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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쇼크 독트린

입력
2020.05.19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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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3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현 정부서울청사)에서 장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 총재(왼쪽)가 지켜보는 가운데 당시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가운데)과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가 구제금융 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7년 12월 3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현 정부서울청사)에서 장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 총재(왼쪽)가 지켜보는 가운데 당시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가운데)과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가 구제금융 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1년 9ㆍ11 테러로 미국인들이 충격에 빠진 사이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앞세우며 핼리버튼, 블랙워터 같은 민간 용병업체에 막대한 이익을 안겼다.” 캐나다 언론인 나오미 클라인이 2007년 펴낸 책 ‘쇼크 독트린’에 담긴 내용이다. 저자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지면 위기 극복을 위해 개혁에 나서기보다, 공포를 이용해 기존 지배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책략을 ‘쇼크 독트린’이라 정의한다. 저자는 이를 ‘자유시장 신봉자’들의 단골 책략이라고 보지만, 이념을 떠나 모든 지배 계층이 사용하는 전략이다.

□ 코로나19 사태 이후 제기되는 각종 주장과 요구를 지켜보면서, 그 책을 다시 떠올린다. 지난달 말 열린 ‘위기 극복과 고용을 위한 경제단체장 간담회’에 모인 기업인들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주 52시간제 완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기준 강화 방침 변경, 화학물질 등록과 관리에 대한 규제 완화 등을 요구하는 장면은 ‘쇼크 독트린’의 대표적 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해외 진출 국내기업 공장을 국내로 귀환시키는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자, 법인세 인하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내세우는 것도 그렇다.

□ 초유의 재난 극복을 위해 정부의 재정 투입 규모가 늘어나자, 재정 건전성 악화를 공격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쇼크 독트린에 포함된다. 주요 20개국(G20)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10%가 훌쩍 넘는 재정을 투여하는 동안 이들보다 재정 건전성이 양호한 우리나라 재정 투입 규모는 8%에 못 미치는 점은 언급하지 않는다. 또 기업과 가계가 제 역할을 할 수 없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고령화나 통일 등 미래 걱정을 내세우며 재정을 아끼라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를 숨기고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 1997년 말 점령군처럼 들어온 국제통화기금(IMF)은 구제금융의 대가로 금리를 연 20~30%로 높이는 정책을 강요했다. 그 결과 적지 않은 국내 기업과 은행이 외국인 수중에 들어갔고, 다국적 금융사들과 국내 소수 계층이 큰돈을 벌었다. 클레인은 ‘쇼크 독트린’에서 이를 ‘아시아 약탈’이라고 부른다. 20여년 전 뼈아픈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정부와 시민이 하루빨리 공포에서 벗어나 위기의 본질을 찾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신속하고 투명한 정보 공유와 꾸준한 설득 작업이 중요하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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