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상속’ 펴낸 김병권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장 인터뷰 
김병권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장이 24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제시한 ‘사회적 상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인류 역사상 불평등이 해소된 때는 전쟁이나 혁명, 국가 붕괴, 치명적 역병이 돌았을 때다.” 역사학자 발터 샤이델 미국 스탠포드대 교수는 저서 ‘불평등의 역사(2017)’에서 극단적인 파괴만이 인간 사회의 불평등을 없앨 수 있다는 씁쓸한 진단을 내놨다. 한번에 망하지 않는 것 외엔 방법이 없을까. 꿈꿔볼 대안마저 없으니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의 줄임말)’이란 자조만 흘러 넘친다.

지난 24일 만난 김병권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장은 “대안은 분명 있다. 실천할 의지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최근 ‘사회적 상속: 세습 사회를 뛰어넘는 더 공정한 계획(이음 발행)’을 내며 불평등 정책 의제화에 나섰다.

김 소장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대 걸림돌은 공정과 능력주의에 대한 그릇된 환상이라 진단한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공정’은 꼼수와 편법을 바로 잡는 잣대다. 이들은 대입과 취업이란 링 위에 올라 누가 더 노력했느냐를 따지기 바쁘다. 링 위에 올라갈 수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신경 쓰지 않는다.

김 소장은 한국 사회에서 ‘공정’이란 가치가 약자들을 배려하고 보호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가진 자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방어 논리가 됐다고 꼬집는다. 586세대가 ‘라떼는말이야’를 외치며 능력주의를 맹신하는 것도 문제다. 김 소장은 “자식의 노력이 아니라 부모의 재력과 능력으로 아이들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건 부모들이 더 잘 알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불평등 논의를 잠재우기 위해 교육개혁은 손 쉬운 카드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분노케 한 조국 사태의 정책적 마무리도 결국 ‘정시 확대’란 입시 제도 변경이었다. 김 소장은 “조국 사태에 가장 분노했던 건, 상위 20%에 속하는 20대와 50대 엘리트였다. 입시 개편안은 이들의 분노를 달래주기 위한 알리바이 정책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교육 제도를 아무리 손대봤자 흙수저가 금수저를 뛰어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내놓은 대안은 인생의 출발선을 똑같이 맞춰주자는 것이다. 미래 세대의 삶과 운명이 부모가 누구냐, 집안이 어떠냐에 따라 결정되지 않도록 사회가 부모 노릇을 대신 해주자는 것이다.

만 20세 청년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수준의 사회출발자본(학자금, 취업준비금, 주거비용, 창업자금 등의 용도로만 사용)으로 4년 간 3,000만원을 나눠 주는 청년기초자산제가 대표적이다. 왜 청년에게만 줘야 하는지 묻자, 김 소장은 “용어만 그럴 뿐 자녀를 둔 부모를 지원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모두를 위한 상속”이라 설명했다.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다. 2004년 영국 노동당 정부는 ‘자녀신탁기금’이란 제도를 시행했다.

여기에 더해 김 소장은 최고임금도 신설하자고 주장한다. 한국은 현재 매출 순위 50대 대기업 등기임원의 평균 연봉(13억 2,000만원)은 최저임금의 70배에 달할 정도로 소득격차가 크다. 김 소장은 최저임금과 연동해 공공기관은 7배, 민간기업은 30배로 최고임금을 제한하자고 말한다. 이렇게 하면 소득이 높은 계층 역시 자신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실현 여부다. 정의당은 청년기본자산제와 최고임금 신설 등을 이번 총선에서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거대 양당은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정치권에 청년들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 청년세대가 스스로 불평등한 현실을 고발하고, 새로운 미래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도록 586세대가 권력과 자원을 청년 세대에 물려 줘야 한다.”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해서 ‘정치의 사회적 상속’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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