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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뉴구세요?] “실종된 정치언어 품격 되살렸다” 이낙연의 말과 글

입력
2020.04.22 08:00
수정
2020.04.2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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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전문가’ 이제이 전 연설비서관이 본 이낙연 ①

“막말 정치권에 피로 느낀 국민들 이낙연에 끌려”

사회의 가장 아픈 곳 직시…위로·공감하는 진정성

4·1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은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본 투표일 전날인 14일 밤 서울 종로구 동묘앞역에서 마지막 유세를 하고 있는 모습. 이한호 기자
4·1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은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본 투표일 전날인 14일 밤 서울 종로구 동묘앞역에서 마지막 유세를 하고 있는 모습. 이한호 기자

“이낙연의 언어는 이낙연의 역사와 삶입니다.”

4선 국회의원, 전남지사, 국무총리, 그리고 다시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5선 고지에 오른 그. ‘이낙연’ 이름 석자를 모르는 국민은 이제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낙연이라는 인물을 모두가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총리로 지목됐을 때만 해도 의외의 발탁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많은 관심을 받으며 2017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2년 8개월을 역임, 역대 최장수 총리로 기록된 그. 막말과 정쟁에 지쳤던 국민은 무엇보다 이 전 총리의 언어에 반응했습니다. 실종된 정치 언어의 품격을 되살렸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유력 대선주자로도 거론되고 있는 현재의 이낙연은 그의 말과 글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 언어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 물음에 답을 얻기 위해 최근 책 ‘어록으로 본 이낙연’(삼인)을 펴낸 이제이 작가(전 국무총리실 소통메시지 팀장·연설비서관)를 만났습니다. 그는 2년 7개월 동안 이 전 총리의 연설문을 써왔는데요. 4·15 총선이 끝난 직후인 16일 오후, 종로 자하문로의 역사책방에서 차담을 나눴습니다.

이제는 ‘이낙연 전문가’라 불려도 불편을 느끼지 않게 될 정도로 이 전 총리의 말과 글을 연구해왔다고 하는데요. 인간 이낙연의 마음과 머리, 과거와 현재를 샅샅이 살폈던 이 작가에게서 우리가 몰랐던 이 전 총리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내용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총선 메시지…“참말만 남고 막말은 가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종로구 후보(왼쪽)와 부인 김숙희씨가 15일 밤 서울 종로구 선거사무실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지지자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배우한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종로구 후보(왼쪽)와 부인 김숙희씨가 15일 밤 서울 종로구 선거사무실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지지자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배우한 기자

-이 전 총리가 이번 총선 유세에서 “막말과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일하고 말을 품격 있게 하는 사람을 뽑아달라”고 말했는데 상당히 공감을 얻은 것 같아요.

“저도 오랫동안 글을 써왔지만 ‘아, 말은 저렇게 해야 하는 거였지’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어요. 이 전 총리는 상대방을 비판하기보다는 오직 지역 유권자만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지역에 가장 필요한 것을 꼼꼼히 파악해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죠. 메시지는 짧고 강해서 명확하고, 무엇보다 쉽습니다. 그리고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 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해요. 마지막으로 다른 지역 후보 유세에서는 자신과 함께 일을 꼭 해야 하니 뽑아 달라 호소합니다. 그러니 많은 분들께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신 것 같아요.”

-많은 후보들이 ‘막말 논란’에 휩싸였고 상당수가 떨어졌어요. 저급한 정치 언어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정치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거란 해석도 나오는데요.

“사실 이번 선거는 유권자들이 막말하는 정치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 것 같아요. 신동엽 시인의 시 ‘껍데기는 가라’의 한 구절을 빌리면 ‘4월은 참말만 남고 막말은 가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죠. 그리고 그런 막말이 오가는 정치권 모습에 염증과 피로를 느낀 국민들이 이낙연의 말에 끌린 것이고요.”

-특히 국무총리가 된 직후부터 이 전 총리의 화법이 국민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어요.

