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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낱말에 어린 편견과 존중

입력
2020.05.01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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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낱말의 변화를 살펴보면 사람들이 대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오늘날 쓰는 ‘어리다[幼]’는 본디 ‘어리석다[愚]’라는 뜻이었다. ‘훈민정음’에 나오는 ‘어린 백성’이 그것이다. 그 당시에 지금의 ‘어리다’라는 뜻을 표현하는 단어는 ‘졈다’였다. ‘어리다’의 뜻이 변화함에 따라 ‘졈다’는 ‘나이가 어리다’의 뜻을 내주고 어린이보다 좀 높은 연령대를 가리키는 오늘날의 ‘젊다’가 되었다.

‘어리석다’는 뜻이 ‘나이가 어리다’는 뜻으로 바뀐 것은 우연한 변화가 아니라 사람들이 두 뜻을 비슷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점잖다’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점잖다’는 ‘졈지 않다’, 즉 ‘나이가 어리지 않다’는 겉뜻 안에 ‘언행이나 태도가 의젓하고 신중하다’는 속뜻이 담겨 있다. 오늘날엔 한 단어로 묶여 속뜻만 남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나이가 어리다’가 가지고 있는 여러 속성 중에 인지능력이나 행실의 결함에 주로 초점을 맞춰온 셈이다.

‘어린 것’ ‘애’ 정도로나 불리던 하찮은 존재를 ‘어린이’라 존중하여 부르자는 운동을 펼친 방정환은 언어가 인식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파악했다는 점에서 선구적이다. 1923년 첫 어린이날 행사가 열렸다. 그날 배포된 선전지엔 어른들에게는 어린이에게 경어와 부드러운 말을 쓸 것을, 어린이들에게는 서로 존대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말이 오해나 편견을 고치고,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리라는 믿음의 발로일 것이다.

‘어린이날 노래’의 마지막 구절은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다. 그런데 “오월은 어린이날~”로 잘못 아는 사람도 있다. 한 달을 통째 어린이날로 여기는 이런 오해는 매우 바람직하다.

강미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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