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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인격 말살의 밥벌이

입력
2020.05.15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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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구 아파트 경비원 죽음이 남긴 것

본질은 나이든 노동자 대하는 사회의 태도

죄책감은 ‘괴물사회’ 만든 공동체가 느껴야

서울 강북구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던 고 최희석씨의 유족과 주민 등이 14일 고인이 생전 일하던 경비실 앞에서 노제를 지내고 있다. 고인은 한 거주민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서울 강북구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던 고 최희석씨의 유족과 주민 등이 14일 고인이 생전 일하던 경비실 앞에서 노제를 지내고 있다. 고인은 한 거주민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1평(3.3㎡) 남짓한 그 공간에 단일한 정체성을 부여하긴 어려워 보였다. 들어서면 벽에 걸린 작업복, 그 아래로 수도꼭지가 보인다. 바닥에 닿지 않게 호스를 휘감아 놓은 깔끔한 품새는 주인을 닮았을까. 그 아래엔 샴푸통과 비누가, 왼쪽엔 낡은 변기가 자리했다. 이곳은 그럼 화장실인가. 변기 위 선반에 가지런한 커피포트와 컵, 전자레인지를 보면 생각은 달라진다. 벽엔 나무 수납장도 두 짝 매달렸다. 주인은 선반도, 벽장도 누군가 버린 것을 주워다 뚝딱뚝딱 망치를 두드렸을 것이다. 지지대로 쓴 막대까지 색깔과 나이가 모두 제각각이다.

여기서 주인은 영혼을 잃었다. 경비실 옆 이 공간은 그에게 화장실이자 욕실이었고, 탈의실이었으며, 부엌이었다. 어디 하나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구석이 없었을 이곳에서 그는 코뼈가 부러졌고 발등뼈에 금이 갔다. 이유는 하나일 테다. CCTV가 없으니까. 한편에 놓인 강냉이 봉지가 애처롭다. 주인은 생전 “요즘 밥이 넘어가지 않아 강냉이만 먹는다”고 토로했다.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한 아파트 경비원 고 최희석(59)씨의 일터 사진을 보다 할 말을 잃었다. 그곳이 그의 생을 증언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새벽 2시에도 달려 나와 주차를 도왔고, 밤늦게 쓰레기를 버려도 함께 해 주던 분”이라고 말했다. 그가 자존감을 지키는 방식이었을 거다.

경비실 옆 그의 공간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건 딸들에게 마음이 가닿아서다. 차량 정리를 하느라 이중 주차 된 차를 밀었다는 이유로 그는 한 입주민에게 지난달 21일부터 폭행과 폭언, 협박에 시달렸다. 그를 버티게 한 힘은 혈육이었다. 그는 홀로 딸 둘을 업어 키운 아버지다. 가해자가 그만두라고 윽박지를 때도 그가 한 말은 “(아직 결혼 안 한) 딸과 먹고살게 해 주세요” “계속 일하고 싶어요”였다. 그런 그에게 돌아온 건 ‘머슴’ ‘돌아이’라는 가해자의 조롱 문자였다.

1961년생 아버지의 환갑도 치르지 못하고 보낸 딸들의 마음, 어쩌면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가 어떻게 일했는지 알게 됐을 딸들의 심정, 그걸 알았어도 몰랐어도 죄책감에 시달릴 그들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꽃을 보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했던 노동자가 죽음으로 억울함을 풀어야 하는 사회라면, 그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2014년, 2010년에도 우리는 이미 비슷한 사건을 접했다.

국회는 2017년 ‘경비원 갑질 금지법’이라며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지난해엔 경비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현실에선 무용지물이다. 경비원에게 업무 외 부당한 지시를 해선 안 된다고 명시한 개정 공동주택관리법은 위반시 처벌 규정이 없다. 개정 경비업법대로 경비원에게 ‘시설 경비’만 하게 하느니, 관리자로선 전자경비 시스템으로 대체하면 그만이다.

하기는, 법이 능사일까. 본질은 사람을, 나이 든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다. 그 치부를 드러낸 조정진(64)씨의 ‘임계장 이야기’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이는 젊어선 못 견뎠을 일을 견디게 한다.” 저자는 공기업 정규직으로 38년간 일하다 퇴직 후 계약직을 전전하며 겪은 일을 기록했다. 현실에서 고령 노동자는 이름도, 직책도 아닌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줄인 ‘임계장’으로 불리는 것쯤은 치욕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젊은이는 마다하는 허드렛일 노동자, 고르기도 다루기도 ‘짜르기도’ 쉬운 ‘고다짜’ 계약직, 그런 비정규직 중의 비정규직은 그들이 메우는 게 현실이다. “얼마 전 출산한 딸이 책을 읽지 못했는데, 보면 많이 속상해할 것 같아요.” 저자의 여러 인터뷰 중 이 말이 오래도록 눈길을 사로잡았다.

견딜 수 없는 것을 죽을 힘을 다해 견디게 만드는 일을 ‘밥벌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건 과연 정당한가. 이런 괴물 사회는 우리가 만들었다. 그러므로, 죄책감은 우리 몫이다. 그런 괴물이 온존하도록 만든 공동체가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우리가 부디 찰나의 추모에 그치지 않기를.

김지은 논설위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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