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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김희애와 윤미향, 그녀들의 허스토리

입력
2020.06.03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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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 스토리’ 스틸 이미지. NEW 제공
영화 ‘허 스토리’ 스틸 이미지. NEW 제공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부부의 세계’ 열풍이 불고 난 뒤, 배우 김희애의 팬 연령층은 부쩍 넓어졌습니다. 특히 30대 이하는 이번에 ‘신규 유입’ 된 경우가 많습니다. 해당 배우의 최전성기에 초등학생 이하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일까요? 인터넷 게시판에는 김희애 배우의 이전 모습을 찾아보고, 공유하는 게시글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20대 시절 그녀의 가수 데뷔 무대 영상이 ‘지선우 부원장님(극 중 김희애의 이름) 가수 하던 시절’이라는 제목으로 수백 회 공유되기도 하고요. 드라마 아들과 딸이 ‘우리 돌잔치 할 때쯤 희애 언니 레전드 연기력’ 같은 제목으로 재조명받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젊은이들이 세월을 역주행하며 그녀를 알아가는 중에서, ‘가장 놀라운 필모그래피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작품은 2018년 영화, ‘허 스토리’입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첫 번째로 완전히 새로운 그녀의 모습 때문인데요. 이 영화 속에서는 불같고 괄괄한 성격의 부산 토박이 사장님을 연기했습니다. 남자들과 멱살잡이를 해도 지지 않는 부산 아줌마를 김희애가? 꽤나 낯선 조합이지요? 특히 당대의 연기파 배우도 꼭 사투리 연기를 하는 순간 ‘흑역사’가 되는 것과 달리, 그녀는 토박이인 제가 들어도 상당한 사투리를 펼쳐 보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요즘 주목받는 두 번째 이유는 조금 더 시의성이 있습니다. 바로 이 작품이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부 재판’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요. 아직 위안부 문제가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1991년, 할머니들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최초의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무려 6년간 23번이나 시모노세키로 건너가 재판을 치러 냈던, 그것도 사비를 털어서 했던, 김문숙 여사를 모델로 했기 때문입니다.

개봉 당시, 김희애는 이런 인터뷰를 남깁니다. “작품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나만 잘하면 된다고 되뇌었다. 내가 제일 걱정이었다. 그런데 선배님들도 다 나만 잘하면 된다고 긴장하셨다더라.” 이 작품은 김희애를 빼고도 김해숙, 문희 같은 관록의 대배우들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 그녀들 모두가 그토록 긴장하고, 부담을 가지며 연기했던 이유는 뭘까요? 비단 흥행을 위해서는 아닐 겁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할머니들과 김문숙 여사의 치열한 세월에 누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존경의 마음이 가장 컸겠지요.

해당 영화 속에서 가장 마음 아팠던 장면이 있습니다. 폭우 속에서 택시를 탄 김문숙(김희애)이 기사의 한마디 “저 할매들 돈 받을라고 저러는 거 아닌가베. 할마씨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에 충격을 받아, 도로 한가운데서 내려버리는 장면입니다. 30년 전, 당시의 무관심한 사회적 시선을 한마디로 보여 주는 장면이지요. 그때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누구도 할머니들이 ‘돈’을 위해서 싸워왔다고 생각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최근의 ‘그 사건’은 더욱더 경악스럽고,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건 아닐까요. 할머니가 아닌 엉뚱한 누군가는 돈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이.

윤미향과 김희애. 하루가 다르게 두 여성의 과거가 재조명되는 요즘입니다. 한쪽은 한탄만 자아내고, 한쪽은 감탄을 자아내고요. 평생을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한 사람이, 단 1년간 할머니들을 조명한 영화를 찍었을 뿐인 배우보다도 할머니들을 존중하지 않았던 게 아니냐는, 믿고 싶지 않은 진실. 그녀들의 태도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금, 국민들은 내일 뉴스에서는 또 어떤 ‘허 스토리(her story)’를 접하게 되는 걸까요. 부디, 더는 할머니들의 오랜 상처가 짓무르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이제는 결자해지가 필요할 때는 아닐까요.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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