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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 군대 깃발에 곰 가죽 썼다”… 경주 월성서 출토된 곰 뼈 분석해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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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 군대 깃발에 곰 가죽 썼다”… 경주 월성서 출토된 곰 뼈 분석해 보니

입력
2020.04.01 13:00
수정
2020.04.01 18:4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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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성인 경주 월성 해자에서 발견된 곰 뼈. 1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 뼈 분석 결과를 토대로 신라인들이 곰 가죽을 군사용 깃발을 만드는 데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신라 왕성인 경주 월성 해자에서 발견된 곰 뼈. 1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 뼈 분석 결과를 토대로 신라인들이 곰 가죽을 군사용 깃발을 만드는 데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고대 신라인들이 군사용 깃발을 만드는 데 곰 가죽을 썼다는 역사 기록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실증 분석 결과가 나왔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1일 “신라 왕성인 경주 월성(月城) 해자(垓子ㆍ성 주위를 둘러 판 못)에서 출토된 곰의 뼈를 면밀히 연구해 당시 신라 사람들이 곰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구체적으로 규명했다”고 밝혔다.

경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신라인이 곰 가죽을 군대 깃발 재료로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게 하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등장한다. “곰의 뺨 가죽으로 만드는 제감화(弟監花)의 길이는 8치 5푼”이라는 대목이다. 군사감화(軍師監花), 대장척당주화(大匠尺幢主花)는 각각 곰 가슴 가죽과 팔 가죽으로 제작했다는 기록도 있다. 여기서 ‘화(花)’는 군대 깃발을 뜻하는 표현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월성 해자에서 발견된 곰 뼈다. 김헌석 문화재연구소 특별연구원은 문헌 내용과 월성 주변에서 확인된 구덩이 및 제철 관련 흔적을 근거로, 고대 신라인들이 월성 해자 주변 공방에서 곰을 해체해 가죽을 확보한 뒤 폐기한 유물이 바로 월성 곰 뼈라고 주장했다.

김 연구원은 발굴된 월성 곰 뼈 13점 대부분이 앞다리나 발목 관절 부위라며, 고기를 얻으려 했다면 위팔뼈인 상완골이나 넓적다리뼈인 대퇴골이 많이 보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곰의 하악골(아래턱뼈)을 보면 두개골에서 하악골을 분리할 때 남는 흔적이 있고, 종골(발꿈치뼈)과 요골(앞다리에서 발까지 이어지는 뼈)에서 개가 이빨로 문 듯한 흔적도 확인됐는데, 이는 곰이 해체된 직후 곧장 폐기되지 않았고, 의례를 위한 제물도 아니라는 사실의 증거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김 연구원이 결론 내린 곰 해체의 목적은 가죽 확보다. 그는 곰 가죽을 삼국사기 기술처럼 군대 깃발에 사용했다면, 가죽 제작과 활용에 왕궁이 관여해, 전문적 공인 집단이 해체와 가죽 제품 생산을 맡았을 확률이 높다며 월성 주변에서 확인되는 공방 터 추정 유구(遺構ㆍ건물의 자취)가 작업이 이뤄진 흔적이라고 평가했다. 월성 주변에서는 왕실 지배층을 위한 제품이 소량 생산됐으리라는 게 그의 추정이다.

더불어 김 연구원은 “월성 곰은 반달가슴곰일 가능성이 크다”며 “한반도 곰의 계보를 추정할 수 있는 발판이 이번 성과”라고 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중앙문화재연구원이 펴내는 학술지 ‘중앙고고연구’ 최신호에도 실렸다.

경주 월성에서 출토된 씨앗을 분류하는 모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경주 월성에서 출토된 씨앗을 분류하는 모습.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가시연꽃 핀 해자 보며 걸었던 신라인”

곰을 포함한 월성 해자 속 동물 유체 출토 양상은 2016~2019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진행한 고환경 연구 성과의 일부다. 유적에서 발견되는 유기질 유물을 통해 발굴 조사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고대인과 주변 환경 사이 관계를 연구하는 게 고환경 연구다. 연구소는 “유기 물질은 옛사람들의 먹거리 및 주변 경관 등을 예측할 수 있게 하는 단서가 되고, 당시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그들이 살았던 환경을 복원하는 데 필요한 실마리를 주기 때문에 고고학에서는 고환경 연구가 중요한 분야”라고 소개했다.

동물뿐 아니라 식물ㆍ곡식에 대한 연구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월성에서는 신라시대 씨앗과 열매 70여 종이 나왔는데 그 중 5세기 오동나무와 피마자 씨앗도 있었다. 고대 유적에서 두 씨앗이 확인된 건 처음이라는 게 연구소 측 얘기다. 오동나무는 자생종, 피마자는 외래종으로 짐작된다고 한다. 연구소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신라인들이 가시연꽃이 가득 핀 해자를 보며 걷고 느티나무 숲에서 휴식을 취했을 5세기 신라 왕궁의 풍경을 제시할 것”이라고 했다.

원래 연구소는 이번 고환경 연구 결과를 올 7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고고학대회에서 처음 발표할 참이었다. 그러나 4년마다 개최되는 이 고고학 분야 최고 국제 학술포럼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탓에 내년 7월로 연기되는 바람에 올 9월 국내 학술대회에서 먼저 공개하는 걸로 계획을 바꿨다. 2017년부터 고환경연구팀을 운영한 연구소는 내년 ‘동아시아 고대 복합사회의 환경 고고학' 부문에 참가, 5세기 신라 왕궁 주변 숲에 관한 고환경 연구 성과와 복원 청사진을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경주 동궁과 월지 우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경주 동궁과 월지 우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고려시대 폐허 된 신라 별궁터, 경주 ‘동궁과 월지’

한편, 신라 별궁 터인 경주 ‘동궁과 월지’가 고려시대 이후 방치돼 사실상 폐허가 됐다는 사실이 우물 속 씨앗 분석으로도 확인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동궁과 월지 우물을 분석한 결과 하부층과 상부층에서 나온 식물 유체 양상이 확연히 달랐다고 이날 밝혔다.

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경주 동궁과 월지Ⅲ 발굴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 말기에서 고려시대 초기로 판단되는 하부층에는 소나무류가 많았지만, 고려시대 초기 이후 쌓인 상부층의 경우 소나무류가 줄고 덩굴식물이 늘었다. 안소현 연구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상부층에는 우물 기능을 완전히 잃어 ‘버려진 우물’을 나타내는 덩굴류 식물 유체가 특징적으로 많았다”고 했다.

보고서에는 우물 속 인골 분석 결과도 담겼다. 연구소는 “30대 남성, 8세 소아, 3세 이하의 유아, 6개월 미만의 아이로 추정된다”며 “성인은 벼, 보리, 콩을 주로 섭취한 것 같고 아이들은 3세까지 모유를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가 2012년과 2014년에 이어 세 번째로 펴낸 ‘동궁과 월지’ 보고서는 면적이 6,500㎡인 ‘가’ 지구를 종합적으로 고찰한 결과를 담았다. 건축 유구 구조 및 배치 양상, 기와ㆍ벽돌ㆍ토기ㆍ도기 등 유물 약 600점에 관한 정보를 수록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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