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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스쿨존 안전, 엄벌만으로 가능할까

입력
2020.05.08 01: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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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C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근처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의 모습. 주차된 차량과 주행 중인 차량 사이로 어린이들이 위험하게 길을 건너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근처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의 모습. 주차된 차량과 주행 중인 차량 사이로 어린이들이 위험하게 길을 건너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곧 ‘오프라인 등교’가 시작된다. 지금은 고요한 학교 근처는 다시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활기 덕분에 생기를 찾을 것이다.

이제 아이들이 돌아올 스쿨존의 안전을 다시금 챙길 때다. 물론 ‘민식이법’이 시행된 3월 25일부터 스쿨존은 예전과 아주 다른 곳이 됐다. 스쿨존 사고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범죄에 포함돼, 가해 운전자는 △사망사고시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 △부상사고시 1~15년 징역 또는 500만~3,000만원 벌금형에 처해진다.

운전자 처벌 강화를 앞세운 법은 스쿨존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여줄까. 스쿨존은 정말 아이들이 안심하고 오가며 길을 건너는 ‘안심존’이 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다’는 답을 내놓기 어렵다. 초등학교 주변을 잠시라도 살펴보면, 스쿨존 안전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바로 스쿨존 도로에 늘어선 불법주차 차량들이다. 구축 밀집 지역 등 주차 공간 확보가 어려운 곳에서 학교 인근 주차 문제는 더 심각하다.

운전자 입장에서 주차 차량이 늘어선 ‘학기 중 스쿨존’을 통과하기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승용차 기준 운전자의 앉은키는 110~120㎝. 유치원생 혹은 초등 1학년의 키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높이 145㎝(세단)에서 180㎝의 방어벽이 좌우 빈틈 없이 늘어선 좁은 공간을, 초등 1학년생 눈높이로 주행하며, 장벽 사이에서 언제든 나올 수 있는 아이들을 경계해야 하는 일이 바로 대한민국 스쿨존에서의 운전이다.

주차차량 탓에 시야가 제한되면 시속 30㎞도 사고를 막긴 어렵다. 시속 30㎞면 초당 8.3m를 간다. 눈으로 아이를 발견하고, 뇌가 돌발상황을 인식한 뒤, 발로 브레이크를 밟아, 차량이 정지하기까지, 2초 가까이 걸린다. 발견 이후 15m를 더 가는 셈이다. 제한속도를 지키며 주의를 기울여 주행 중이라고 하더라도 운전자는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를 피하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도 있을 수 있다. 김민식군 사고에서 운전자는 시속 23㎞로 주행 중이었다.

물론 중형을 두려워한 운전자들이 속도를 줄이고 더 신경을 쓰면, 스쿨존 사고가 분명 줄긴 할 것이다. 하지만 스쿨존 안전을 엄벌에 대한 공포심에만 의지하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못하다. 국가가 불법주차라는 심각한 장해를 방치한 채 의무를 저버린 와중에, 개인에게만 상황에 따라 불가능할 수 있는 주의 의무만 강요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내비게이션 회사들이 이용자의 빗발치는 요구에 스쿨존을 자동우회하는 기능까지 업데이트 했을까.

특가법에 규정된 범죄들 중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을 다스리는 조항은 스쿨존 사고가 유일하다. 과실범죄를 중형만으로 예방하는 건 쉽지 않다. 실수와 부주의를 줄이는 인프라, 인프라를 지원할 제도, 안전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행정력, 그리고 스쿨존에서만은 어떤 편의보다 아이들 안전을 우위에 두는 것에 동의하는 사회적 인식이 함께 가야 한다.

주차단속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일도 아니다. 선거를 신경 쓰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스쿨존 단속 탓에 주차공간이 부족하다는 민원을 물리치기도 어려운 일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스쿨존 사고 처벌을 강화하는 일은 스쿨존 시야를 확 트이게 하는 작업과 함께 진행됐어야 했다. 이제라도 스쿨존 내 주차 수요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는 투자와 스쿨존 불법주차에 엄중한 책임을 부과할 제도의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주차 탓에 시야 확보가 안 된 스쿨존 사고의 경우, 불법주차 차주에게도 상당한 금액의 과태료를 물리거나 사고에 따른 민사 책임의 일부를 공동으로 지게 하는 방안 등이 있다.

운전자 엄벌만으로 스쿨존 안전이 가능할 것이라는 안심은 위험하다. 아이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등교하지도 않는 스쿨존에서, 법 시행 이후 사고가 줄었다며 오판(경찰청장 발언)할 때도 아니다.

이영창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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