“이낙연이라는 정치인은 총리 시절 말로 인기를 얻었고, 이번 총선에서도 말로 ‘역시 이낙연’이라는 평가를 받았어요. 정치인에게 말은 중요한 무기라고 하는데, 이 전 총리는 말을 무기라기 보다는 그릇처럼 써요. 말과 글은 그 자체로 그릇이기도 하죠. 그 사람의 생각, 철학, 정서, 살아온 역사가 오롯이 담기거든요. 거기다 이 전 총리는 그 말로써 사람을 품습니다. 당장 우리 정치가 해야 할 큰 과제를 국난 극복으로 제시하고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한다’, ‘나는 상대 후보를 사랑한다’고 했죠. 많은 분들이 그 연설에 감동받았다고 해요. 지르지 않고 감싸 안으려는 말 앞에서 날 선 공격은 힘을 잃죠. 그걸 ‘품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끝없이 타자를 포용하는 거지요.”

◇품격 화법의 비결…“이낙연의 청중은 국민이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정부질문에 답변하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정부질문에 답변하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치인의 말은 그 정치인의 수준을 보여줍니다. 이 전 총리의 언어가 국민들에게 큰 지지를 받은 데에는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는 한국 정치의 낡은 언어가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도 담겨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지금까지도 자주 회자되는, 이낙연의 품격 높으면서도 국민의 속을 뚫어준 통쾌한 발언이 적지 않습니다.

-다른 정치인들의 공격을 받고 이 전 총리가 대응하는 방식도 늘 화제였습니다. 특히 국무총리 취임 후 첫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사이다 총리’라는 별명을 얻었죠.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고 사실을 근거로 담담하게 받아 치는 화법에 오히려 상대 의원들이 무안해하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당시 대정부 질문을 보고 제게 ‘이낙연처럼 말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왔는데요. 제 대답은 한 마디로 ‘따라 하기 어렵다’ 였습니다. 2007년 의원 시절에 참석했던 토론회의 발언을 보세요. 링컨에 대한 인용에 바로 세네카의 말로 받아 치는 것이 어떻게 한 순간에 되겠어요. 사실 그건 이 전 총리가 평생 동안 만들어 온 겁니다. 그래서 저는 ‘끝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현장을 만나고, 자기성찰하며 일생을 쌓아 온 그 사람의 역사와 삶을 어떻게 한 순간에 따라 할 수 있겠나’라고 했어요. 이낙연의 언어는 이낙연의 역사이고 삶입니다.”

-그래도 특별한 비결을 귀띔해 주시죠.

“이 전 총리 언어의 대상은 국민입니다. 대정부 질문이든 토론회든 다 똑같아요. 상대 정치인이 매섭게 공격해 와도 ‘그런 의견도 있지만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느냐’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제가 자꾸 반대 의견을 내서 죄송합니다만’이라는 말을 되풀이해요. 내가 말과 글로 저 상대를 쓰러뜨리겠다고 기를 쓰지 않더라도 국민들이 보고 판단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죠. 말이 갖는 무게를 스스로 쌓아 왔고요. 이게 ‘이낙연 언어’의 핵심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자 시절 당 대변인이었던 이낙연 전 국무총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자 시절 당 대변인이었던 이낙연 전 국무총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 전 총리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초선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줄곧 소속 정당의 ‘입’인 대변인을 맡았는데요. 무려 다섯 번이나 대변인을 하면서 촌철살인 논평으로 내공을 쌓아왔다는 평가를 받았잖아요.

“네. 이 전 총리는 오래 전부터 ‘저급한 말, 저주의 말을 입에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이 전 총리가 자신의 논평 중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무엇인 줄 아세요.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 길로 가라’는 구절이에요.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맞붙은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이 떨어진 노무현 후보를 내리고 다른 후보로 교체하자고 요구하면서 소속 의원들이 잇따라 탈당했죠. 그때 낸 논평이에요. 평소 의리와 심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이 전 총리다운 표현이었죠.”

