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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사회적 아픔과 거리 두는 스포츠계

입력
2020.04.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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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저축은행 배구단이 2014년 7월 내건 슬로건 'We Ansan!'. 한국일보 자료사진
OK저축은행 배구단이 2014년 7월 내건 슬로건 'We Ansan!'. 한국일보 자료사진

프로배구 V리그 OK저축은행은 지난 2014년 7월 연고지(경기 안산시) 시민들을 향해 ‘We Ansan(위 안산)’이란 새 슬로건을 내걸었다. 슬로건엔 특징이 있었다. 앞 글자 ‘We An’을 붉은 글씨체로 강조한 것이다. ‘우리는 안산’이라는 사전적 뜻과 함께 세월호 참사로 가슴 아파하는 연고지 시민들에게 ‘위안(We An)’을 전하고 싶은 속뜻을 담은 슬로건이었다.

고심을 거듭해 내놓은 슬로건이었지만 구단은 이 같은 뜻을 이듬해까지 드러내지 않았다. 그 해 4월 단원고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이 희생하고, 3명의 시신을 찾지 못한 대형 참사로 고통스러운 시민들에게 그저 어떤 식으로라도 힘이 되고 싶었지만, 얄팍한 홍보수단이란 오해를 살까 조심스러웠다는 게 당시 구단 관계자 얘기다.

구단은 말을 안 했어도, 많은 시민들이 구단의 메시지를 알아차렸다고 한다. 마음이 닿았는지 시민들은 안산 상록수체육관으로 모여들었고, OK저축은행은 2014~15시즌 중반까지 승승장구하며 우승을 향해 다가섰다. 구단은 2015년 2월 초 ‘기적을 일으키자’라는 새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웠다. “프로배구 진입 2년 차에 우승이란 기적을 일으키자는 의미”라는 게 당시 구단 설명이었지만, 그 속에도 실종자 가족들을 향한 ‘기적’의 염원을 녹였다고 한다.

OK저축은행은 결국 2015년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 상록수체육관은 안산 시민들이 소리지르고, 기쁨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거듭났다. 스포츠가 지닌 치유의 기능을 확인할 수 있었다. K리그 안산(당시 경찰청축구단)도 OK저축은행의 뜻을 이어받아 가슴에 ‘We Ansan’을 새기고 2015 시즌을 치렀다. 여기엔 축구단 메인 스폰서 기업의 ‘통 큰’ 양보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역 스포츠팀이 사회적 아픔을 치유하는 데 나선 사례로 기억된다.

세월호 참사 6주기인 지금, 여전히 안산의 상처는 채 아물지 못했다. 사회 곳곳에선 당시의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한 노력들이 지속되고 있지만, 지역 연고 프로 구단들의 지역사회를 향한 노력은 멈춰선 모습이다. 두 구단에 물었지만 이번엔 특별히 준비한 게 없다는 대답뿐이다. 신종 코로나 확산 여파를 견뎌내느라 어렵고 총선이란 대형 이슈까지 겹쳐 어수선한 시기라지만, 지역사회의 씻지 못할 아픔을 잊어가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한때 도시의 아픔을 치유하자며 진심 어린 노력을 해왔던 구단들이 지역사회 정서를 이해하는 데 소홀해진 게 아닌지 돌아볼 때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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