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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세계무역기구(WTO)의 황혼

입력
2020.05.21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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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베르투 아제베두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2018년 4월 제네바 WTO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아제베두 사무총장은 지난 14일 임기 1년을 앞두고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연합뉴스
호베르투 아제베두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2018년 4월 제네바 WTO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아제베두 사무총장은 지난 14일 임기 1년을 앞두고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세계무역기구(WTO)에 악담을 퍼부었다. “WTO는 끔찍하다. 미국을 망친다”는 말을 공공연히 내뱉었다. WTO에 대한 트럼프의 반감은 대통령이 된 뒤 더 거세져 지난해부턴 아예 미국의 WTO 탈퇴 위협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런데 1995년 WTO 출범을 주도한 클린턴 대통령 때만해도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당시 클린턴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자유무역은 미국을 위한 거대 시장을 열게 될 것”이라며 WTO 체제를 힘 있게 밀어붙였다.

□ 두 사람의 정반대 행보를 공화당과 민주당의 노선 차이 때문만으로 볼 순 없다. 클린턴 후임인 조지 W. 부시(공화당) 정부 역시 전반적으로는 WTO를 통한 자유무역주의를 계승한 점만 봐도 그렇다. 따라서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에 이르는 20여년 간의 세계정세 변화가 WTO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180도로 뒤바꾼 주요 배경으로 대두된다. 사실 지난 1990년대는 ‘세계화(Globalization)’의 시대였다. 미국은 동서 냉전 이후 주도권 유지와 안정적 세계 질서 구축을 위해 ‘관여와 확장(Engagement and Enlargement)’을 대외전략으로 설정했다.

□ 그 대외전략은 세계화란 이름 아래 과거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과 아시아ㆍ중남미 신흥공업국들에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확장시킴으로써 민주주의의 확산을 추구하는 외교ㆍ무역정책으로 이어졌다. 미국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계승하는 글로벌 자유무역질서의 집행기구로 WTO를 적극 추진한 배경이기도 하다. WTO 설립 후 미국은 잠재적 거대시장이자, 민주주의 확산의 주요 타깃인 중국을 기꺼이 회원국으로 맞아들였다.

□ 그런데 2001년 WTO에 가입한 중국은 개도국 및 최혜국 대우 등에 힘입어 단숨에 ‘세계의 공장’으로 도약했고, 마침내 미국에 도전하는 G2로 부상하게 됐다. WTO가 사자 새끼를 너무 키워줬다는 뒤늦은 불만이 미국 내에 팽배해졌다. 결국 이런 정서가 ‘반(反)세계화’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의 집권과 미국의 WTO 홀대로 이어진 것이다. 그동안 트럼프의 공박에 시달려 거의 기능정지 상태에 빠진 WTO가 최근엔 사무총장까지 중도 낙마하는 사태를 맞기에 이르렀다. 한때 세계 무역 질서를 호령한 WTO에 무거운 황혼이 드리운 느낌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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