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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Wide] 디지털 성범죄로 확대된 ‘함정수사’… 부작용 최소화할 묘수는

입력
2020.05.07 04:30
수정
2020.05.08 10: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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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제공형’은 합법인데 반해 불법인 ‘범의유발형’이 문제

지능화되는 범죄 대처 위해선 법 집행기관 신뢰도 확보돼야

※Deep&Wide는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deep&wide] 노형욱(왼쪽 세번째) 국무조정실장이 지난달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디지털 성범죄에 잠입수사 허용 등이 포함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deep&wide] 노형욱(왼쪽 세번째) 국무조정실장이 지난달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디지털 성범죄에 잠입수사 허용 등이 포함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23일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에는 수사관이 미성년자 등으로 위장하여 수사하는 잠입수사(함정수사)를 디지털 성범죄에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대학생으로 구성된 ‘추적단 불꽃’이 미성년자 성착취 범죄가 벌어진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에 잠입 취재해 그 실태를 최초로 폭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갈수록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선 잠입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정부는 우선 수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잠입수사 과정에서의 수사관 보호, 향후 재판 과정에서의 증거 능력 등을 고려한 법률 근거도 마련할 예정이다. 부작용을 우려해 마약 범죄 등 일부 수사에만 활용되고 있는 함정수사가 디지털 성범죄에도 제한적으로 도입되면서 최대의 효과를 거두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과제가 던져졌다.

함정(entrapment) 또는 잠입(sting) 수사는 그 목적에 따라 다양한 수법을 사용하고 다양한 범죄에 이용되기 때문에 정확하게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일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함정수사는 4가지 기본적인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 경찰에 의하여 고안되거나 범행하도록 하는 유인(enticement)이나 기회(opportunity)가 있어야 하고, 둘째로 특정한 유형의 범행을 할 것 같은 표적이 된 개인이나 집단이 존재하며, 셋째로 어떤 형태의 속임수나 잠복 또는 잠입한 경찰관이나 대리인이 있고, 넷째로 범인의 검거로 작전이 끝나야 한다.

이미 대부분의 국가에서 다양한 형태로 함정수사를 활용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우리와 유사하게 두 가지 형태의 함정으로 구분하는데, 소위 ‘무작위 미덕 검증(Random Virtue testing)’이라는 우리로 말하면 ‘기회제공형’과 ‘범행유인(Inducement of an offense)’이라는 우리의 ‘범의유발형’이 그것이다. 영국에서는 함정수사를 좀 더 구체적인 조건으로 고려한다. 예를 들어 경찰이 선의를 가지고 행동했는지, 피의자에게서 범죄행위를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었는지, 수사가 진행되는 지역에 범죄가 특히 성행하고 있다고 의심의 여지가 충분한지, 수사 중인 범죄의 발각이 어렵고 비밀스럽기 때문에 이런 사전적 수사기법이 필요한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미국에서는 함정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하여 두 가지 검증을 한다. ‘주관적’ 검증은 피의자의 마음의 상태를 보는 것으로 만약에 그가 범행할 사전의향(predisposition)이 없었다면 함정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객관적’ 검증은 피의자가 아니라 정부의 행위를 보는 것으로 정부관료의 행동이 보통의 준법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범행하도록 유발하였다면 함정이라고 보아 우리의 범의유발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함정 또는 잠입수사는 크게 두 가지 목적으로 행해진다. 첫째는 수사를 위한 목적으로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된다. 어떤 목적에서건 함정수사는 대체로 특정한 일부 형태의 범죄를 표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비교적 쉽고 빈번한 것이 장물이나 분실물 수사이고, 그 다음이 마약의 제조와 판매 등 주로 조직범죄적 성격이 짙은 마약과 관련된 범죄, 이번 n번방 사건과 같은 주로 미성년자를 표적으로 하는 성 착취와 매춘, 날로 증가하는 전문 차량절도, 전문 범죄조직과 집단, 사기와 부패, 그리고 아동 음란영상물이나 성착취 등이 함정수사의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는 주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함정수사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만큼 그 긍정적 효과나 장점이 있다. 먼저 함정수사는 범죄수사를 용이하게 하고 그만큼 범법자의 검거 가능성과 검거율을 높인다. 이렇게 되면 경찰의 공공관계와 경찰에 대한 시민의 인식이나 인상을 향상시켜 준다고도 한다. 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함정수사나 심지어 계획의 발표만으로도 소위 말하는 ‘이익의 확산(diffusion of effects)’이라는 효과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이와는 반대로 그만한 부정적 영향 또는 부정적 측면도 없지는 않다. 아마도 함정수사의 가장 크고 심각한 문제는 함정(entrapment)일 것이다. 함정수사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세기의 살인마로서 아직도 미제로 남겨진 19세기 영국의 연쇄살인마 잭 리퍼는 배경으로 우리에게도 영화로 뮤지컬로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에서 그를 잡기 위하여 형사 앤더슨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그에게 접근하는데 그게 지금의 잠입수사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영화 ‘신세계’에서 두 명의 경찰관을 폭력조직에 심는데 이름 하여 함정수사다. 물론 이런 수사기법에 대해서 한편에서는 적법을, 다른 한편에서는 위법성을 조심스럽게 주장한다.

