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기후 위기가 발등의 불인데도 한국 정치의 기득권 세력은 한가하기만 하다. 보다 못해 청소년들이 나섰다. 지난달 1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센터포인트에서 ‘청소년기후대응’ 대표와 변호인단이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청구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귀납의 토대는 반복 패턴이다. 내일도 해가 뜰 것이다. 생존하려면 추측이 불가피하다. 늘 아무것도 모른 채 상황과 맞닥뜨릴 수는 없다.

나는 추측을 즐기는 편이다. 워낙 효율을 따져서다. 하지만 위험한 습관이라는 핀잔을 감수해야 한다. 예상이 빗나갔을 때 받는 타격이 의존도만큼 크기 때문이다. ‘멘탈’이 흔들려 허둥지둥하면 일은 더 꼬이게 마련이다.

세상을 신이 만들었다면 우연 따위는 없을 테다. 배후의 필연을 모르니 우연처럼 보일 뿐이다. 아무리 사례가 많아도 개연성은 그저 확률이다.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이성의 한계다. 어느 날 해가 뜨지 않으면? 그냥, 그런 거다. 불안은 근원적이다.

냉정한 신이라면 굳이 믿고 마음을 의탁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때리는 아빠를 따르는 경우가 없지 않으니 자신은 못하겠다. 그러나 기왕 발명하기로 마음 먹은 마당에 ‘온정적인 신’이 나았을 듯하다. 인간이 뭘 하든 결국 뒷배가 돼주는 존재 말이다.

신과 함께라면 두려울 게 없었다. 죄 짓지 말라면서도 끝내 죄를 사해줄 이는 신이었다. 동원 가능한 모든 걸 착취하며 심지어 자기마저 소외시키며 인류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자본주의 문명을 밀어붙이고 풍요를 구가했다. 아이러니다. 오만의 근거가 경외였으니.

신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모른다. 하지만 기대했던 너그러운 신은 아닐 것 같다. 지구가 무너지고 있다. “우리가 알던 세계가 종말을 맞고 있다”(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며 조심하고 주저하지 않은 대가인지 모르겠다. 자기 피조물을 멋대로 망가뜨린 괘씸한 종족을 신이 용서하고 지켜줄까. 아무래도 망상 같다.

요즘 ‘코로나19’ 팬데믹은, 어쩌면 더 큰 재앙의 전조인지 모른다. “오히려 지구의 바이러스는 인간이고, 코로나가 지구의 백혈구 아니냐”는 자조도 들린다. 실제 바이러스 감염병이 더 자주 유행하리라는 게 전문가들 전망이다. 생태계 파괴로 야생 동물이 줄며 살 곳이 마땅찮아진 바이러스들한테 “인간은 ‘블루 오션’”(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이다. 온난화가 멈추지 않으면 시베리아 동토(凍土)에 갇힌 고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풀려날 거라 한다. 시간이 없다.

세계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신의 손’이 알아서 작동할 거라는 시장 맹신에서 벗어나 이성을 회복하고 있다. 친환경 구조 개혁이라 할 만한 ‘그린 뉴딜’은 국가의 귀환이다. ‘노동의 종말’을 쓴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새 저서 ‘글로벌 그린 뉴딜’에서 “2028년이면 화석연료 문명이 붕괴한다”며 하루라도 빨리 에너지 전환 대열에 동참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기후악당’ 국가인 한국은 아랑곳없다. 총선을 앞둔 거대 여야 양당에게서 멀쩡한 기후 위기 대응 공약을 찾을 수 없다. 골몰할 일은 따로 있다. 패싸움이다.

코로나 난리통에 그렇잖아도 선거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유권자들이다. 어차피 지키지도 않을 공약, 따져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불신이 이미 마음속에 자리잡은 터다. ‘검찰의 정권 흔들기’니 ‘정권의 윤석열(검찰총장) 찍어내기’니 하는 ‘프레임’을 상대방이 걸고 있다며 서로 제기하는 음모론은, 어느 편이 진실인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투표할 이들의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게 사실이다.

양당의 비례 위성정당은 가히 정치공학의 결정체다. “우리 아니면 누굴 찍겠냐”는 몰염치에 환멸한 이들이 떠난 자리는 하릴없이 열성 신도(信徒)들의 차지다. 그렇게 쪼그라든 자기들만의 리그에서 저들은 적대적 공생을 누릴 것이다.

지난달 ‘청소년기후행동’이 “기후 위기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 정부ㆍ국회를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기득권에게는 지구와 동시대인은 물론 미래 세대도 관심사가 아니다. 정념과 광신이 이성을 구축한다. 염세가 깊어간다.

권경성 문화부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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