인내해야 한다. 다섯째, 국가에 어떤 핵심가치가 유효한지를 숙고해야 한다. 여섯째, 자신의 능력을 정직하게 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다이아몬드의 제언이 다소 진부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자신이 지적하듯, 이 당연한 충고는 많은 경우 과거에도 무시됐고, 현재에도 무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진지하게 재고돼야 한다. 나는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하나는 미래의 세계사회에서 인류를 위협할 네 가지 문제인 핵무기, 기후변화, 세계적 자원 고갈, 세계적 차원의 불평등에 대한 진단과 해법이다. 이 위기들을 대처하는 데 다이아몬드는 국가 간, 다자 간, 지역 간, 세계적 수준의 협정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그가 전망하듯, 파괴라는 말과 희망이라는 말이 벌이는 경마에서 우리 인류는 희망이라는 말의 승리에 기대를 품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위기에 대한 정직한 인식이다. ‘대변동’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국가가 위기의 극복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위기를 담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다이아몬드는 솔직하게 ‘위기’를 인정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통해 적극적인 ‘변화’를 모색할 때 더 나은 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대변동’의 부제가 ‘위기, 선택, 변화’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코로나19 위기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21일 대만 뉴타이페이시의 한 슈퍼마켓에 매대가 텅텅 비어있다. 뉴타이페이=EPA 연합뉴스

앞서 말했듯, 다이아몬드는 인류를 위협할 네 가지 문제로 핵무기, 기후변화, 자원고갈, 불평등을 제시했다. 이제 여기에 현재 진행 중인 팬데믹이 추가돼야 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인류에게 비규칙적이지만 주기적인 바이러스 폭풍 시대가 열렸음을 알려준다.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균의 무서움을 이미 강조한 바 있다. 팬데믹의 위험이 일상화되는 ‘위험의 뉴 노멀 사회’로 우리 인류는 빠르게 진입해 들어가고 있다. 다이아몬드가 제시한 해법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가 결코 작지 않은 셈이다.

◇한국사회와 ‘대변동’

다이아몬드의 문명 연구가 우리 사회에 함의하는 바는 뭘까. 앞서 살펴봤듯, 다이아몬드는 ‘대변동’에서 오늘날 직면한 국가의 위기와 그 대처 방안을 제시한다. 2020년대를 여는 현재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돌아보면, 1945년 광복 이후 우리 사회가 걸어온 산업화 30년과 민주화 30년은 자랑스러운 과거였다. 그런데 제4차 산업혁명, 고령사회, 경제적ㆍ정치적 양극화라는 현재와 미래에 적지 않은 국민은 불안을 느끼고 있다. 우리 사회는 위기가 아니더라도 그 입구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위기 대응에는 의회의 정치적 역량이 필수적이다. 제21대 총선을 앞둔 23일 경기 평택 서탄면의 한 선거 유세 차량 제작업체 앞마당에 유세 차량들이 가득 차 있다. 평택=홍인기 기자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한 시련은 지구적이자 일국적이다. 기후위기, 팬데믹과 같은 위험사회가 지구적 의제라면, 불평등, 고령화, 정치 양극화는 일국적 의제다. 다이아몬드는 위기에 대응하는 데 정부와 의회의 정치적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 주장이 2020년대의 우리 사회에 함의하는 바는 분명하다. 정치사회의 선진화가 바로 그것이다. 혼돈의 총선을 지켜보는 안타까움이 더없이 크지만, 그만큼 더더욱 정치의 선진화가 너무나 중대한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의 굿모닝 2020s’는 2020년대 지구적 사회변동의 탐색을 통해 세계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한국일보> 연재입니다. 매주 화요일에 찾아옵니다. 다음주에는 ‘보수와 진보’가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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