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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화학물질 관리, 경제 논리 아닌 목적과 원칙에 따라야

입력
2020.06.03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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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로 야기된 팬데믹의 역설은 팬데믹이 잠시나마 우리에게 깨끗한 환경을 돌려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그동안 인류가 얼마나 개발에만 치우친 채 환경을 무시해왔는지 돌아보게 한다. 인구 증가와 산업 발전의 부산물인 환경오염과 기후변화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는 환경 규제가 필요한 이유이다.

화학 안전 규제는 화학 사고로부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고와 이듬해 구미 불산 누출 사고를 계기로 2013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제정되고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 전면 개정됐다. 기업들은 신규 화학물질과 연간 1톤 이상 제조ㆍ수입하는 기존 화학물질을 환경부 화학물질 정보처리시스템에 의무적으로 등록 또는 신고해야 하며, 화학 사고에 대비해 장외 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위해관리 계획을 수립 보고해야 한다. 법 시행 후 화학 사고 건수는 2015년 113건에서 2019년 57건으로 크게 줄었다. 화평·화관법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일본 수출 규제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내 기업들은 경쟁력 제고를 위해 화학물질 관련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특히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그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실제로 정부는 작년 7월부터 화평ㆍ화관법의 패스트트랙을 통해 전략물자에 해당하는 품목들의 허가 절차를 한시적으로 간소화했고, 최근 코로나 사태에서도 추가 완화 방안을 내 놨다.

비상상황에서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기 위한 긴급 조치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화평·화관법의 목적을 해칠 우려가 있는 지나친 규제 완화는 경계해야 한다. 환경부는 올해 화관법 전면 시행 전까지 이미 5년의 유예기간을 적용했다. 그런데도 산업계는 현재 상황을 빌미로 더욱 강도 높은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화평ㆍ화관법이 애초 목적에 비춰 불합리한 점이 있다면 한시적 완화뿐 아니라 법 개정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근거가 경제 논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사고는 예고되지 않는다. 섣부른 규제 완화 기조하에 가습기 살균제 사고와 같은 참사가 재발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비상상황에서도 화평ㆍ화관법은 유예나 예외보다 법을 준수하도록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실제로 환경부는 중소기업들의 화평ㆍ화관법 이행을 위해 다양한 기술ㆍ재정적 지원 정책들을 시행 중이며 이에 대한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

화학 안전 규제의 확대는 세계적인 추세이며 인류의 공존을 위해 꼭 필요하다. 미래는 화학 안전 규제를 준수함으로써 산업이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활성화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또한, 규제 대응을 위한 신기술의 발전, 그리고 이와 연계된 신산업의 창출도 기대된다. 규제와 발전이 자연스럽게 조화된 시대가 올 때까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규제들은 근시안적 경제 논리가 아닌 목적과 원칙에 따라 시행돼야 한다.

이창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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