극악무도한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른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지난 3월 25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고영권기자
극악무도한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른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지난 3월 25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고영권기자

미국에서는 이런 함정수사를 ‘함정변론’처럼 ‘올가미이론’이라고 하여 올가미에 걸린 사람에 대한 처분의 위법성을 지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위법이라는 소극적 판단과 적법하다는 적극적 의견이 충돌하지만 일반적으로 함정 때문에 범행 의도가 처음 생겨 범행한 경우에만 위법이고, 이미 범행 의도가 있었던 사람에 대한 함정을 포함한 다른 모든 경우는 적법하다고 의견이 모아지는 편이다. 최근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소위 n번방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도 바로 이런 잠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추적단 불꽃’이라는 대학생 단체가 n번방에 자신들의 신분을 소비자로 속이고 위장, 잠입하여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한 결과라고 하는데, 이 경우 굳이 잠입수사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잠입ㆍ함정수사가 원칙적으로 국가기관이나 기관원 또는 그 위탁을 받은 자에 의한 것이어야 하는데 비해 이번 ‘추적단 불꽃’은 경찰 등 국가기관이 아닌 민간 신분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며 이런 이유로 위법 소지가 적지 않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론화와 제도화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던 것이다.

현재는 잠입ㆍ함정수사가 원칙적으로는 위법이지만 극히 제한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잠입ㆍ함정수사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단순히 범행의 기회를 제공하는 ‘기회제공형’과 범행 동기나 범행의도가 없던 사람에게 범행의도를 갖게 하는 ‘범의유발형’이 그것이다. 경찰이 만취한 척 길거리에 쓰러져 있다가 지갑을 훔치도록 하거나, 경찰이 위장 광고한 인터넷에 살인 등 청부업 광고를 보고 살인청부를 청탁하는 경우라면 기회제공형이다. 반대로 경찰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길거리에 일부러 떨어뜨리고는 기다리다가 누군가 주우면 그에게 접근하여 우체국이나 지구대에 갖다 주려는 사람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자신에게 주운 휴대전화를 팔라고 하여 싸게 팔게 하는 것은 위법적 함정수사라고 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함정수사는 범의가 없던 피고인에게 경찰 등이 위장, 잠입하여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인하는 행위로서 합법적인 기회제공형과 불법인 범의유발형이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범의유발형으로 예를 들어 여성경찰관이 매춘 여성으로 위장하여 지나가는 사람을 유인하여 성을 매매하도록 하는 경우 미국에서는 이런 함정수사를 피고의 무죄를 주장하는 ‘함정변론’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우리 사회의 범죄 현상과 수법의 진화로 범죄가 더욱 지능화, 조직화, 고도화, 음성화되고 있어서 판례가 아주 소극적, 협의로만 적법한 것으로 간주되는 현재의 ‘기회제공형’만으로는 이런 범죄 현상과 수법의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여 범인을 검거하고 통제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대로라면 마약수사에 있어서는 점조직으로 되어 마약의 제조, 판매 등 그 뿌리를 밝혀야 함에도 잠입ㆍ함정수사의 제한과 제약으로 맨 마지막 소비자 투약자들만 잡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함정수사는 그 적용 대상이나 범위가 점증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더 높으며, 여기서 우리가 신중하게 살펴야 할 것은 공익이라는 범죄 억제와 통제는 더 효과적, 효율적으로 하되 그 부작용은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합법으로 간주되는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라도 적법 절차의 원칙을 따르지 않았다면 위법으로, 반대로 범의유발형이라도 유인하는 사람이 수사기관과 직접적 관련이 없이 범의를 유발케 하였다면 위법한 함정수사로 판단하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이를 대변하듯 미국에서는 연방수사국(FBI)가 직접 아동음란사이트인 ‘플레이펜’을 운영하여 접속해 온 사람 중 137명을 무더기로 기소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함정수사는 일정부분 현재도 필요하고 앞으로도 더 확대가 필요하다면 엄격한 적법절차의 준수를 비롯한 법집행기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담보되는 전제 하에 가능해질 것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

이윤호 교수는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범죄학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한 전문가로, 법무부 법무연수원 교정연수부장, 국가경찰위원회 위원, 대한범죄학회장, 한국공안행정학회장, 한국경찰학회장, 한국산업보안연구학회장, 한국대테러정책학회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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