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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창(窓)] 정책당국자가 새겨야 할 대공황의 교훈

입력
2020.04.21 18:00
수정
2020.04.21 18:2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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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경제위기 대공황과 비교

불가피한 사건 아닌 정책실패의 결과

미증유의 유연한 사고, 과감한 결단필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발 경제위기는 종종 1930년대의 세계 대공황과 비교되곤 한다. 1929년 10월 미국 주식시장 붕괴를 신호탄으로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은 역사상 가장 심각한 경제적 재난으로 남아있다. 국제연맹 통계에 따르면 1929년 이후 3년 동안 세계 공업생산은 3분의 2로 줄었고, 무역액은 5분의 2로 감소했으며, 식료품 가격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한때 미국 노동인구 네 명 중 하나가 일자리를 잃는 등 각국은 대량 실직에 신음했다. 길고 깊었던 하강만큼 바닥으로부터의 회복은 느리고 고통스러웠다. 미국의 경기지표는 10년이 지난 후에야 1929년 수준으로 복귀했다. 오랫동안 경제위기 연구의 자연적 실험의 장이 되어 왔던 이 사건은 현재의 위기에 대해 어떤 교훈을 줄까? 당면한 현안과 관련된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첫째, 불확실한 요인에 의해 초래된 경제위기일지라도 신속하고 적절한 정책적 대응이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알려 준다. 대공황을 촉발한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연구자들은 대공황이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말미암은 불가피한 사건이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취약한 경제환경과 각국의 정책적인 실패의 결과였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즉 각국이 더 현명한 정책적 대응을 했다면 동일한 충격이 미증유의 경제적 재난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심각한 경제적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재정지출의 확대와 함께 지출의 효과적인 배분이 요구됨을 보여 준다. 뉴딜 재정지출은 미국의 대공황 극복을 설명하는 전통적인 요인으로 꼽히지만 실제로 그 규모는 턱없이 작았다. 1930년대 연방정부의 적자재정 규모는 GNP의 2.1%를 넘어본 적이 없으며 그나마 주ㆍ지방정부의 보수적인 재정에 의해 상쇄되었다. 정부지출은 경기부양 및 고용창출 효과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건설ㆍ토목 부문의 공공취로사업에 집중되었다. 이는 단기적인 구호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경기 회복에는 부정적인 구조였다. 이 시기 확장재정정책이 더 적극적이고 효과적이었다면 더 일찍 불황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셋째,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책당국자들의 유연한 사고와 과감한 결단이 필요함을 상기시킨다. 대공황 시기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어려웠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존의 제도와 이론에 대한 집착이었다. 예컨대 각국 정부와 통화당국자들은 금본위제에 대한 전통적인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불황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통화가치 안정을 위한 긴축정책을 고수하였다. 경기의 하강 국면에서는 불건전한 기업들이 파산하도록 방치함으로써 경제가 다시 건전성을 회복한다고 믿는 청산주의가 팽배하여 기업과 은행의 연쇄 파산을 막기 위한 적극적 개입을 주저하게 하였다. 균형 재정에 대한 과도한 신념은 재정지출 확대를 제약한 요인이었다.

국내 확진자 수가 크게 줄어들고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가 논의되고 있지만 코로나19의 경제적인 충격은 이제야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고용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전년에 비해 약 20만명 감소했고 일시휴직자 수는 160만명을 넘어섰다. IMF는 올해 세계경제가 마이너스 3%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코로나19 이후 세계가 어떻게 변모할지 예상하기는 어렵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지금부터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경제위기의 결과와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90년 전 대공황 때 그랬던 것처럼.

지난주 총선의 결과로 구성될 제21대 국회는 출범과 함께 코로나19 위기를 헤쳐나갈 책무를 지게 되었다. 전례 없이 막강한 힘을 갖게 된 여당의 책임은 특히 무겁다. 현 정부와 국회가 훗날 담대하면서도 치밀한 대응으로 미증유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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