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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감옥’에서 오는 편지

입력
2020.05.15 04:30
수정
2020.05.15 09:0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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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언론사 사회부에는 제보가 끊이지 않는다. 전에는 유선전화와 우편 제보 비중이 높았지만 요즘엔 거의 이메일로 집중된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부 책상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편지봉투들이 올라온다. 하얗고 밋밋한 우체국 규격봉투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파란색으로 쓰여 있고, 우편번호를 적는 빨간색 사각형 다섯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그 봉투 말이다. 여기에 편지를 넣어 보내는 이들은 딱 한 부류다. 규격봉투밖에 쓸 수 없는 사람들, 바로 구치소나 교도소 수용자다.

교정기관에서 오는 편지들에는 규격봉투 말고도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보내는 사람 주소에 구치소나 교도소라고 적혀 있진 않다. 대신 우체국 사서함(가입자 전용 우편함)이 편지 보낸 곳을 알려준다. 서울 송파우체국 사서함은 서울동부구치소(옛 성동구치소), 경기 안양우체국 사서함이면 안양교도소인 식이다.

검정색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손편지라는 것도 똑같다. 편지 내용은 자신의 사건 처리에 대한 의문 제기와 억울함 호소가 90% 이상이다. 표현은 직설적이고 구체적이다. 사건 관계자, 수사한 경찰관, 검사의 실명과 소속 등을 자세히 적으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어떤 편지에선 글자 위로 어른거리는 분노가 느껴질 정도다.

수취인은 사회부 담당자, 사회부장, 편집국장으로 뭉뚱그려진다. 경험상 받는 사람 이름 없이 직책만 적혔으면 대부분 특정 언론사가 아니라 다양한 곳에 일제히 발송된 편지다. 꼼꼼히는 읽어도 취재 의욕이 떨어지는 걸 부인하지 못하겠다. 미심쩍거나 확인할 만한 대목이 있다면 해당 분야 취재 기자에게 넘긴다. 가끔 답장을 보내 발신인에게 추가 질문을 할 때도 있다.

그 안에서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편지를 썼겠지만 취재와 기사로 이어지는 제보는 극히 적다. 교도소의 기결수들은 경찰과 검찰 수사를 거쳐 이미 법원의 판결까지 받았다. 최대한 보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해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공개되지 않은 새로운 증거가 튀어나와 반전을 기대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사회적 공분을 불러온 사건이라면 더 그렇다.

때때로 기자의 이름을 콕 찍어서 오는 편지들도 있다. 위의 경우보다는 신중해진다. 교정기관 안에서도 원하는 신문을 구독하는 건 가능하다. 특정 기자 앞으로 편지를 썼다면 그 기자가 쓴 기사를 읽었다는 얘기다. 십중팔구 자신의 사건과 관련이 있거나 같은 범주의 기사일 공산이 크다.

게다가 미결수들이 수용된 구치소에서 특정 기자를 지목해 보낸 편지라면 아직 공개되지 않은 사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런 편지는 고대로 해당 기자에게 전달한다. 가장 잘 아는 기자가 내용을 판단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이후 수순은 답장을 보내거나 필요할 경우 구치소로 면회를 가는 등 제보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다.

취재를 위해 재소자에게 먼저 편지를 쓰는 기자들도 더러 있다. 채널A 모 기자의 ‘검언유착’ 의혹도 시작은 교도소에 있는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에게 구구절절 보낸 편지였다. 이후 이 전 대표의 대리인을 접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 부분에 대해선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수용자들이 보낸 편지에 대한 기억을 되짚는 동안 또 흰색 규격봉투 두 통이 사무실에 도착했다. 한 통은 편집국, 다른 하나는 법조팀 후배 앞이다. 전자의 내용은 대충 짐작이 되지만 그래도 봉투를 칼로 반듯이 자르고 또 편지를 꺼낸다.

그들에게는 언론사가 마지막 희망일 테다. 정말 억울한 재소자가 없다고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재심에서 결론이 뒤집어진 ‘수원 노숙소녀 살인 사건’과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이 그랬다. 이춘재가 저지른 화성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윤모씨는 무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출소했다.

PS: 제보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김창훈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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