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회장 “물산 합병-바이오 회계처리, 보고 받거나 지시 안했다” 진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6일 삼성그룹 경영권 부정승계 혐의로 3년여 만에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회사 내부는 당혹감과 긴장감에 휩싸였다. 삼성 측은 검찰에서 제기한 주요 혐의를 적극 반박하며 ‘무리한 수사’를 성토하는 한편으로, 사법처리 향방에 따라 비상경영 시국에 자칫 ‘총수 부재’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감을 드러내고 있다.
삼성 측은 양대 쟁점 중 하나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비율 조작 혐의에 대해 “시세조종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이 부회장이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배력을 높일 심산으로 2015년 합병을 앞두고 제일모직 주가는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는 끌어내렸다는 의혹이 있지만 어느 하나 사실로 드러난 게 없을 뿐더러 완전경쟁시장인 주식시장에선 불가능하단 주장이다. 비슷한 논리로 양사 합병을 취소해달라는 민사재판 1심(2017년 10월)에서 원고가 패소한 점도 회사는 결백의 근거로 들었다.
또 다른 쟁점인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선 현재 이 회사의 시가총액이 40조원 규모에 달한다는 점을 반론으로 제시했다. 합병 전 제일모직이 보유한 삼성바이오 지분 가치가 8조원대로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는 의혹에 맞서 통합 삼성물산의 삼성바이오 보유지분 가치가 현재 18조원을 넘는 점을 들어 ‘그만한 가치가 있는 회사’라고 항변한 셈이다.
이 부회장이 양사 합병이나 삼성바이오 회계 처리 과정을 보고 받고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삼성 측은 ‘해당 업무는 각 계열사 주도로 진행됐으며 당시 그룹 컨트롤타워로서 이 부회장은 아무 직책을 맡고 있지 않던 미래전략실이 관여했다’는 입장이다. 실제 이 부회장은 이날 검찰 조사에서 이들 쟁점 사안에 대해 “보고 받거나 지시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정부 시절의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파기환송심을 받고 있는 와중에 또 다른 사건에 휘말리자 곤혹한 표정이 역력하다. 행여 이번 수사가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로 이어질 경우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경영 여건이 한층 불확실해 질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실제 이 부회장이 2017년 뇌물 혐의로 구속돼 1년 가까이 수감되고 미래전략실까지 해체되면서 회사 경영은 구심점 약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아무리 경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 해도 총수가 (2017년부터)4년째 재판에 연루돼 있다 보니 큰 전략을 세우고 방향을 전환하는 작업은 그간 멈춰섰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토로했다.
이 부회장이 지난해부터 시스템 반도체, 퀀텀닷(QD) 디스플레이,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주력사업을 지목하고 대규모 투자에 시동을 거는 중간에 또 다시 발목이 잡혔다는 재계 안팎의 우려도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잘못이 있다면 수사를 받는 게 당연하겠지만 검찰이 이번 사안으로 벌써 1년 반째 삼성그룹 고위 경영진을 줄소환하면서 아직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피의사실을 계속해서 흘리고 있다”며 “국가경제의 위기 상황인 만큼 검찰도 좀 더 회사 측을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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