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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과잉의료

입력
2020.05.01 18:00
수정
2020.05.01 22:3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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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의료가 코로나19 방역 공신 주장

한국의 병상과 장비 OECD 최상위권

건보 지속 위해 과잉의료 통제 불가피

코로나19 여파로 외래환자가 80% 줄어든 한 광주의 한 아동병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코로나19 여파로 외래환자가 80% 줄어든 한 광주의 한 아동병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100일 넘게 코로나19와 씨름을 벌이고 있는 방역당국에 4월 30일은 기억할 만한 하루였을 것이다. 국내발 확진자가 72일 만에 ‘0명’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2,900만명이 넘는 유권자가 참여한 지난달 총선에서 나온 확진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도 이날 공식 확인됐다. 신천지대구교회 집단 발병으로 하루에 확진자가 수백 명씩 쏟아져 나오며 총선 연기가 공공연히 거론되던 게 불과 두 달 전이라는 걸 상기하면 사실상 ‘생활방역’의 성공을 보증받은 날이다. 지난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 환자 발생 이후 250명 가까운 사망자가 나온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수십 일째 격리생활을 감내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한국이 ‘모범 방역국’이라는 평가는 어색하지 않다.

코로나19 사태가 완연한 진정세를 보이면서 한국이 이런 미증유의 보건 위기에서 안정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이 무성하다. 대체로 방역당국의 투명한 정보 공개, 국민들의 자발적 협조,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 등이 꼽힌다. 그런데 독특한 분석이 눈에 들어온다. 오랫동안 폐단으로 지목됐던 한국의 ‘과잉의료 시스템’이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일등공신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한국의 의료 자원과 관련된 지표는 의사 숫자를 제외하고 대부분 ‘과잉’상태다. 병상은 인구 1,000명당 12.3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두 번째로 많고, 컴퓨터단층촬영(CTㆍ100만명당 38대), 자기공명영상(MRIㆍ100만명당 29대) 보급률은 각각 OECD 8위와 3위다. 1인당 연간 외래진료 횟수(16.6회, OECD 평균 7.1회)는 압도적인 1위다. 넘치는 고가의 장비는 불필요한 검사를 유발하고, 과잉 병상은 ‘사회적 입원(의료적 필요가 아닌 돌봄 차원의 입원)’을 낳으며 낮은 병원 문턱은 ‘의료 쇼핑’을 유도한다는 게 많은 보건의료 전문가들의 비판이었다. 이는 결국 의료비 상승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이런 논리가 허물어졌다고 주장하니 놀랄 만하다. 주장은 이렇다. 폭발적인 환자 증가 상황에서 과잉 병상은 의료체계 붕괴를 막는 효자 노릇을 했고, 높은 CT 보급률은 빠른 진단의 토대가 됐다는 것이다. 4월 초 서울대 의대의 코로나19 과학위원회는 확진환자가 3,000명 이상 발생한 23개국을 연구ㆍ분석한 보고서를 냈는데 1,000명당 병상 숫자가 많은 한국(1위), 독일(8위)은 확진자 중 완치율(각각 62.3%, 27%)이 1위와 3위로 집계됐다. 넉넉한 숫자의 병상이 코로나19 극복의 효자 노릇을 했다는 게 위원회의 결론이다. 이 주장이 맞다면 다가온 감염병 시대에 과잉의료를 통제하자는 주장은 용도폐기 감이다.

그러나 ‘비정상(과잉의료)이 정상’처럼 보이는 건 일시적이거나 착시현상일 수 있다. 복지시민단체인 내가만드는복지국가의 김종명 의료팀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은 “메르스 때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정부가 초기부터 수백 명을 강제 격리시킨 방역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 덕이지 과잉의료 체계 때문에 위기를 벗어난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도 “우리나라 병상의 상당수는 감염병 전용 병상이 아니라 노인용 병상이라서, 많은 병상이 완치율을 높였다는 주장은 인과관계가 불명확하다”는 입장이다.

의료비는 우리나라 전체 사회보장 지출의 40%로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2017년 의료 보장을 위해 정부가 지출한 돈은 74조3,000억원으로 국방예산(40조3,000억원)의 2배에 가깝다. 무서운 고령화 속도와 정권을 불문하고 추진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감안하면 이미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에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보험료를 무한정 인상할 수 없는 만큼 진단과 검사, 의료행위 등 의료량 통제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과잉의료의 역설’은 없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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