당시 이 전 총리는 논평에서 탈당하는 의원들을 겨냥하면서도 원색적인 비난 대신 절제된 표현을 선택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다른 길을 가려 하지만 훗날 다시 힘을 합쳐야 할 그들을 적으로 돌리지 않았던 것이죠. 그의 정치력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기대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공감ㆍ위로의 진정성…“ ‘또 올게요’ 하면 반드시 다시 갑니다”

강원 강릉의 산불 피해 현장을 찾은 이낙연 전 국무총리. 연합뉴스
강원 강릉의 산불 피해 현장을 찾은 이낙연 전 국무총리. 연합뉴스

-오늘(4월 16일)이 세월호 참사 6주기입니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대하는 이 전 총리의 위로 화법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이 전 총리는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을 직시하고 위로하려 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에 큰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진실을 어떻게 헤아리고 풀어내야 할지 항상 고민합니다. 장ㆍ차관급 공무원들에게도 감수성을 많이 강조했는데요. 많은 분들이 이번 책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셨는데 이 부분 때문인 것 같아요. 이 전 총리는 ‘또 올게요’ 하면 반드시 또 갑니다. 빈말을 못 해요. 그 진정성이 이낙연의 격과 무게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강원 고성 산불 때 화마로 망연자실한 이재민들을 위로한 영상도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사실 그 때 정부에 여러모로 악재가 많았는데 이 전 총리가 메시지의 힘을 제대로 보여줬죠. 말로 민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앞에 계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혈압 약 얘기를 하고 숙소 문제, 농사 문제로 화제를 옮겨가면서 그들에게 정말 무엇이 필요할지 미리 말을 하죠. 마치 왜 아픈지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요. 그게 가능했던 것은 현장의 힘이에요.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었던 경험들이 쌓여 생긴 힘이죠. 나아가 듣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로 그걸 바꿔내야만 진정한 소통으로 완성되는데, 이 전 총리는 그걸 해냅니다.”

이 작가는 사실 연설문 작성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2017년 어느 날, 이 전 총리를 오래 보좌한 비서관에게 ‘어떻게 저런 위로의 말을 자연스레 할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고 했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그 동안 계속 해오던 거예요”라는 말이었다고 하는데요. 원래 그래왔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게 없단 반응이었다는 겁니다.

4·16 세월호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 영결 추도식에서 묵념하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 연합뉴스
4·16 세월호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 영결 추도식에서 묵념하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 연합뉴스

-이 전 총리를 설명하는 또 다른 말로 ‘현장주의자’가 있죠. 책에서 ‘이낙연의 심장은 기자에 있다’고 표현했는데요.

“이 전 총리는 짧건 길건 길이와 상관없이 연설문 하나하나에 엄청나게 공을 들입니다. 자료에만 기대지 않고 현장의 상황을 끊임없이 확인해요.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듣고 싶어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데 온 힘을 쏟죠. 평소 현장을 치밀하게 따져보고 타인의 삶에 연민을 갖고 살피기에 이런 위로가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현장이 아니면 제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 분들과 민낯으로 만났던 경험이 퇴적층처럼 쌓여서 만들어진 게 이낙연의 언어예요.”

이 전 총리는 이후 명절 등에도 여러 차례 비공식적으로 진도 팽목항과 목포 신항, 강원 고성 등을 찾아 유가족과 이재민을 만났다고 합니다. 아직 차가운 바다에 있을 아이를 떠올리며 가슴을 치는 유가족에게 섣부른 위로 대신 따라준 막걸리 한 잔, “전화번호 바꾸지 않을 테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하세요”라며 건넨 명함,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긴 이재민에게 “아이들도 있을 텐데 엄마가 약하면 안 돼요”라며 단단한 말과 함께 나눈 포옹. 이 작가는 많은 정치인들의 약속이 대부분 허공에 흩어져 국민을 실망하게 하는 일이 되풀이 되는 상황에서, 이낙연의 이런 말과 행동이 진정성 있게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게 아닐까 해석했습니다.

◇이낙연의 연설론…“타인의 심장에 화살을 꽂아라”

5·18 민주화운동 38주년 기념식에서 헌화 분향하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 배우한 기자
5·18 민주화운동 38주년 기념식에서 헌화 분향하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 배우한 기자

-이 전 총리가 말과 글에 까다로운 만큼 연설문을 책임졌던 시간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를 두고 책에 ‘사막에 주둔한 외인부대 훈련장에서 강훈련을 받은 느낌이다’ ‘남자들이 군대 가는 꿈을 꾸듯 이 전 총리의 연설원고를 다시 쓰는 꿈을 꿀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죠.

