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지역별 다른 코로나19 대응 속도에 ‘뢰스티그라벤’ 재조명
스위스 로잔의 한 병원에서 31일 휠체어에 앉은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로잔=로이터 연합뉴스

‘뢰스티그라벤’은 3개 공용어(독일ㆍ프랑스ㆍ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스위스 특유의 현상이다. 독일어권 베른주(州)의 감자요리 ‘뢰스티’와 경계를 의미하는 ‘그라벤’이 합쳐진 용어인데, 한 나라지만 언어권별로 주민 기질과 문화 등의 다름을 설명할 때 쓰인다. 요즘 이 나라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뢰스티그라벤이 재조명되고 있다. 코로나19 대응을 둘러싸고도 언어권마다 방식과 속도에서 온도 차가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스위스 매체 스위스인포는 31일(현지시간) “프랑스ㆍ이탈리아어를 쓰는 곳이 독일어 사용 지역보다 코로나19에 더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이색 진단을 내놨다. 현재 유럽에서 확진 환자가 6번째로 많은 스위스는 전국 상점ㆍ식당 등의 영업을 중단한 데 이어, 지난달 25일엔 5명 이상 모임을 금지하는 강력한 통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어를 쓰는 남부 티치노주는 주정부 차원에서 이미 22일부터 아예 생산공장까지 문을 닫게 하는 초강수를 뒀다. 불요불급한 상점 폐쇄도 먼저 단행했다.

속도와 방식 만이 아니다. 연방정부 정책을 대하는 시민들의 생각도 차이가 확연하다. 스위스 공영방송 RTS가 보도한 최신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티치노주에서는 10명 중 7명(68%)이 ‘연방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이 너무 느리다’고 응답해 불만이 팽배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강도 높은 통제 조치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프랑스어권 역시 64%가 정부의 느린 대응을 비판했다. 반면 독일어권에서는 42%만이 부정적으로 답해 연방정부에 비교적 후한 점수를 줬다.

전문가들은 26개주로 이뤄진 연방국가 스위스에서 뢰스티그라벤의 영향력이 코로나19 사태로 다시 한 번 확인됐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평론가 미셸 헤르만은 “지역별 코로나19 피해의 편차도 있지만 언어권 고유의 문화 특성도 코로나19 대응 태도를 다르게 만든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언어권마다 독특한 주민 성향이 차이를 만들어냈다는 분석도 있다. 스위스 사회학자 올리비에 모에슐러는 “이탈리아ㆍ프랑스어권은 하향식 정책 구조에, 독일어권은 상향식 구조에 더 익숙하다”고 주장했다. 독일어권 주민들은 자기 책임을 중시해 정부 대응이 강경해질수록 오히려 불만이 커진다는 설명이다.

거꾸로 이런 ‘나홀로 기질’이 감염병 억제를 방해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스위스는 인구 100만명당 코로나19 감염자 수(1,937명)가 스페인(2,055명) 다음으로 많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1일 오후 기준 누적 확진자는 1만6,605명, 사망자도 433명에 달한다. 스위스 매체 타게스 안차이거는 최근 사설에서 “나라 전체가 결속해야 할 시점”이라며 문화적 경계를 넘은 일치된 대응을 촉구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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