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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오! 베트남] “삼성 퇴출운동?” 베트남, 한국發 가짜뉴스에 ‘어리둥절’

입력
2020.05.21 04:30
수정
2020.05.21 07:1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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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베트남 신뢰 훼손하는 가짜뉴스

※국내 일간치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한 베트남인이 2월말 한-베트남 관계가 악화하던 시기에 “삼성은 베트남을 떠나라”는 취지의 사진을 만들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현재 이 사진은 한국 유튜버들에게 현지 삼성 불매운동 발생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한 베트남인이 2월말 한-베트남 관계가 악화하던 시기에 “삼성은 베트남을 떠나라”는 취지의 사진을 만들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현재 이 사진은 한국 유튜버들에게 현지 삼성 불매운동 발생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베트남의 삼성 퇴출 조짐에 분노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지난달 말 초면의 베트남 관료가 식사 중 휴대폰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한국의 유튜버가 만든 동영상을 보여주며 물었다. “베트남에서는 삼성 퇴출운동이 일어난 적이 없다. 이 뉴스는 오해인가 악의인가.” 차분한 어조의 질문이었지만 정답은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일주일 뒤 한국 금융권의 베트남 현지 간부는 또 다른 유튜버가 만든 영상물을 내보였다. 제목은 ‘한 발 물러났던 베트남이 또 한국에 선을 넘자 한국의 히든카드가 베트남 전체를 뒤집은 상황’. 그는 최근 본사로부터 “해당 영상을 보니 한국ㆍ베트남 관계 험악하던데 현지 사업을 확장해도 되느냐”는 질문까지 받았다고 했다. 재미로 보는 유튜브. 그 방심 속에 똬리를 튼 가짜뉴스가 양국에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거침 없이 허물고 있었던 것이다.

◇389만번 클릭… 비약과 오역의 진원지

한국발 가짜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베트남 한 경제지의 한국 진단키트 관련 기사. 유튜버들의 주장과 달리 본문에는 “한국 진단키트 성능이 떨어진다”는 내용은 없다. 홈페이지 캡처
한국발 가짜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베트남 한 경제지의 한국 진단키트 관련 기사. 유튜버들의 주장과 달리 본문에는 “한국 진단키트 성능이 떨어진다”는 내용은 없다. 홈페이지 캡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2월 중순부터 최근까지 유튜브에서 유통된 베트남 관련 가짜뉴스는 200여개에 달한다. 19일 기준 조회수 1위(389만회)는 ‘한국의 반격에 망연자실, 한국의 앞으로 계획에 베트남은 없었다(3월 3일)’라는 제목의 영상물이다. 조회수 12위까지 추려도 베트남 가짜뉴스들의 평균 클릭수는 224만회에 달한다. 최근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비의 ‘1일 1깡 교과서’ 조회수가 302만회인 점을 고려하면 이들 거짓 정보의 파급력은 절대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베트남 가짜뉴스는 크게 세 시기로 나뉘어 폭증했다. 베트남의 한국발 항공기 회항 조치 직후인 3월 초ㆍ중순, 베트남 방역키트 관련 허위사실이 유포된 3월 말, 베트남의 삼성 퇴출운동이 집중 언급된 지난달 중순 등이다.

1기 가짜뉴스는 유튜버의 사견이 사실인양 포장돼 유포됐다. 한국의 우방인 인도네시아에 방역키트가 수출됐다는 사실을 고리로 “한국이 베트남을 버렸다”고 비약하거나, 한국인 입국금지의 배경에 일본이 있다는 음모론이 퍼졌다. 심지어 ‘베트남 기업 74%가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 도산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는 현지 여론조사 분석 기사는 “한국의 투자 축소 기류로 베트남 기업 4분의3이 곧 파산할 위기”라는 식으로 팩트를 왜곡했다.