“조정래 선생님의 표현을 빌어 ‘황홀한 글 감옥’이라고도 했어요. 지인들에게 책을 주면서는 ‘출소 기념’이라고 했죠. 하하. 먼저 단어 선택, 문장의 완결성, 이음새, 구성, 내용과 톤 등 모든 부분에 있어 요구 수준이 높았는데요. 이 전 총리는 ‘연설이란 타인의 심장에 화살을 꽂는 일’이라고 했어요. 청중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것이죠. 종종 ‘연설에 공 들일 필요 없습니다. 연설이나 주례사를 누가 듣습니까’라고도 했는데,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가는 큰일납니다. 공 들일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듣게 만들까’를 연구하라는 뜻이에요. 엄청난 압박이죠.”

-연설문에 대한 이 전 총리만의 특별한 원칙이 있을까요.

“‘어디서, 어느 시간에,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를 우선 정말 섬세히 살핍니다. 그 다음은 ‘청중이 듣고 싶은 게 무엇인지, 응답을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죠. 역사적인 연설은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는데요. 예를 들어 4ㆍ19 연설을 쓴다고 하면 관련된 역사책, 특히 1차 자료를 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어요. 이 사건을 해석한 논문 등 2차 자료가 아닌 당시 사건 관련자의 일기장, 기록 등 사료를 보도록 했죠. 현장에 가보는 것은 기본이고, 그 뒤에 전문가를 취재해야 해요. 그래야 눈 앞에 그려진다고요. 또한 그때의 역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 현재 그 사건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상기해 오늘과 맞닿은 역사여야 한다고 했죠. 과거의 4ㆍ19가 아니라 오늘의 4ㆍ19여야 한다는 겁니다.”

-책에 ‘타인에 대한 상상’이라는 표현이 나와요. 연설 초안에 대해 이 전 총리가 피드백을 하는 장면에서도 치밀함과 세심함이 엿보이는데요.

“2017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 개회식을 앞두고 보고했던 축사 초고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한 번 상상해봅시다. 몸이 불편한 분들이 골을 넣거나 탁구공을 넘기거나 달리기를 하는 게 어떨 건지요. 타인의 삶에 대해 더 열심히 상상을 하면 남 얘기하듯 (이렇게) 글을 쓸 수가 없을 거예요’라고요. 혼이 난 거죠. 하하. 비로소 장애인들이 운동하는 풍경이 생생히 그려졌고, 공감이 부족했다는 반성과 미안함에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 특히 약자들에 대한 마음은 ‘어떻게 저런 것까지 아시지’ 할 정도로 정말 꼼꼼했습니다.”

-역사 관련 연설 중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사에서 ‘광주는 광주다웠습니다’라는 구절에 희생자 유가족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요. 당시 감동을 받았다는 국민이 많았어요.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사 연설은 연설팀이 한 달 동안 준비했는데요. ‘광주는 광주다웠습니다’는 이 전 총리가 직접 쓴 거예요. 당시 연설팀 네 명이 앉아서 허탈해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썼어’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모든 것이 응축돼 나온 문장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죠. 그 연설은 당시 동아일보 기자였던 이 전 총리가 갖고 있는 1980년 5월 광주에 대한 속죄가 담긴 절창이자 진심 어린 헌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책 ‘어록으로 본 이낙연’(삼인)을 펴낸 이제이 작가(전 국무총리 연설비서관). 배우한 기자
책 ‘어록으로 본 이낙연’(삼인)을 펴낸 이제이 작가(전 국무총리 연설비서관). 배우한 기자

-국민이 바라는 이상적인 정치 언어는 무엇일까요.

“자신의 비전을 갖고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하려는 지도자는 반드시 자기만의 언어를 갖게 된다고 봅니다. 자기만의 언어란 개성이 있는 언어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을 바쳐 일구어낸 가치와 소신 그리고 실천의 언어라는 뜻입니다. 정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을 기획하는 일이라 생각해요. 그렇기에 첫째로 막연한 희망이 아닌 구체적 희망을 주는 말과 글이어야 합니다. 둘째로 역사의 통증에 말을 건네는 언어가 필요합니다. 우리 역사 속에서 아팠던 이들, 거대한 흐름 속에 소외됐던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손을 건네고, 그 작은 사람들을 역사에 세워주는 일을 하는 언어에 힘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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