2기 국면에선 286만 조회수를 찍은 ‘베트남이 한국에 키트를 달라고 하면서 하는 놀라운 행동(3월 23일)’이라는 거짓 영상이 도화선이 됐다. 영상물은 현지 D경제신문의 3월 3일자 ‘베트남은 왜 한국에 코로나19 신속 진단키트 수출을 요청했나’라는 기사를 근거로 제시했다. 기사가 “100% 정확한 베트남 진단키트는 검사 시간이 1,2일 걸리는 반면, 한국 진단키트는 정확하지 않지만 3,4시간이면 돼 요청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베트남 측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불과하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해당 보도 어디에도 ‘한국 진단키트가 부정확하다’는 내용은 없다. 베트남 보건당국 관계자는 “악의적 오역인지 알 수 없으나 이후 비슷한 영상물이 대거 재생산되면서 베트남 의료체계까지 싸잡아 폄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왜곡정보 범람에 대기업도 표적

한 베트남인이 2월말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 기업은 베트남을 떠나라”는 취지의 만화를 작성해 올렸다. 이 만화 역시 베트남 내 삼성 불매운동의 주요 근거라고 일부 유튜버들은 주장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한 베트남인이 2월말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 기업은 베트남을 떠나라”는 취지의 만화를 작성해 올렸다. 이 만화 역시 베트남 내 삼성 불매운동의 주요 근거라고 일부 유튜버들은 주장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3기에선 가짜뉴스가 ‘정도(正道)’를 넘어섰다. ‘배은망덕 베트남에 기적 같은 사건 터졌다!(4월 6일)’라는 영상을 필두로 제목만 자극적인 창작물이 모두 170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특히 이 시기 가짜뉴스들은 한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다른 플랫폼으로 전파되면서 반(反)베트남 정서를 한층 부추겼다.

악화된 넷심은 삼성전자 퇴출운동이 언급된 가짜뉴스(4월 17일)로 정점을 찍었다. 삼성 퇴출 주장은 베트남인 D씨가 만든 “베트남이 삼성을 버려도 우리에겐 노키아와 화웨이 등이 있다”는 취지의 합성 사진과 또 다른 베트남인 T씨가 그린 비슷한 내용의 만화가 유이한 근거다. 그러나 두 콘텐츠는 다낭시의 한국인 격리로 베트남과 한국 네티즌간 갈등이 고조되던 2월 26일과 27일 각각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석 달 전 제작된 사진과 만화가 베트남 전역에서 현재 일고 있다는 삼성 퇴출운동의 주요 배경으로 갑자기 둔갑한 것이다. 반면 영상 어디에도 사진 등에서 시작됐다는 실제 불매운동 목격담이나 객관적 자료는 제시되지 않았다.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은 속앓이만 하고 있다. 현지 관계자는 “삼성 퇴출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한ㆍ베트남 관계에 큰 파장이 생겼을 것”이라며 “공식 해명을 유도해 논란을 키우려는 의도 같아 그저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의 대응책”이라고 밝혔다. ‘최근 삼성전자의 베트남 휴대폰 시장점유율이 줄어든 것만 봐도 베트남이 삼성을 버린 것을 알 수 있다’는 취지의 유튜버 주장에는 “신규 출시 휴대폰이 고가라 시장점유율은 소폭 줄었지만 순이익은 오히려 증가하는 등 베트남 내 삼성의 입지는 여전히 견고하다”고 잘라 말했다.

한번 달아오른 베트남 가짜뉴스 열기는 아직 식을 기색이 안보인다. 문제의 유튜버들은 히트작들의 제목을 조금씩 바꿔주는 방법으로 매주 새로운 영상을 노출시키고 있다. 상황을 면밀히 주시 중인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은 잘못된 흐름이 장기화하는 것만큼은 막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하노이 외교가 관계자는 “오해와 갈등이 누적되면 외교의 큰 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싸움을 조장해 돈을 버는 일부 유뷰버들의 몰지각한 행태가 국익에까지 피해를 주지 않도록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저작권 한국일보]베트남 관련 가짜뉴스
[저작권 한국일보]베트남 관련 가짜뉴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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